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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중에도 노래와 웃음이 있다

이승연 2017. 11. 16
조회수 828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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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다른 세상에 대해 꿈을 꾸게 해준 것은, 초등학교 4, 5학년 때 읽었던 ‘아라비안 나이트’였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편집된 그 6권의 ‘천일야화’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책 속의 삽화들은 무채색이었지만, 저는 온갖 환상적인 색깔을 입히며 미지의 세계로 떠나곤 했습니다. 독일까지 들고 온 남은 4권은 50년의 세월에 누래지고 너덜너덜 해졌지만, 모험과 지혜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제 기억 속에서 생생합니다. 정작 그 미지의 세계는 독일이라는 엉뚱한 곳으로 되었지만, 제게는 그 동화의 세계에서 온 아들이 하나 생겼답니다. 저를 MamaLee라고 부르는 시리아에서 온 모하메드입니다. (그러니 정말 꿈은 함부로 꾸면 안됩니다. 좀 다른 모양새로라도 진짜 이루어지거든요.)

 

 모하메드(26)는 2년여 전, 이미 군징집을 피해 17살에 혼자 터어키로 피난 보내진 남동생 압둘라를 찾으러 떠났습니다. 저널리즘을 공부한 그도 감옥을 두번이나 갔다왔지요. 다마스커스에서 레바논을 경유해 터어키에서 동생을 찾아, 그리이스-발칸국가들-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의 북쪽 함부르크에 당도하기까지 그는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피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제 딸이 속해있던 청소년연극단의 두 연출가는 난민인 젊은이들과 독일의 젊은이들이 함께하는 연극을 구상해서 세 작품이나 무대에 올렸는데, 거기서 모하메드를 알게 되었지요. 그는, 다른 독일인 부모들에게와는 달리 제게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마마라고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시리아에서도 한국에서 처럼 어른에게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친구의 어머니도 어머니라 부른다네요. 유럽과는 아주 다른 문화인거죠. (시리아에도 한국의 드라마가 많이 소개되었대요.) 저는, 너의 엄마는 다마스커스에 살아계시고, 너를 얼마나 그리워하실텐데, 어떻게 내가 네 엄마라 불릴 수 있냐면서, 대신 mamaLee가 어떻겠냐고 제안했죠. 만족한 그 뿐만이 아니라 같이 연극을 하는 아프카니스탄 녀석들도 저를 mamaLee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시리아 아들을 둔 한국 엄마가 되었습니다.  

 

 아직 망명이 인정되지 못한 불안한 상태에서, 더러는 캠프에서 살고, 더러는 시골 구석의 외진 공동숙소에서 독일정부에서 주는 아주 적은 돈으로 생활하는 그들이지만, 그들이 모이는 곳에는 늘 풍성한 먹거리와 음악과 웃음이 넘칩니다. 함부르크의 연출가의 집은 그동안 그들의 안식처이며 ‘아지트’가 되었는데, 그들은 거기서 빵을 굽고 음식을 만들어, 저희같은 독일의 친구들 뿐 아니라, 여러 다른 나라에서 온 난민친구들까지 초대합니다. 거기엔 우드라는 현악기와 탬버린 비슷하게 생긴 타악기, 그리고 기타를 갖고 나타나는 녀석들이 꼭 있어서, 악기에 맞춰 밤늦도록 노래를 하며 웃음으로 왁자지껄합니다. 물론 다 아랍의 노래들인데, 그들은 한국사람들 만큼이나 노래를 좋아하고 다들 참 구성지게 잘 부릅니다. 어떨 때는 황천길을 보내는 노래인 마냥 구슬프고, 어떨 때는 마치 영남 농악을 듣는 듯 신이 납니다.  

 

 어느 여름 밤, 그 연출가의 집 발코니에서 또 그렇게 떠들썩 노는데 - 신기하게도 이웃 독일 사람들이 한번도 시끄럽다고 경찰에 신고한 적이 없어요 - 멀리 놀이공원에서 폭죽이 터졌습니다. 순간 모두들 움찔하더니, 갑자기 한꺼번에 와하하하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다마스커스에서도 폭탄 소리 속에서 노래했는데 그거랑 똑 같다는 거였어요. 그들은 웃었지만 저는 울었습니다. 아직도 폭탄이 터지는 속에 살고 있을 그들의 가족들, 그야말로 부모가 집팔고 땅팔아 피난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돈을 난민을 상대로 하는 조직배들에게 다 떼이기도 하고, 밀입국 알선자들의 횡포로 망가진 고무보트로 바다를 건너며 부모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메세지를 보내고, 환기창없는 트럭에 실려서도 질식하지 않고 살아남아 독일 땅을 밟게 된 이 ‘혼자’들이 ‘함께‘ 나누는 생명력 - 공포의 순간을 웃음으로 날려버리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아프고, 너무도 고마왔어요.

 

 모하메드와 저는 시리아와 한국의 많은 공통점 중에 노래와 웃음을 꼽았습니다. 화나는 얘길 하면서도 웃고, 슬픈 얘길하다가도 웃고, 의미심장한 토론을 하다가도 참 많이 웃는다는 거지요. 제게 심리치유를 하러 오던 한국인 내담자 한 분의 마음이 깊고 슬픈 잠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을 때, 그 사람과 저는 마음 아픈 얘기를 하면서도 웃고 있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겪고 있는 것과 나 자신을 동일시 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 있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영상으로만 보았지만, 촛불집회의 얼굴들은 웃고 있었습니다. 많은 ‘혼자들’이 ‘함께‘ 노래하고 박장대소하는 촛불집회의 소식들은 지쳐가는 모하메드에게 커다란 격려가 되었습니다. 시리아에도 그런 날이 올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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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
어머니는 압록강가에서, 아버지는 동해바닷가 흥남에서, 이승연은 한강가에서 자랐다. 서울에서 공업디자인과 도예를 전공하고 북독일 엘베강 하구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회화를 전공한 후 30여년 간 작가로 활동하다 2011년부터 심리치유사로 일한다. 독일인과 혼인해 성년이 된 딸이 하나 있다.
이메일 : myojilee@t-online.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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