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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 할 수 없는 건 없다

황창연 신부 2017. 01. 02
조회수 9581 추천수 1
 q1.jpg » 고령화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서 금융의 사회적 역활에 대한 관심에 높아지면서 하나금융그룹은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은퇴준비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텔레비전을 통해 제 강의를 보고 들은 할머니들은 제가 참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들은 나를 구박해도, 언제나 환하게 웃으면서 강의하는 황 신부님만은 나를 받아줄 거야.’ 아마도 그런 생각들을 하시나 봅니다.

저에게 할머니들의 하소연 전화도 많이 오고, 구구절절 억울한 사연을 편지로 써 보내는 할아버지도 있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면 기구하지 않은 사연이 없고, 너무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히는 내용도 많습니다. 자식들한테 재산을 몽땅 나눠줬는데 모른 척한다거나, 박사학위 받고 교수를 하도록 공부시켰는데 얼굴 보기도 힘들다는 분도 있습니다. 그분들 모두가 아직 멀쩡하고 건강하니 산 높고 물 맑은 평창생태마을에 와서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제 옆에서 살면 여한이 없이 행복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십니다. 

제가 직접 받은 전화 가운데 이런 분도 계셨습니다. 85세 된 할머니인데, 어느 날 60대 아들이 그러더랍니다. 어머니는 어차피 내가 모셔야 하고 어머니도 나랑 살고 싶어 하지 않느냐, 자기한테 5,000만 원이 있고 어머니는 3억 원이 있으니 그 돈을 자기한테 주면 아파트 분양을 받아서 잘 모시고 살겠다, 이러더랍니다. 할머니는 아들 말이 그럴싸하다고 여겨서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에게 돈이 좀 필요한 일이 생겼답니다. 그래서 아들한테 500만 원만 달라고 했는데, 이때부터 어머니와 말을 하지 않더랍니다. 한집에 사는데 얼굴을 봐도 데면데면 말조차 섞지를 않으니, 남도 아닌 자식에게 무시를 당하는 할머니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이 할머니가 저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생태마을에 빈방 하나 달라시며 저하고 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스물다섯 살 건강한 처자가 같이 살자고 해도 빈방이 없어 거절하는 판인데, 여든다섯 살 된 할머니가 같이 살고 싶다고 하니 참 갑갑한 얘기입니다. 

제가 할머니에게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 여기는 피정하는 집이라 빈방이 따로 없습니다. 제가 할머니 같은 분들이 하도 많아 요양원이라도 할까 생각 중인데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제가 거듭 정중하게 거절했더니,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강의할 때 보면 노인들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는 것 같더니, 아니 이럴 수 있어요? 정말 너무하시네요!”
제가 진즉에 자식들한테 재산 나눠주지 말라고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렸는데, 그 말은 하나도 안 듣고 지금 본인 처지만 생각하니 화가 나시는 겁니다. 

제대로 돈 쓰는 법을 알아야 한다

2015년 울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112로 도움을 청하는 노인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발음이 부정확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경찰이 신고 장소를 추적해서 어느 작은 주택 안으로 들어가자 쓰레기가 잔뜩 쌓인 방 안에 다 죽어가는 몰골로 노인 한 분이 누워 있었습니다. 고독사 직전까지 갔던 그 노인의 아내는 몇 년 전에 죽고, 하나 있는 딸은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상태로 입원해 있어 사실상 일가친척 하나 없이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폐지를 수집하면서 근근이 연명해온 이 노인의 신상을 경찰이 조사해보니 그분 명의로 되어 있는 3층짜리 빌딩이 나오더랍니다. 월세도 한 달에 165만 원씩 통장으로 따박따박 들어오는 건물이었습니다. 죽은 아내가 오래전에 노후대책으로 장만한 건물인데, 노인은 통장에 수천만 원이 쌓여 있는데도 까맣게 몰랐던 것입니다.

q2.jpg » 서울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돈을 버는 법은 배웠지만 쓰는 법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개처럼 벌어서 쌓아두기만 하고 제대로 쓰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르신들 가운데 예전에 몰래 숨겨놓은 비상금을 어디 두었는지 까먹은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그분들 집에서 장롱을 뒤지거나 침대 밑을 뒤지면 아마 꽤 많은 돈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죽어라 모은 돈 한 번 멋지게 써본 적 없는 노인들이 자식에게 유언이라며 남기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부모처럼 살지 않는 것일까요?

미국의 샤갈, 해리 리버만 이야기

해리 리버만(Harry Lieberman)이라는 노인이 있습니다.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미국으로 이민 가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은퇴 후에는 노인학교에 나가서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거나 체스를 두는 일이 유일한 소일거리였습니다.

어느 날, 몇 년 동안 함께 체스를 두었던 친구가 병이 들어 노인학교에 못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온종일 멍하니 소파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봉사자로 온 젊은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그렇게 가만히 계시지만 말고 2층에 화실이 있으니 거기 가서 그림이라도 그리시는 게 어떠세요?”
평생 붓이라고는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내 나이 이제 여든 살을 바라보고 있고, 그림을 배워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리겠어?”
그러자 젊은이는 배우는 데 나이가 문제 될 게 뭐냐며 화실에 가서 구경이라도 하고 오라고 권했습니다. 노인은 달리 할 일도 없어서 그냥 소일거리 삼아 화실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화실에 올라가서 도화지며 물감을 보는데 돌연 이상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폴란드 고향 마을을 그리고 싶은 욕망이 분수처럼 샘솟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리 리버만은 77세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얼마 후 사람들로부터 ‘미국의 샤갈’이라고 불리는 유명화가가 되었습니다. 샤갈은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 화가라 불릴 만큼 유명한 인물입니다. 77세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해리 리버만에게 그런 별명이 붙었으니, 얼마나 재능이 뛰어났는지 짐작이 갑니다.

해리 리버만은 103세까지 살면서 총 21회에 걸쳐 전시회를 열어 사람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해리 리버만은 화가로서 명성이나 작품이 얼마에 팔리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젊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늙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지금은 내 나이만큼 성숙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숙이란 연륜과 함께 오기 때문입니다. 늙어서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나이나 신분이나 현재 처한 환경에 관계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갈고 닦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이 진짜 인생입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굳이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자신의 재능을 끝도 없이 개발하고 즐기는 비범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은 무엇보다 먼저 재미가 있고, 그다음에 의미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단지 의미만 찾는 사람들은 답답합니다. 의미만 따지면 경직되고, 타협할 줄 모르고, 고집을 부립니다. 반면에 재미만 찾는 사람은 주변을 괴롭힙니다. 자기 재미만 찾느라 가족이나 친구들을 힘들게 하고 고통에 빠뜨립니다.

그러니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두루두루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쁘게 살았던 사람들은 죽어서도 하느님께 가서 할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 제게 주신 능력을 세상에 나가서 잘 쓰고 살았습니다. 자아실현 열심히 잘하고 왔습니다. 세상은 너무 아름답고 살만 한 곳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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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연 신부
1992년 수원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현재 ‘성 필립보 생태마을’ 관장. 생태마을 같은 친환경 농촌마을을 국내에 40군데, 지구촌에 40군데 건설하는 것이 꿈이다. 저서로 <사는 맛 사는 멋>, <북극곰 어디로 가야 하나?> 등이 있으며, 최근 행복 공감 에세이 <삶 껴안기>를 출간했다.
이메일 : hcy256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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