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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속에서도 우리가 웃을 수 있는 이유

조현 2012.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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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들 샘터공동체-.jpg

경기도 양평 샘터공동체

 

 

서울~경기도 양평군 사이를 오가는 중앙선 국수역에서 차로 10여분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샘터공동체가 있다. 양평군 양서면 증동리 78. 10여년째 재난과 전쟁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달려갔던 개척자들의 보금자리다.


  지난 16일 샘터공동체를 찾았다. ‘개척자들’이란 작은 푯말 옆 계곡 위 다리 건너엔 산새가 지저귀며 부르는 평화의 노래가 들려올 만만 같다. 그런데 어인 일일까.

 

샘터공동체는 마치 화산 폭발의 현장마냥 시꺼멓게 그을린 나무들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아랫목에 앉아있어도 추울법한 산골 얼음계곡 옆에서 타다만 나무들을 치우느라 허철 간사가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불난 자리에 식구들-.jpg

불 난  생활관 자리에 선 공동체 식구들.

 


  샘터공동체엔 지난달 15일 낮 원인 모를 화재가 일어났다. 이 불을 끄기 위해 헬기까지 동원돼 큰 산불로 번지는 것은 막았지만, 13명의 샘터공동체 식구들이 살아가는 생활관은 홀라당 타버렸다. 대낮에 난 불이나 다행히 식구들은 밖으로 나와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2000년부터 동티모르 분쟁 현장에 가서 난민들을 도우며 보내온 생생한 사진들과 사연들이 담긴 4대의 노트북들은 함께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지난 2004년 쓰나미가 몰려든 인도네시아 반다아체로 달려가 지금까지 함께 수집해온 활동 자료들도, 아프가니스탄과 말레이시아 등에서 난민들을 도왔던 기억을 담은 사진들도 함께 타버렸다. 재난 지역과 분쟁 지역 오지에 가서 이재민을 도울 청년들을 양성하는 평화 캠프를 열 때마다 8km 달리기와 20km 자전거 타기, 수영으로 남한강 건너기 등 철인경기를 가장 앞장 서서 해온 이들의 체력도 재난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고통 받는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 돕던 그들에게 왜 하나님은 이런 고통을 안겨준 것일까.  화재가 난 다음날 새벽에야 정신이 든 여자 간사들은 허탈감에 눈물을 쏟았다. 고통 받는 제3세계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한푼 두푼 모아준 후원자들과 작은교회들이 낸 월 1300여만원의 후원금 대부분을 현지에 보내기 위해 겨우 한달에 활동비 15만원씩만 받고 용감하게 헌신하기만 했던 개척자들이었다. 자신들은 늘 점심은 라면으로 때우고, 난방비 때문에 불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지만 생활관은 개척자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세상의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늘 중보기도를 하던 집이었다.


 다행히 불이 옮겨붙다 꺼진 사무동과 계곡 건너 이형우 간사 가족이 살던 집이 있어, 이곳을 임시거처로 사용하고 있다. 20개월된 허철·김민정 간사의 딸 가희는 삼촌, 언니들과 한집에서 더 부대낄 수 있어서인지 더욱 신난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웃음은 가희만의 것이 아니었다.

 

집 어떻게지을까-.jpg

 다시 생활관을 짓기 위해 나선 공동체 식구들


 샘터공동체에 화재가 난 뒤, 이들은 세상에 알려진 구호단체가 아닌 작디 작은 ‘개척자들’에게 쏟아진 사람들의 관심에 눈물을 쏟지않을 수 없었다. 누구는 한걸음에 달려와 안아주고, 누군가는 라면과 쌀을 보내주고, 누군가는 부산에서 노트북을 사들고 와 건네주었다. 재난이 눈물을 주지만, 사랑과 나눔이 얼마나 재난을 덮고도 남을만큼이나 큰 행복을 준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한달이었다.


   매주 월요일 저녁은 서울 신설동 대광고 안 나들목교회 소예배실을 빌려 하는 ‘세기모’(세계를 위한 기도모임)가 있다. 공동체 식구 13명이 뒷유리창도 없어 비닐로 가린 봉고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나들목교회 소예배실엔 개척자들과 함께 세기모에 함께하는 미국인 학원강사 등 대여섯명이 함께 했다. 먼저 이형우 간사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현지 주민들의 고통스런 삶과 ‘학교 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긴급 학생 집담회’ 소식 등 4개의 뉴스를 골라 소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무슬림들과 한 가족처럼 어울려 살아가며 그들을 돕고 있는 김광일·정수연 부부 가족과 류복희 간사, 동티모르에 파견된 윤효숙 간사, 평화교육을 위해 동티모르로 떠난 권승현·박정주 간사 등이 건강하고 기쁘게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지체들위한기도-.jpg

`세상을 위한 기도 모임'에서 손을 잡고 기도하는 사람들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기복 기도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세기모’는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이날 세기모의 기도 가운데서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마지막 감사의 기도였다.


 “샘터 화재를 통해 분쟁과 재난 현장에서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의 고통과 마음을 더욱 더 잘 헤아리고 공감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가희를 껴안고 예배당을 나오는 ‘개척자들’ 머리 위에서 밤하늘의 달님도 별님도 함께 한다는 듯 미소짓고 있었다.


  양평/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개척자들은

 

 1992년 필리핀에서 피나투보 화산이 터졌다. 722명의 인명피해소식을 뉴스로 접한 서울의 한 작은교회 청년들은 송강호(54) 전도사와 함께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 기도로 시작해 이들은 매주 한번씩 모여 고통받는 지구촌 사람들을 정해놓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개척자들’의 모태인 ‘세계를 위한 기도모임’(세기모)의 첫걸음이었다.


   송 전도사는 1994년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신학 공부를 위해 떠났다. 청년들과 “재난이나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함께 그곳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뒤였다. 송 전도사의 유학 뒤에도 ‘세기모’를 이어가던 청년 3명은 아프리카 르완다 내전으로 수많은 난민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독일로 날아갔다. 막 신학공부를 시작하려던 송 전도사는 이들과 함께 아프리카로 가서 참상을 목격하며 그들이 무엇을 해야할지 기도하기 시작했다. 송 전도사가 신학박사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4년 뒤까지 청년들은 ‘고통받는 자들을 위한 기도’를 단 한주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청년들은 세기모를 발전시켜 지난 2000년 송 전도사와 함께 ‘개척자들’을 출범시켰다. 큰 교회도, 큰 후원자도 없었다. ‘선교’에만 후원이 몰리는 현실에서 ‘신앙은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거하는 것’이라며 종교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돕고 헌신하는 그들의 시도는 무모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병이어의 기적은 헌신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일어났다. 그들은 100여명의 후원자들이 보낸‘작은돈’, 국내외 스탶 35명의‘적은 인원’으로 고통받는 현장에서 구호로, 때론 평화교육으로 수천, 수만명에게 평화와 사랑을 심어주고 있다. wcfgw.thefrontiers.org  (031) 771-5072.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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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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