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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56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如法受持分 第 十三

13-1. 爾時, 須菩提白佛言: “世尊! 何當名此經, 我等云何奉持?”

第 十三 分 법에 따라 받아지녀라

13-1. 이 때에, 수보리는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경을 마땅히 무어라 이름하오며, 우리들은 어떻게 이 경을 받들어 지녀야 하오리까?”

13-2. 佛告須菩提: “是經名爲金剛般若波羅蜜, 以是名字, 汝當奉持.”

13-2.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이 경을 이름하여 금강반야바라밀이라 하라. 이 이름으로써 그대는 이를 마땅히 받들어 지닐지라.”

[강해] ·····. 실제로 금강경의 주된 암송이 여기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짧고 아쉬우니까 그 후에 딴 암송자들이 앞의 내용을 부연하여 반복하면서 계속 늘여갔을 것이다. 사실 내용적으로 보면 이 이후의 금강경은 여기까지의 내용의 蛇足에 불과하다. ·····. 콘체는 이 13分에서 29分까지의 자기 번역을 자평하여 “도움이 안 되고, 결착이 나지 않으며, 지루하고, 영감이 결여되어 있으며, 아주 적극적으로 혼란스럽다.”고 까지 혹평한다. ·····.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나는 이렇게 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이후의 부분이 잡스러운 비빕밥 재탕일 수는 있으나, 이 뒷부분이 없다면 금강경은 진실로 소품에 머물렀을 것이고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마력을 상실했을 것이다. 끊임없는 반복은 반복이 아닌 변주며, 그것은 아마도 금강경의 기자들에 의하여 세심하게 오케스트레이션된 의도된 구성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의도를 살리는 방향에서 살을 붙이고 문법적 구도를 부드럽게 가다듬고 음색을 자연스럽게 하여 새롭게 연출해 낼려고 노력할 것이다. 제현들의 奉持하심이 있기를 비오나이다.

--- 누차 말하지만 이 금강경은 석가여래가 사람의 삶의 방향·형식으로써의 윤리를 말한 게 아니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의 모든 이치를 한 꿰미에 꿴 진짜이치, 곧 진리의 진실을 말한 진리의 진실이다.

이 금강경 내용을 소명태자라는 이가 32分으로 분별하여 각각 제목을 단 것은, 이 각 分이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32가지의 서로 다른 관념적 부동태로써의 언어가 갖고 있는 개념으로 설명함에 있어, 이 언어의 개념이 실재의 실체가 아니라 실제 시·공간적으로 작동하는 작동성으로써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임을 설명하는 것이므로, 이 설명내용을 압축한 언어로 제목을 달아 이 제목으로 석가여래의 깨달음인 진리의 진실을 재차 격의한 것이다.

이 分의 제목인 ‘如法受持’는 이 석가여래의 깨달음이 담긴 여래로써의 법인 이 如法이 실재의 실체가 아니라 상대적 인식으로 ‘받아 가진’, 즉 受持한 생각으로써의 관념적 허상이라는 뜻의 제목이다. 이 分의 前分들이 보리살타로써의 여래인 반야바라밀이라는 법을 이런저런 언어며 그 개념의 실제로 설명했다면, 이 분은 이 분 이전에 설명했던 내용의 이 설명뿐만 아니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 작동하는 이 작동에 이 여래법으로써의 보리살타가 수지되어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바르게 이해하기가 좀 매우 복잡하다. 평면적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기하학적·입체적 사고로 이해한 대도, 이 사고로써의 실재의 실체랄 것이 아니라, 이 사고로써의 기하·입체적 작동성으로써의 중중무진임을 바르게 보아야한다. 즉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이 모든 성품의 삶이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인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다며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므로,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완전 자유며 평화며 자비며 사랑 등으로 작동하는 작동성이라는 석가여래의 이 깨달음을 바르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사다리꼴로 그려 이해하지만 이 여래법으로써의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은 이런 꼴을 상상해서는 도무지 미치지 못한다. 상상해 보자. 열차가 정해진 레일 위만 달리기는 하지만 이 열차나 레일이 만들어지는 건, 이렇게 정해진 몇 개의 부품이나 조건만으로 만들어 지는 게 아니라, 좀만 생각해 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옛날 말로 말하면 四大의 지·수·화·풍, 곧 삼천대천세계가 온통 인연·인과로 작동하여 만들어 진 것이잖은가.

이는 열차 따위, 특정의 어떤 것만 이런 게 아니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 스스로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작동성인 것이다.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은 육근이며 오온작동의 삶을 사는 인간성품에 의한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으로 받아 지닌 법, 곧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이라는 여래로써의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라는 이 법이므로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는 오직 작동하는 작동성인 것이다.

이건 오직 인간에 의해 이런 것이라고? 이 생각에 사로잡혀 있단다면, 이 사로잡힌 인간이, 이 인간을 사로잡히게 한, 이 상대적인 것의 상대로 작동하는 연기의 실상임을 바르게, 석가여래가 깨달은 대로 바르게 깨닫지 못한 것이다. 헐!

이를 모르고 이 分의 제목을 ‘법에 따라 받아지녀라’라고 명령조로 이해하여 말하는 것은 이 금강경의 금강인 진리의 진실을 말한 말이 아니라 다만 진리의 진실로 말한 말일 뿐이다.

‘如法受持’는 ‘여래의 법은 받아 지녀진 것이다.’라는 뜻의 제목이다. 즉 이 제목으로 설명되는 이 설명의 말에 이 여래의 법, 곧 보리살타가 수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의 뜻을 보지 말고 이 설명의 말이 가르키는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사유의 말을 해야 진리의 진실을 말한 말인 것이다.

이 금강경은 진리의 진실을 말한 말이다.

이 分의 어법을 바르게 보시라. 도올처럼 해석을 한 대도, 이 석가여래가 깨달은 여래법인 보리살타로써의 금강반야바라밀이라는 법은 실재의 실체로 있었거나, 있거나, 있어질 법이 아니라, 이렇게 얻어진 생각으로 받아 지녀야 한다는 것이잖은가. 이런 늬앙스로써의 아우라가 팍 느껴지지 않는가?

이 금강경은 분명 석가여래가 직접 말한 말은 아니지 싶다. 불교역사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예수기원 전후의 작품이라면, 그때까지 석가여래의 정신이 음·암송으로 또는 문자로 전해지며 이를 이해한 다른 이들의 음·암송이며 문자도 분명 첨가되거나, 또 잘못 음·암송되거나 문자화한 것을 빼거나 수정하며 만들어진 역사적 저작임이 분명하다. 왜냐면 석가여래가 수보리에게, 또는 다른 이름의 법을 설명하며 자기가 말한 법의 이름까지 작명해 줬을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 分은 이 分의 전체 내용으로 볼 때 이 분의 제목에서 말한 대로, 석가여래가 깨달은 금강으로써의 보리살타에 의한 지혜의 반야바라밀이라는 이 여래의 법·경, 곧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라는 이 법·경은 名, 즉 有名無實로써 말뿐인 이 말에조차 恭承, 받들어 지녀져 있음을, 受持·奉持임을 설명한 분임이 분명하다.

이 바른 뜻으로 석가여래가 말한 금강의 법인 경이 마침내 오늘날 도올이 해석한 대로 해석되어지는 까닭은 분명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오해한 이가 문자를 가감했거나 바꿔치기 했거나 해서 이 언어문자의 뜻을 왜곡하여 전승했을 가능성이 높은 연기의 실상이다. 헐! 名을 단순히 ‘이름’이라고만 알고 이 分을 이해해야 할 것인가? 名이란 말의 안팎, 곧 이 名이라는 언어문자의 형상이며 그 속으로써의 뜻이 온통 연기의 실상인 진리의 진실임을 바르게 보시라.

이 금강경은 지금 우리가 해석하는 대로 해석해서는 전혀 금강이 아니다. 우선 이 분절에서 눈에 띄는 잘못된 해석을 건져보자면 ‘白佛’이라는 말이다. 이는 이 문장에서 석가여래를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다. 오히려 ‘부처’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말은 부처가 아닌 보리살타를 지칭한 말이다. 즉 ‘수보리백불언’이라는 말은 ‘수보리보살이 말했다’이다. 이 ‘白’자의 용례를 바르게 살피시라.

‘수보리보살이 말했다’와 ‘수보리가 부처님에게 말했다’라는 이해의 말은 아주 미세한 차이의 말이다. 그렇다고 수보리가 아직 부처가 덜 된 애송이라고 아는 건, 진짜 이 금강을 모른 것이다. ‘수보리보살’이란 ‘수보리는 수보리라는 이름의 지혜로써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이 보리살타임’을 일컬은 말이다. 즉 수보리는 세존에게 말을 하는 작동성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이른 말이다. 그럼 석가여래를 지칭한 부처란 말은 이것이 아닐 것인가?

佛과 白佛은 사실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단지 이 금강경 저자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세존과 수보리를 분별하여 부르는 호칭일 뿐이다. 이는 선생님이나 제자가 꼭 같은 사람이긴 하나, 이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제자로 작동하는 이와, 이미 이 선생님으로 작동하는 사람은 분명 다른 이름으로 작동하는 사회적 작동성인 것이다.

이런 미세한 차이의 해석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점점 큰 차이의 해석으로 굳어 마침내, 여기 도올의 해석처럼 석가여래의 정신과는 아득해져 버린 금강경이 되고만 것이다.

이 금강경을 읽고, 또는 반야심경 이백 몇 자를 읽고 이 금강이며 반야라는 말에 담긴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바르게 안 이가 대체 몇 분이나 있을 것인가?

다음 분절들에서 이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으로써의 부동태인 이름들에 이 보리살타의 여래라는 법이 受持·奉持되어 있는 연기의 실상임을 자세하게 설명하니 이를 바르게 보리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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