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게임에선 선수, 본게임에선 낙제
도법 스님 사진 <한겨레> 자료
어제 신년 인사차 논실마을학교 식구들과 도법 스님을 뵈러 실상사에 다녀왔다.
작년 그 바쁘신 와중에도 아마 하루에 열 시간 씩 인문학 강좌를 한 예는 그리 흔치 않을 일인데 더구나 산골마을에서 여섯 달이나 계속 같이 해주셨고, 거기다가 고문까지 맡아주셨다.
요즘도 진정한 종교개혁(나에게는 스님이 하시려고 하는 일이 단순히 불교개혁을 넘어 보편적인 종교개혁에 가깝다고 생각된다)을 위해서 어떤 분의 표현에 따르면 ‘백척간두’에 서 계시는 것 같다.
논어에 보면 공자를 가리켜 ‘그 안 될 줄 알면서도 끝까지 하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는데, 사실 그런 분들이 있어서 인류가 진보해 온 것이다. 나는 도법 스님을 이 시대 그런 분의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할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진실의 나무’를 심는 것이다!
마침 스님이 그 동안 실상사 법회에서 하신 화엄경 보현행원품 강의를 수록한 책 ‘망설일 것 없네 당장 부처로 살게나’라는 책을 선물 받아서 열심히 읽고 있다. 읽다가 우리 시대의 종교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고 싶은 대목이 있어서 소개해 보고 싶다.
“우리가 불교를 하는 것은 지금 바로 해탈열반의 삶을 살고자 해서입니다. 그 길을 탁월하게 제시한 것이 보현행원이고요. 그러므로 우리 불자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예경제불(禮敬諸佛) 즉 상대의 존재가치를 사실대로 보고 지극하게 섬기고 모시는 정진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다. 너도 나도 연습 게임은 열심히 하는데 본 게임은 설렁설렁 치릅니다.
무엇이 연습게임일까요? 다들 법당에 가서 부처님께 절도 열심히 하고, 선방에 가서 참선도 집중해서 하고, 염불도 많이 하죠. 그런데 이게 모두 연습게임입니다. 법당부처님께는 지극정성을 다 합니다. 그런데 왜 현장에서 즉각즉각 반응하는 살아 있는 부처님께는 지극정성으로 안 합니까? 연습장의 부처님 대하는 것의 반만큼만 본 게임장의 살아 있는 아내 부처님, 남편 부처님, 친구 부처님을 대하면 곧바로 효과가 있을텐데 말입니다.
만약 김연아 선수가 연습장에서는 잘 하는데 본 게임에서 제대로 안 한다면 스케이트 선수로 성공했을까요?
한국의 불교인들이 수행하는 것이 영락 없이 이 꼴입니다. 연습장인 법당에서만, 선방에서만 열심히 합니다. 본 게임장인 삶의 현장에서는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본 게임장인 현실에서는 내 마음에 안드는 사람을 수시로 만나고, 가끔은 적대적인 사람도 만납니다. 그 때마다 정신 바짝 차려서 상대의 개성과 가치를 직시하고 그 가치를 존중하면서 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 해야합니다. 그것이 진짜 용맹정진이요 참다운 불교 수행입니다.“ (57페이지-59페이지 가운데 일부 발췌)
어디 불교 뿐일까? 종교의 유무나 다름을 떠나 이 시대에 던지는 보편적인 테마라고 생각한다. 미래예측이 심하게 불확실한 세상, 좀처럼 변할 것 같지 않는 사람들의 이기적 탐욕, 지금의 문명이 계속되면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자연생태계의 재앙 등이 각가지 종말론으로까지 이어지는 이 혼돈 속에서 우리 종교계가 던질 희망의 빛을 도법 스님의 말 속에서 찾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