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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완 목사의 심방가는 길

홍동완 2017. 10. 13
조회수 5088 추천수 0


-도심리교회1.jpg » 강원도 홍천 산골길 끝에 있는 도심리교회



우리의 영적 성장은 의외로 보잘것없게 여겨지는 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현대문명은 극도의 편리주의를 지향하고 있고 이것은 쾌락주의와 허무주의로 이끕니다.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허무한 것들 속에서 자신을 소모하다가 죽어간다.” 는 표현이 꼭 맞는 것 같습니다. 


하루를 돌아보면 나의 생각이 얼마 나 허무한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며, 허무한 일들에 바쁘고, 허무한 것에 나의 모든 열정을 쏟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우리 육체의 절제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때로 우리에게 시련을 주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시련은 ‘허무한 것들’에게서 벗어나게 합니다. 시련은 우리의 영혼을 자극해서 허무한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에 시련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작은 불편을 받아들일 수만 있어도 놀라운 영적 성장의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했던 사 람들의 깊은 영성은 우리와 다른 환경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삶의 불 편을 불편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이고 즐겼다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불편함 가운데 자발적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일 예배 후 마을에 심방을 갑니다. 심방을 할 때마다 늘 차 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옛 믿음의 선배들이 복음을 들고 산과 들을 발로 다닌 것을 생각하면서 걸어 다니기로 했습니다. 공동체에서 마을의 가장 먼곳은 약 4.5Km가 됩니다. 왕복으로는 약 두시간 거리입니다. 걸으면서 기도하고 방문할 가정을 위해 먼저 중보 기도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었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님도 늘 걸어 다니셨습니다. 주님이 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해서 당시의 최고의 교통수단이었던 말을 타고 다니지 않으셨습니 다. 주님은 걸으시면서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것 만큼 훌륭한 기도 시간은 없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내가 차를 가지 고 오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놀라면서 “목사님, 제가 차로 모셔드 릴까요?”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홍 걸어.jpg » 도심리마을 반장을 겸하고 있는 도심리교회 홍동완 목사



 지금 농촌은 많은 부분이 기계화 되어 있습니다. 밭 가는 트랙터, 풀 깎는 예초기, 나무  자르는 엔진 톱 등입니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것을 최소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농기계를 구입합니다. 

 공동체 기도의 집의 난방 시설은 나무로 하는 화목 난로입니 다. 생각만큼 성능이 썩 좋지 못합니다. 그래서 겨울에 기도의 집 난방을 하는 데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쉽지 않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이 제일 큰 어려움입니다. 새벽에 불을 붙이는 것도 어렵지만 불을 잘 볼보지 않으면 쉽게 타 버리고 열은 오래 지속하지 못합니다.  많은  경우 새벽에는 불을 지피지 않고 기도회를 해야 합니다. 때로는 기도의 집에 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춥다고 몸을 움츠리고 새벽기도 시간을 갖지 않게 되자 저의 영성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습 니다. 


 어느 날, 비록 춥더라도 ‘기도의 집’에 가서 기도의 무릎을 하나님 앞에 꿇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나의 불편함을 감수하려는 자세 였습니다. 느낌으로는 기도가 잘 안 되는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앉아 있는 시간이 은혜가 되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는 은총입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먼저 그곳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시간, 어떤 환경에 관계없이 존재합니다.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들 자신도 무소부재한 영성을 소유해야 합니 다. 하나님과의 연합을 위해 시간, 장소 혹은 환경으로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연합을 방해하기 위한 수많은 환경들이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죄가 만들어 내는 환경입니다. 우리가 죄의 환경 가운데 쉽게 빠져드는 것은 죄가 주는 매력 때문입니다. 죄는 결코 우리들을 두렵게 만들지 않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최고의 행복과 만족을 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것은 광명의 천사로 우리 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을 줄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가장 큰 이유는 죄가 우리들 에게 주는 거짓 약속들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불편한 환경을 피하라고  합니다. 죄는 우리들에게 쉽게, 편하게 거짓을 행하라고 유혹합니다.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땀과 눈물을 좋아하지 않습니 다. 


 죄는 궁극적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하나님 과 나 사이에서 제 삼자인 죄는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활동합니다. 하나님과 연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나’라는 환경입니 다. 나의 최대의 적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어떤 환경도 극복하지 못할 환경은 없습니다. 바로 나만 극복된다면 모두 극복될 수 있습 니다. 작은 불편함의 환경을 넘어서는 것은 바로 ‘나’라는 환경을 넘 어서는 것입니다. 



-교회안.jpg » 12평인 도심리교회. 이곳은 교회나 예배당이라고 하지않고 기도의집이라고 부른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맨발로 다니면서 복음을 증 거했던 성 프란치스코에게는 눈이, 빙판길이,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환경이 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프란치스코라고 불리는 이현필 선생은 남원에서 지리 산 줄기 “서리내”라는 산중에서 엎드려 기도할 때면 종일 땅에 엎드려서 일어날 줄 몰라 산의 까마귀들이 죽은 송장인 줄 알고 날아와 뜯어 먹으려고 부리로 쪼아 댔다고 합니다. 


 동일한  환경이지만 그것을 이기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이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일부러 금욕과 고난의 환경 가운데로 들어간 이유는 바로 그 환경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 라 자신을 이기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영적 여정에서 가장 큰 적은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영적 무기력을 어느 누구에게도 핑계할 수 없고 어떤 환경 탓으로 돌릴 수도 없습 니다. 하나님과 연합을 위해 이제 내 주변의 작은 불편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  받아들여 보십시오. 무엇보다도 그것을 하나님의 메시지로 받아들이십시오. 거기에는 우리를 향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편한 안락의자에서 뛰어 일어나 딱딱 한 바닥에 무릎을 꿇어 보십시오. 원수 앞에서 용기를 내어 “미안하다, 나를 용서해라.”고 말해 보십시오. 그러면 수문을 열었을 때 뿜어나오는 댐의 물처럼 막혀 있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열정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대문을 여는 데는  대문보다 몇 백 배 작은 열쇠면 충분합니다. 작은 불편이라는 열쇠를 사용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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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완
강원도 홍천 산골마을 도심리에 2002년 들어갔다. 들풀 같은 농부들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다. 저서로 <들풀 위에 깃든 사랑>이 있다.
이메일 : gwmfish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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