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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55

이 앞의 11-5의 말미 而此福德勝前福德을 ‘이 여래의 복덕은 앞의 복덕을 인연·인과로 하여 일어서는 복덕으로써 불성의 부처이다.’라는 해석이 좀 미흡하다. 이 말은 ‘이 여래의 복덕은 앞의 복덕을 인연·인과로 하여 일어서는 복덕이 거듭하여 쌓이는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 곧 진리의 진실이다.’라고 풀어야 복덕이 실재의 실체로써의 복덕이 아니라 복덕으로 작동하는 작동성으로써 연기의 실상인 진리의 진실임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헐! 이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 대신 불성의 부처라고 했다고 해서 이 말들이 복덕이란 말로 격의된 말이 아닌 건 아니다. 이 此福德勝前福德이란 말은 이 보리살타의 반야바라밀을 아주 디테일하게 설명한 말이다. 필자는 이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다를 그물로 표상하여 설명한 것에 익숙하여, 이 복덕이 거듭 쌓이는 이 그물을 연상하는 데서 이 보리살타의 반야바라밀다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임을 알아보는 게 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필자의 선입견이 있어 ‘미흡하다’고 생각되어 ‘불성의 부처’란 말을 빼고 다른 같은 의미의 다른 말을 첨언해 본 것이다. 불성의 부처란 말도, 복덕이란 말도 진리의 진실인 이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이란 말에 담긴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격의하여 표상한 진리의 진실이다. 즉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이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임은, 마치 이 그물실과 그물실로써의 보리살타가 거듭 결합하여 그물코의 부처인 여래로써의 그물과 같은 형상의 상상으로써, 요즘 유전자 지도보다 더 복잡한 관계의 지도를 언어화한 말이 이 此福德勝前福德이란 말이다.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尊重正敎分 第十二

12-1. 復次須菩提! 隨說是經乃至四句偈等, 當知此處一切世間天人阿修羅, 皆應供養如佛塔廟. 何況有人盡能受持讀誦!

제12분 존중해야할 바른 가르침

12-1.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어디서나 이 경을 설하되, 사구게 하나라도 설하는데 이른다면, 마땅히 알라, 바로 이곳이 일체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가 모두 기꺼이 공양하는 부처님의 탑묘와도 같은 곳이 되리라는 것을. 하물며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 전체를 수지하고 독송함에 있어서랴!

[강해] 이 분 역시 대승불교운동의 역사적 상황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금강경의 성립이, 부처님의 탑묘와 같은 것이 많이 지어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 그런데 이 분의 근본사상은 바로 요즘의 교회나 사찰의 정황과 비슷하다. 목사님이나 스님께서는 헌당한다고 신도들을 못살게 구는데, 이 금강경의 기자는 바로 사구게 하나라도 외우는 그 자리가 바로 교회요 법당이요, 베드로의 반석이나 싣달타의 탑묘 보다 더 중요한 聖所가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운동의 진보적 성격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다.

--- 이 분 역시 여래를 말하는 것이다. 이 분의 제목이며 내용을 도올처럼 한문의 뜻만으로 해석한다면, 이 역시 여래로써 진리의 진실을 표상한 진리의 진실이긴 하지만, 이를 아는 깨달음인 진리인식이 무엇인지를 말한 진리의 진실과는 아득한 진리의 진실이다.

먼저, 도올이 이해해 말한 이 분의 제목부터가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선 까닭과는 아득하다. 한문 뜻대로 보면 불교를 엄청난 것으로 아는 이들이야 당근, 이 금강경의 이 분만이 아니라 불교가 ‘존중해야할 바른 가르침’이긴 하지만, 이건 아니다. 석가여래가 자기자신이나 자신의 깨달음을 스스로 이렇게 추켜세웠다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이 온통 연기의 실상임을 알고 말한 이로써 차마 할 수 있는 말이겠는가? 혹 제자들이나 타인들이 이렇게 추켜 준다면 모를까. 아, 그러니까 이 제목은 그의 쌔카만 제자인 소명태자가 지은 것이니 당신의 말에 딱 맞는구먼, 뭘 이를 걸고 드느냐구? 아니, 그렇다면 도올이 해석한 이 分의 내용을 바르게 보고 말하시라. 석가여래가 자신의 한 말을 점잖치 못하게 엄청 추켜세우고 있는 말이잖은가? 자기 말의 경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해야 한다는 말 아닌가. 이를 소명태자가 그대로 받아들여 석가여래가 자기의 가르침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니,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제목을 달았다면, 소명태자란 이 역시 석가여래의 정신을 모르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 尊重正敎란 말의 ‘존중’은 부처를, ‘정교’란 말은 보리살타의 여래라는 말에 담긴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이 한문의 뜻으로 격의한 것이다.

이 分名의 뜻은 ‘존중의 부처님은 정교의 보리살타인 여래로써의 지혜·반야바라밀이다’라는, 즉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이라는, 진리의 진실이라는 뜻으로 풀어야 구태여 불교의 부처를, 이 금강경의 금강을 이해하는데 가까운 말일 수 있다. 헐!

도올이 앞서 이 금강경은 석가여래가 한 말만이 아니라 역사적 산물로써, 이 금강경의 기자가 여러 사람들이 한 이런 모든 말들을 기록한 경책이라고 이해한 말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지만, 이런 것을 따지는 건 사실 이 금강경의 금강을 바르게 알아보는 진리인식의 깨달음과는 전혀 아득한 일이다. 하물며 도올처럼 이 분을 석가여래가 자신의 말이나 존중하라는 것으로 이해하거나, 이 금강경의 문자나 해석하여 강해하는 건, 진리의 진실을 말한 석가여래의 정신을 저버리고, 다만 진리의 진실로 말한 말이어서, 저 불상이나 불탑묘에 지나지 않는 진리인식의 깨달음과는 아득한 말인 것이다.

본문은 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이를 보는 내게서 멀거나 가까울 것 없이, 작거나 큰 것을 가리지 않고 一切가 온통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로써 연기의 실상인 진리의 진실인 이 금강의 불탑묘와 같은 것이므로 온통 존중받아야 할 것이라고, 비록 사람이 다른 뭘 읽거나 노랠 한 대도 이것임은 분명한 것인데, 항차 이 분명한 걸 밝힌 책을 읽고 노래하는 것이야 이를 말이겠냐는 것이다. 이 금강을 바르게 알아 바르게 알게 하는 진술을 해야지 다른 이해의 말을 하는 건 진리의 진실을 진술하는 게 아니라 다만 진리의 진실로 말을 하는 것일 뿐이다.

12-1. “그러므로 수보리야, 이 여래법은 이 여래법이나 사구게 등의 설명을 따르는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此處의 여래법은 일체의 세간이며 하늘이며 사람이며 아수라는 다 마땅히 여래법의 부처며 불탑이며 불묘로 받들어져야 한다. 하물며 어떤 사람에게나 다 여래법이 수지되어 할 수 있는 독송임에랴.

도올의 해석과 뭐 별다를 것 없는 해석이라고? 아니, 오히려 거칠고 투박한 해석이라 더 헷갈리는 해석이라고? 너무 지나친 견강부회의 해석이라고?

우리가 노상 듣던 해석의 어법이 아니라 낯설게 느껴지는 건, 우리가 지금까지 한문의 뜻에만 사로잡혀 이 한문의 뜻으로만 해석하는 데 익숙한 탓이다. 이는 오직 格義를 모른 탓이다. 격의를 바르게 알면 불교는, 이 금강경의 금강은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아주 쉬운 것이다.

이 분절은 석가여래 자신이 가르킨 존중으로써의 이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인 연기의 실상이라는 법은, 이 법의 경을 설명하는 수많은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으로써의 사구게 등을 따라서 일어나는 작동의 지혜이므로, 이 사구게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이 법의 경인 연기에 의한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성품의 삶은 마땅히 이 여래법을 표상한 불탑묘로 공양해야 하는 것인데, 항차 누구에게나 능히 수지되어 있는 이 여래법에 의한 여래법으로써의 독송을 하는 것이 어찌 여래법이, 보리살타의 반야바라밀인 연기의 실상이, 진리의 진실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자신의 말뿐만이 아니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이 온통의 보리살타에 의한 지혜의 반야바라밀多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를 말하지 않고 이 分이 가난한 사람 도와주지는 않고 불전탑묘나 거창하게 짓는 신부님은 빼고, 목사님이나 스님들을 훈계하는, 좀 더 나가 진보주의의 논리쯤으로나 이해하여 강해하는 건, 설령 이 이해의 말이란 대도, 이 이해의 말이 이 이해의 말인 까닭의 진짜이치를 밝힌 불교며, 이 금강경의 금강임을, 진리의 진실임을 말하지 않는 건 이 금강을 심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전혀 모른 것이다.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12-2. 須菩提! 當知是人,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 若是經典所在之處, 則爲有佛若尊重弟子.”

12-2. 수보리야! 마땅히 알지니, 이 사람은 최상이며 제일인 희유의 법을 성취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 경전이 있는 곳이 바로 부처님과 그의 존경스러운 제자들이 계신 곳이 된다는 것을.”

[강해] 이것은 교회론의 최종적 해석이다. 내가 이 금강경을 내 방에 꽂아두면(그 말씀을 내 방과 내 마음에 모시면) 곧 내 방이 부처님의 사리탑이 되고 법당이 되는 것이다. ·····. 그 얼마나 참신하고 과격하고 진실한 사상인가? 동포들이여! 앞으로 오는 세기에는 이제 불필요한 건물들 좀 그만 짓자. ·····. 마음의 교회와 법당이 사라져 간다면, 예수님과 부처님의 도적같고 ·····, 벼락같은 지혜의 말씀을 내 마음에 안치함이 없이 공허한 건물들만 짓는다면, ·····.

--- 도올이 말하는 이런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 경의 책을 주머니에 넣고만 있어도, 뭔 말뜻인지도 모르고 노래만 한 대도, 누구 한 사람 별 다를 것 없는 아주아주 공평무사한 인간사회가 되면, 아니, 이건 얼마나 심심한 세상일까? 이 경만 있으면 도올처럼 핏대 올리며 동포들을 향해 포효할 일도 없을 것이고, 배고프면 먹을 거 척척, 놀다가 지치면 잠 쿨쿨. 일 욕심 많은 사람들이 백배 천배로 일해 일 욕심 없어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 다 먹여살려주는 천국이라면, 아니 그런데 이 지구라는 거대한 궁전에, 아니다. 이 우주라는 초거대의 법당에 이 경전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모셔져 있는 것인데, 아니, 그런데 왜 이리 세상은 빤할 날이 없이 죽이고 살리는 아수라장인가? 이놈의 우주엔 맘이 없어 ‘마음의 교회와 법당’이 사라질 것도 없이 아예 없기라도 한단 말인가?

‘얼굴만 이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이뻐야 여지지 운운’하는 노래가 있다. 요즘 이런 노랠 부르면 혹 성적차별 가사라고 당장 혼찌검이 날지도 모른다. 이 가사 내용중에 ‘마음이 비단같이 고와야 진짜 여자’라는 구절도 있다. 이는 ‘비단같은 맘’이라는 말만 알아서는 안 되고, 이 맘의 씀씀이가 ‘비단같이 고와야’ 진짜 여자란 것이다.

도올은 이 사람의 맘속에 이 금강경을 두어야지 거창한 당우를 지어 이 금강경을 두는 건 공하한 짓이라고 한다. 맘속에 금강경을 둔다는 거야 금강경이라는 책이 있다고만 아는 앎을 맘속에 두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아는 맘이라야 한다는 의미의 말일 터이다. 하지만 이것이 비록 마굿간이거나 거창한 당우랄 지라도 그 속에 이 책을 두는 것과 뭔 상관이 있단다고 교회와 법당 짓는 이들을 홀대하는 말을 하는가? 도올 자기는 오래된 교회나 절간으로 인하여 자기의 지적 축적이 도저하고, 이를 칭찬하는 말로 밥술이나 먹으면서 이런 걸 짓는 이들에 대하여 함부로 말을 해도 되는 건가? 비록 ‘불필요한’ 거라고 했지만, 이 세상에 불필요한 것이 대체 어디 있단 밀인가? 설령 사람이 만들었단 대도, 사람에게 소용이 없단다고 불필요한 것이랄 것인가?

이 금강경을 이해하면 이런 거창한 살림살이를 살지 않고 소박한, 어떻게 돈을 벌지는 모르겠지만, 어려운 사람들이나 도와가면서 사는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살림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 건, 구태여 불교의 이 금강경의 금강이 선 까닭이 사람의 윤리·도덕적 삶을 제시한 경의 법이 아니라, 인간이란다면 이런저런 이 윤리·도덕적 삶의 살림살이가 바로 진리의 진실인 금강임을 바르게 아는 진리인식의 깨달음으로 서있는 연기의 실상임을 바르게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이 금강경을 내 방에 꽂아두던, 그 내용은 그만두고 책명이나 맘속에 담아두던, 이걸 불국사며 앙코르와트에 담아두던,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이라는 말속에 담아두던, 이건 전혀 내 자유다. 간섭하지 말라. 뭔 지식의 알음알이나 많다고 집지을 줄밖에 몰라 무식한 이 약자사람들을 사람 삶에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으로 취급하지 말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오직 연기의 실상으로써 진리의 진실인 부처며 이를 표상한 부처로써의 불탑묘인 진리의 진실임이니. 대체 이 경책이 모셔져 있는 지구가, 이 우주가 도무지 알 수 없을 만큼 넘 크고 화려하단다고 이 지구를, 우주를 깨버려야 금강경을 진정으로 안 맘일 것인가?

이 分은 석가여래가 바르게 가르킨 존중의 보리살타에 의해 받아 지녀지는 반야바라밀로서의 여래를, 진리의 진실을, 연기의 실상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분절을 도올처럼 사람의 윤리로 이해하여 해석하는 건 비록 진리의 진실이긴 하지만 석가여래가 깨달아 말한 진리의 진실을 이해하여 말한 말은 아니다.

이 분절은 이렇게 해석되어야 석가여래가 깨달은 생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헐!

12-2. 須菩提! 當知 是人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若是經典所在之處, 則爲有佛若尊重弟子

수보리야, 마땅히 알라. 이 여래의 사람이 성취한 최상제일의 희유한 법은 반야의 지혜라는 법이다. 이 반야 지혜의 여래법은 바로 이 반야지혜의 여래법이 있는 곳이다. 이 여래의 법칙은 부처의 불성인 지혜를 있게 하는 법이어서 ‘공경할 씨앗으로 존중된’ 이 보리살타의 부처이다.

이 금강경은 분명 도올이 말한 대로 역사적 산물인 건 맞다. 그러나 뭔 대승이랄 것이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역사, 이것이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는 이 대·소승적 작동의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데, 무슨 대승운동이랄 게 따로 있을 것이 있단 말인가. 설령 이 대승운동이란 것이 사람들에 의한 과거역사의 사실이었단 대도, 이는 다만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인 연기의 실상으로써 진리의 진실인 부처이다. 이를 이렇게 바르게 알아보는 이 진리인식이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 선 까닭이지, 이 대승적 사회운동이 참신하고 과격해 사람 삶에 매우 쓸모있는 것으로 말하는 건, 이 금강경의 금강을 매우 오해한 금강인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과 부처님의 말씀이 뭔 ‘도적같고’ ‘벼락같은’ 지혜의 말씀일 것인가. 성경의 ‘도적같은’이라는 말의 문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말이 이 금강경의 금강을 일컬은 ‘벼락같은’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란다면, 이는 예수님과 부처님의 뭔 말씀이 이렇게 ‘도적같이’ ‘벼락같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는 것이 아니고, 저 하나님의 섭리는, 여래의 보리살타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에 ‘도적같이’ 스며들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의 삶으로 ‘벼락같이’ 작동하게 하는 이 하나님의 섭리며 여래의 보리살타인 이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을 가르킨 말이다.

종교는 종으로써의 진리의 진실을 가르키는 통찰로써의 가르킴이다. 이 종교로 말해지는 모든 언어문자는 이 종으로써의 진리의 진실을 표상한 진리의 진실로써 이를 가르키는 손가락질의 한 통찰이다.

오직 이 진리의 진실을 사유하여 말해야지, 단지 이 진리의 진실로 사유하여 말하는 건, 이 진리의 진실을 아는 진리인식의 깨달음과는 아득한 깨달음의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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