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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하게 사랑하지 마세요

홍성남 2017. 0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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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쉬는 사람이 사랑도 잘합니다

 사랑의 실천은 노동과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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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스탠버그(Robert Sternberg)는 사랑을 여러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우선 길을 가다가 아주 예쁜 여자를 보고 첫눈에 뿅 갔습니다. 혹은 아주 잘생긴 총각을 보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런 이성 간의 사랑이 에로스입니다. 두 번째는 “ 우리 우정을 영원히 간직하자 ”라고 말하는, 친구 간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깊어지면 동성애가 되기도 하지요. 세 번째는 유희적 사랑인 루두스입니다. 보통 루두스에 빠지면 이성은 마비가 되고 맙니다.


보좌신부 시절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저… 여보세요? 성당이죠?”

“네 그렇습니다.” 

“성당에서 결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저희 신자신가요?”

“아니 신자는 아닌데 꼭 성당에서 결혼하고 싶어서요.”

“꼭 그러셔야 하는 이유라도?”

“아 그게…… 저희가 세상의 축복은 받지 못 할 관계라서요. 평범하게 결혼식은 할 수가 없어서… 그러니까 결혼을 했거든요.”

“결혼하셨다구요?”

“네. 각자 결혼은 이미 했는데 저희는 정말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래서 신부님에게는 꼭 축복을 받고 싶어요.” 


 지금 같으면 “지랄하고 자빠졌네. 끊어”라고 했을 텐데. 그때만 해도 욕을 못할 때라 그냥 다른 곳을 추천해드렸습니다. 

“ 다른 데 알아보세요. ” 


 불륜이라고 하기도 하는 루두스는 대개 중년에 찾아오는 감정입니다. 네 번째는 마니아로 한 사람에게 정신없이 빠져드는 상태인데 심해지면 스토커 소리를 듣지요. 스토커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간이 큰 스토커들은 집 앞에서 죽치고 있습니다. 간이 작은 스토커들은 전화를 걸고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목소리라도 들으려고요. 사제관에는 주로 간이 작은 스토커들이 전화를 합니다. 보좌신부 때는 마음이 착해서 노래도 불러주었는데, 지금은 고래고래 욕을 하고 끊습니다. 마음 약한 스토커들은 보좌신부 전화를 애용하시기 바랍니다. 저한테 하면 상처받고 우울증만 심해집니다. 명동성당 보좌신부 시절에는 다른 신부의 스토커에게서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신부도 신부 나름이지” 라는 한마디가 가슴에 박혀 한동안 빠지지 않았던 것이지요.이렇게 신부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1인 이상의 스토커가 따라 다닙니다. 추기경님도 예외가 아니시지요. 


 다섯 번째는 연애하다가 결혼할 즈음에 하는 현실적 사랑인 프레그마입니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경제적으로 잘 살까 못 살까, 사모님 대접을 받을까 못 받을까 따지면서 하는 사랑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의 뜻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아가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아가페의 개념은 너무 수준이 높아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 그 수준을 요구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따라서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려면 몇 가지 수칙을 지켜야 합니다. 


 첫째, 모든 사람이 내가 주는 사랑을 반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끔 나는 마음을 다해서 사랑을 주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속상해하는 경우를 봅니다. 이때는 사랑을 받는 쪽보다 주는 쪽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지요.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데 주려는 것은 아가페가 아니라 상대방의 관심을 끌려는 의존적인 태도일 뿐입니다. 둘째, 사랑을 베푸는 데 꼭 감정이 꼭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가끔 사랑을 베풀려고 하는데 마음속에서 사랑하는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고민하고 자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사랑하는 감정이 일어나지 않으면 참으로 난감합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입니다. 상대방이 가진 문제를 이해하고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키우는 강아지가 병이 들어 괴로워할 때 그저 울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요, 책을 찾아보거나 병원에 데려가 병을 치료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요. 자기 감정에 겨워서 징징거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입니다. 감정이 따르지 않는 사랑은 가식적인 것이 아니라 숭고한 희생입니다. 감정이 따라주면 더 좋겠지만 사실 감정에는 기만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 번째, 아가페적인 사랑은 힘의 소모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쉽게 지칩니다. 


몇 해 전, 어떤 분이 상담을 청해왔습니다. 자신이 갈 곳 없는 노인들을 모시고 사는데 처음에는 정성을 다해서 모셨지만 갈수록 짜증이 나서 마음이 괴롭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고해성사를 봐도 마음이 편치 않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3년 동안 휴가는 몇 번이나 가셨나요?” 

“휴가요? 한 번도 안 갔는데요.”

“지쳐서 그러신 거네요. 당장 휴식부터 취하세요.”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아니라 미련 곰퉁이 같은 삶을 산 경우입니다. 중노동을 하면서 마음이 즐거울 리가 없지요. 간병을 하다보면 차라리 병자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죄책감을 느낀다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간병하는 일은 지치게 마련입니다. 환자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조차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지쳤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그럴 때에는 자책할 게 아니라 쉬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의 실천은 노동과도 같은 것입니다. 쉬지 않고 계속하다가는 지치게 마련이고, 자칫 병이 날 수도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랑 역시 모자람도 지나침도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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