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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들의 겨울

서영남 2011. 12. 13
조회수 10065 추천수 7

생명의숲-.jpg

생명의숲 청년회원들이 홀몸 노인에게 땔감을 날라다주는 봉사의 모습 사진 <한겨레> 자료

 

 

하느님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비를 내려 주십니다.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참 멋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합니다. 누가 나에게 못되게 굴면 두 배로 갚아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두 배로 갚아 줄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축복해주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만 잘 안됩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로 참 많은 식구들이 살다가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몸 하나 누일 방만 있어도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좋아했습니다. 밥을 맘껏 먹을 수 있어서 참 좋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민들레 식구가 되어 오순도순 살았습니다. 떠난 사람들 중에는 잘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 잘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더는 노숙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흐뭇합니다.

 

 그런데 가슴 아프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욕심을 내면서 혼자만 잘 살 것처럼 하던 사람이 다시 노숙을 하는 것을 봅니다.

 

며칠 전에도 아기와 살던 부부가 보이질 않습니다. 옆집에 사시는 분들이 한 달 째 사는 흔적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전기와 수도료 연체 딱지가 붙어있습니다. 문을 열어보았습니다. 쓰레기만 가득합니다. 보일러도 뜯어갔습니다. 냉장고는 모터부분만 뜯어갔습니다. 고물로 팔 수 있는 것은 다 가져갔습니다.

 

처음 국수집에 왔을 때는 생후 일곱 달 된 아기와 함께였습니다. 추운 겨울에 노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단칸방 하나 얻어서 살림을 살 수 있게 했습니다. 아기 우유도 고마운 분들이 보내주셨습니다. 그 아기가 커서 올해 봄부터는 아장거리면서 어린이 집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여름에 집주인이 너무 집을 험하게 쓴다고 방을 비워달라고 했습니다. 집수리 비용으로 보증금도 떼였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아기 엄마가 부업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전기 수도료마저 연체하곤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어디 가서든 잘 살면 좋겠습니다.  방을 깨끗하게 치웠습니다.  보일러를 다시 깔아야겠습니다.  그래야 방이 필요한 분께 드릴 수 있습니다. 

 

청량리에서 오신 할머니도 하룻밤을 자고선 말도 없이 떠나버렸습니다. 생각이 바뀐 모양입니다.

 

어제부터는 민들레 식구들 집에 겨울 준비를 해 드리고 있습니다. 방한이 필요한 창문에 비닐로 막는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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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
전직 가톨릭 수사로, 인천에서 노숙자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국수를 나누 는 민들레국수집 운영하고 있다. 1976년 가톨릭 한국순교복자수도회에 입회해 1995년부터 전국의 교도소로 장기수들을 찾아다니다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파견돼 출소자의 집인 ‘평화의 집’에서 출소자들과 함께 살았다.
이메일 : syepet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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