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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41

일반 조회수 1235 추천수 0 2017.12.26 11:31:25

도올의 금강경 오해 41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7-3. 何以故? 如來所說法, 皆不可取不可說, 非法非非法.

7-3. 어째서 그러하오이까? 여래께서 설하신 바의 법은 모두 취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법도 아니며 법이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이오이다.

7-4. 所以者何?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7-4. 그 까닭은 무엇이오니이까? 일체의 성현들은 모두 함이 없는 법으로 이루어져 범인들과는 차별이 있기 때문이오이다.”

[강해] ·····. 여기서 “無爲”라 함은 인간의 언어가 단절되는 절대 眞如의 세계다. 그것은 현상으로서 나타나 있는 存在가 아니라 存在의 근원으로써의 무규정적인 것이다. 절대적인 것이며 무한정적인 것이다. 그것은 “the unconditioned”(언어에 의해 제약당하지 않는 세계)라고도 영역된다.

범문에 “法”에 해당되는 말이 없는데도, “無爲法”이라고 여기 羅什이 번역한 것은, 無爲(asamskrta)가 說一切有部 등의 소승불교 교학에서는 存在 즉 法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七十五法 중의 큰 카테고리로서 無爲法이 들어가 있다.

여기 羅什의 제일 마지막 문구는 그 뜻이 좀 애매하다.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산스크리트 원문에는 “有差別”에 정확하게 해당되는 구절이 없다. ·····. 보통의 번역들이 “有差別”을 無爲에 대한 有爲的 분별세계의 문제로 해석하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아마도 什의 의도는, 賢聖(즉 깨달은 자들)이 有爲差別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하는 대승적 현실성의 맥락을 강조하는데 있었을 것이다. ·····. 그 대체의 뜻은, 모든 성현이 비록 차별의 세계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본질은 오로지 무위의 法(asamskrta-dharma) 즉 함이 없는 法, 만들어 진 것이 아닌 法에 의해서만 드러나게 된다(顯聖)는 뜻이다.

·····. 콘체의 (이 7-4절의)번역은 “절대가 성스러운 사람들을 고귀하게 만든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역시 너무 기독교적 냄새가 난다. 꼭 성신이 성자를 고귀하게 만든다는 식의 표현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성인은 이미 무위로만 생성되는 사람이며 그것으로 인해 고양되거나 저하되는 존재일 수가 없다. 막스 발레사(max balleser)의 독일어 번역이 가장 원의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durch das nichtgewirkte ausgezeichnet sind namlich die edlen. (왜냐하면, 고귀한 사람들은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들에 의해 특징지워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나의 羅什譯에 대한 최종적 해석은 아주 단순하다. “有差別”을 分別世界에 관한 논의로 보지 않고, 그냥 단순하게 “뛰어나다,” “범인들과 구분되어 지는 위대함이 있다”는 내용의 형용사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 그리고 “皆以無爲法 而有差別”이라 할 때 “以-而-”의 구문이 가장 난해한 대목이라 하겠는데 이때 “以”속에는 제1의 함의(콘체. 성현들은 절대적인 무위로부터 생겨났다, 생성되었다.)가 들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성현들은 모두 무위의 법으로써(以) 되어 있다, 그래서(而) 뛰어나다”가 그 최종적 해석이다.

- 수보리는 석가여래가 설명하고 물은 如來라는 말이 함의하는 실제를 계속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분절의 첫머리에서 석가여래가 “여래라는 실제가 아뇩다라삼보리를 얻었다는 것이냐? 여래라는 실제가 내가 설명한 법으로 있는 것이냐?”라는 물음, 즉 ‘여래(범어로 따따가따라고 한다.)’가 ‘무상정등각’이라는 어떤 실재의 실체로서의 뭔 깨달음 따윌 얻은 것이라 거나, ‘무상정등각’이라는 어떤 실재의 실체로 특별하게 정해져 있는 법이냐라는 물음에 수보리가 지금까지 석가여래에게서 이 여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안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석가여래는 자기가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또 수보리도 자기의 스승인 석가여래가 여래인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一切의 현성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서의 세계는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총체적 작동의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므로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는 이 無爲의 법으로 노상 차별의 이 존재와 현상으로 드러나는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임을 말하는 것이다.

수보리는 석가여래가 새롭게 定義해 설명한 여래며 보리살타의 부처가 무상정등각인 까닭의 意義를 자기가 들어 안대로 계속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如來며 보리살타라는 말에 담긴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이와 비슷한 중국토착의 개념이 담긴 無爲라는 말로 格義한 것이다.

(7-2,3,4)

“여래로써의 我가 부처라고 알라고 설명한 올바른 뜻은 요, 그 부르는 이름이 무상정등각이지, 이 이름의 법으로 있는 실재의 실체랄 것이란 없다는 거고요, 이 이름의 법으로 있는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요. 어째서냐면 요, 여래라고 설명한 이 법은 요, 실재의 실체랄 게 없어 설령 취할 수 없대도, 말할 수 없대도, 법이 아니래도, 법이 아닌 것이 아니래도, 다 이 여래법으로 같은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 所以가 뭐냐면 요, 一切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는 요, 이 여래의 부처라는 賢聖으로써 실재의 실체로써의 爲랄 게 없는 無爲라는 이 여래법, 곧 보리살타인 까닭이므로, 이런 取·不取며 아니고·기고 따위의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의 이 차별의 지혜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중국불교를 格義불교라고 하는 까닭은 불교라는 특별하게 올바른 개념의 뜻을 중국말의 格에 담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석가여래의 깨달음의 내용을 중국어로 格했다는 것이다. 이 격의불교는 중국인들만의 독창적인 불교가 아니다. 이는 이미 인도에서 석가여래가 한 전례를 따른 것이다. 석가여래는 이미 어떤 의미의 뜻으로 정해져 세상에 유포되어 있는 말에 자신이 깨달은 道의 내용을 담아 전도한 것이다.

이 금강경은 이것이다. 인도사람들에 의해 이미 무상최고의 의미를 지닌 말인 보리살타며 따따가따(여래)며 부처라는 말에 석가여랜 자신의 깨달음의 내용을 부촉해 이를 전한 것이다.

이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중국어로 번역한 이들은 다른 여러가지 뜻(意)과 다른 오직 석가여래가 깨달은 이 올바른 뜻(義)을 중국어로 格한 것이다.

이 중국의 格義불교를 오직 석가여래가 깨달은 올바른 뜻만을 중국인들이 새롭게 세운 것으로만 본다거나, 인도불교의 뜻을 바꿔 중국의 어떤 뜻으로 개량한 불교라고 아는 건 오해다. 왜냐면 중국인들은 이미 불교를 敎外別傳이라고 하여 석가여래가 깨달아 전한 깨달음 이외의 별별 것들도 온통 석가여래가 특별하게 깨달은 이 법에 의하여 작동하는 법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석가여래가 깨달은 올바른 뜻이란 대도, 이 올바른 깨달음의 뜻에 의하여 작동한 법이지 석가여래가 깨달은 올바른 뜻으로써의 특별한 실재의 실체랄 법은 따로 있을 수 없는, 다만 석가여래의 깨달음이라고 이름하여 부르는 것일 뿐이다.

석가여랜 자신이 깨달은 깨달음의 내용을 담은 이 여래며 보리살타로써의 부처라는 말을 설명하는 것이며, 수보리도 이렇게 알아들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말의 언어문자는 불입문자며 교외별전이란 말의 의미를 따질 것도 없이 독립적 개체로 존재하는 실재의 실체랄 것은 없는, 중중첩첩의 所以로써의 통합적 전체로 작동하는 연기의 실상이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한 말의 언어문자만이 연기의 실상인 진리의 진실은 아닌 것이며, 모든 말의 언어문자는 진리의 진실을 표상한 진리의 진실인 것이다. 다만 이 연기의 실상을 애써 설명하는 말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인들이 평상시 무상최고의 의미를 지닌 말인 道라든가, 이 말의 실제가 연기의 實相임을 설명하는 無爲, 賢聖, 福德 따위의 말들이다. 이런 말들의 格에 석가여래의 깨달음인 義가 담겨있음을 바르게 알아보지 못하고 중국인들이 담은 語義만 헤아린다면 이는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있는 까닭과는 아득한 사유의 말을 하는 연기의 실상이다.

도올의 이 7-3.4 [강의]는 오해 투성이의 말이다. 無爲나 賢聖이란 말의 중국인 본래의 의미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이 말에 대한 의미와는 크게 상관없이 이 말들은 석가여래의 깨달음의 내용을 담은 격의의 말들이다. 즉 無爲·賢 등은 여래며 보리살타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인 이 모든 성품들의 삶이 이 모든 성품들의 삶으로 작동하는 시·공간적 작동태를 표상한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말에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부촉해 격의한 것이다. 聖은 당근 부처를 격의한 말이다.

一切란 말은 알다시피 이 모든 성품들의 삶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며, 더 크게 말하면 삼천대천세계의 삼세며, 더 크게 말하면 중중무진의 시·공간으로써의 大乘인 보리살타이다.

석가여래도 사람들이 하도 事大에 사로잡혀 있으니 작은 건 말하지 않고 큰 형상만 노상 말하는 연기의 실상이다. 헐! 아니다. 그분은 공평무사다. 여기서도 ‘취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아니라는 법도, 아닌 것이 아닌 법’이라는 無形의 相까지도 거론하는 걸 보면, 이 이는 참말 유·무형의 여래법을 아는 여래의 化身이다.

도올이 이를 말하지 않고 ‘“無爲”라 함은 인간의 언어가 단절되는 절대 眞如의 세계다. 그것은 현상으로서 나타나 있는 存在가 아니라 存在의 근원으로써의 무규정적인 것이다. 절대적인 것이며 무한정적인 것이다.’라고 말해, 眞如의 세계를 진여의 세계며 無爲며 무규정적이며 절대적인 것이며 무한정적인 거라고 줄줄이 말해놓고는 ‘언어가 단절되는’ 세계라고 해괴한 사유의 말을 하는 건, 이 금강반야바라밀 곧 여래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으로써의 진리의 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른 연기의 실상이다.

어떤 것은 연기의 실상이라고 알고, 즉 자신의 말뿐만이 이것이라고 알고, 자기의 말뿐만이 아니라 자기와 가깝고 먼 모든 이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중중무진의 시·공간, 즉 삼세가 온통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인 자기로서의 我임을 모르니 ‘여기 羅什의 제일 마지막 문구는 그 뜻이 좀 애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말의 뜻에만 매달려 라십의 의취는 물론 이 금강경이 서있는 까닭엔 아득하니 다만 아득한 오해의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賢聖을 ‘깨달은 자’로써 함이 있는 현실세계에 살며 ‘함이 없는 법, 만들어 진 법이 아닌 것에 의해서만 드러나는 顯聖’이라고 말해 본질이며 비본질로서의 차별이 혼재된 해괴한 삶을 사는 실재의 실체로써의 사람으로 단정하여 말하는 건, 너무도 밝게 빛나는 이 금강의 빛에 눈이 먼 말이다. 더구나 이 분절을 ‘“성현들은 모두 무위의 법으로써(以) 되어 있다, 그래서(而) 뛰어나다”가 그 최종적 해석이다.’라고 이해하여 말하는 건 성인과 범인을 실재의 실체로 분별한 말로써 기독교는 물론 여타의 종교와도 아득한 사유의 말인 것이다.

도올이 말하는 무위로써의 一切賢聖이라는 말의 뜻은 노·장자적으로도, 공·맹적으로도 옳지 않은 의미이기 십상일 터이다. 저이들이 이 도올의 [강해]내용과 같이 저렇게 허무맹랑하게 賢聖에 대한 사유의 말을 했을 리가 없다. 설령 현성으로써의 사람을 말했을지라도 이는 현성으로써의 사람으로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가 진리의 진실을 표상한 연기의 실상이다.

인간의 所以인 사유의 所以로 있는 ‘언어가 단절’되어 미치지 않는 세계가 설령 있단 대도, 없단 대도, 오직 이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의 이 선정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여래인 보리살타임을 석가여래가 깨달은 금강으로 바르게 보지 못한다면, 도올은 다만 이런 사유의 말을 하는, 이 차별의 삶을 사는 無位眞人인 연기의 실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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