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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72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一體同觀分 第十八

18-1.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肉眼不?” “ 如是. 世尊! 如來有肉眼.”

제18분 모든 것을 한 몸으로 보아라

18-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육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육안이 있사옵니다.”

--- 이 分 역시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서의 세계가 총체적 인연·인과의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연기의 실상으로써 보리살타의 부처인 여래법이라는 이 ‘한 몸으로 통하는’ 一體同關의 진리의 진실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여래의 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육안이란다면, 이 육안이라는 것을 있게 할 수 있는 법이냐 아니냐를 묻는 것이다.

18-1. “수보리야, 뜻으로 말하면 어떤 것이냐? 여래는 (실재의 실체랄)육안으로 있는 것이냐, 아니냐?”

“보리살타의 이 육안이므로, 세존, 여래로 있는 육안입니다.”

‘여래’를 법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석가여래로만 본대도, 석가여래라는 한 몸으로 있는 이 육·천·혜·법·불안 이듯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꼭 같은 하나의 법으로 통’하는 一體同關의 여래임을 말해야 한다.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18-2.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天眼不?” “ 如是. 世尊! 如來有天眼.”

18-2.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천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천안이 있사옵니다.”

[강해] 앞 절에서 말한 ‘육안’은 그냥 우리말대로 육안이며, 우리의 평상적 몸을 구성하는 감각기관으로서의 육안이다. 그로나 육안이라는 말은 항상 어폐가 있다. ‘눈이 본다’할 때, 과연 눈이 보는가? 눈동자를 후벼 파내어 책상위에 놓는다면 과연 그것은 보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 감각기관의 기능의 국부성은 그것 자체로 독립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을 가능케 하는 신체 전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도 상식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우리 몸의 사태이다. 눈은 결코 보지 않는다. 그것은 보는 과정의 한 단계를 담당하는 빈 그릇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다’고 하는 전체적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바로 여기서 말하는, 肉眼-天眼-慧眼-法眼-佛眼이라는 총체적 과정인 것이다. 이것은 생리적 과정의 사실인 동시에 우리 인식의 단계적 제고를 말하는 것이다.

--- 옳다. 우리의 육안인 눈이 독립적 개체로 작동하는 실재의 실체랄 것은 없다. 우리 몸 전체일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가 총체적 인연·인과의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연기의 실상인 보리살타의 부처인 여래로써의 육안인 이 ‘눈이 보는’ 작동기능인 것이다. 이 肉眼-天眼-慧眼-法眼-佛眼이 각각 어떤 기능의 눈들로써 작동하든지 오직 이 여래의 법이라는 한 몸의 ‘일체로 통’하는 ‘일체동관’임을 말하는 것이 이 分인데, 도올은 우리가 ‘본다’는 이 기능이 ‘肉眼-天眼-慧眼-法眼-佛眼이라는 총체적 과정인 것이다. 이것은 생리적 과정의 사실인 동시에 우리 인식의 단계적 제고를 말하는 것’이라고 말하니, 대체 이 뜻을 어떻게 풀어 이것이 일체동관임을 증명하는지 그의 설명을 더 기다려 보자.

18-2. “수보리야, 뜻으로 말하면 어떤 것이냐? 여래는 천안으로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보리살타의 이 천안이므로, 세존, 여래로 있는 천안입니다.”

이 분절의 천안이라는 것 역시 보리살타의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여래로서의 부처인 연기의 실상임을 묻고 대답하는 것이다.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18-3.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慧眼不?” “ 如是. 世尊! 如來有慧眼.”

18-3.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혜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혜안이 있사옵니다.”

--- 18-3. “수보리야, 뜻으로 말하면 어떤 것이냐? 여래는 혜안으로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보리살타의 이 혜안이므로, 세존, 여래로 있는 혜안입니다.”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18-4.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法眼不?” “ 如是. 世尊! 如來有法眼.”

18-4.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법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법안이 있사옵니다.”

--- 18-4. “수보리야, 뜻으로 말하면 어떤 것이냐? 여래는 법안으로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보리살타의 이 법안이므로, 세존, 여래로 있는 법안입니다.”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18-5.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佛眼不?” “ 如是. 世尊! 如來有佛眼.”

18-5.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불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불안이 있사옵니다.”

[강해] ‘慧眼’은 지혜의 눈이다. ‘法眼’은 현상계의 형체를 넘어서 그 다르마(법) 그 자체를 직시하는 눈일 것이요, ‘佛眼’은 모든 존재의 구분이 사라진 如如의 눈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설명 자체가 구차스러운 것이다. 독자들이 스스로 느끼는 대로의 의미가 가장 적합한 의미가 될 것이다.

--- 옳다. 언어문자의 개념은 구태여 불교의 이 금강경이 선 까닭과는 아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언어문자를 어떤 개념의 뜻으로 안대도 상관없다. 우리들끼리 그 뜻이 서로 통하기만 한다면. 그렇더라도 구태여 이 불교의 금강경이 선 까닭은 이 모든 언어문자가 진리의 진실을 표상한 진리의 진실이므로 이 진리의 진실이라는 뜻으로 통하게 할 수 있는 설명의 말이어야 한다. 이 分에서 말하는 눈들을 진리의 진실을 말한 뜻의 말로 풀어 말해야 한다. 육안은 그야말로 우리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을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 알아보는 눈이다. 천안은 육안에 비쳐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다. 혜안은 육·천안에 비쳐지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는 작동성임을 알아본 눈이며, 법안은 이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법, 곧 보리살타로써의 여래법을 알아본 눈이며, 불안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가 온통 이 보리살타의 여래법으로 드러난 부처임을 알아본 눈이다. 이 눈들은 이 삼세가 온통 진리의 진실이라는 이 ‘꼭 같은 하나의 몸으로 통’하는 일체동관의 여래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설령 이런 개념의 눈이 아니라 다른 의미의 눈이라고 하더라도, 이 눈에 비쳐지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은 온통 진리의 진실이라는 이 ‘꼭 같은 하나의 몸으로 통’하는 일체동관의 여래인 것이다. 이를 바르게 생각하여 말하지 않고 자신의 이 눈에 대한 ‘설명 자체가 구차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도올의 이 눈에 대한 설명에서, 단순히 눈만이 아니라 모든 언어문자의 개념이 어째서 구차스러운 것인지 바르게 설명하는지 지켜보자.

사실은 이 分의 절절들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은 하나 같이 진리의 진실이라는 여래법으로 통하는 一體同關인데 ‘구차스럽게’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의 이름으로 지어져 불리는 연기의 실상이라는 이 금강법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18-5. “수보리야, 뜻으로 말하면 어떤 것이냐? 여래는 불안으로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보리살타의 이 불안이므로, 세존, 여래로 있는 불안입니다.”

‘에구, 더워 미치겠다. 오늘이 중복인데, 에어컨을 사야 하나, 어째야 하나?’ 바르게 보시라. 우리의 이 일상적 한마디 말은 肉眼-天眼-慧眼-法眼-佛眼이라는 총체적 과정이며 생리적 과정의 사실인 동시에 내 인식의 단계적 과정의 提高, 들어 올려 진 말이 아니라, 육·천·혜·법·불이라는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의 눈인 이 識(앎)으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총체적 인연·인과의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연기의 실상이라는 일체동관의 법으로 드러난 말임을 바르게 보시라.

이 分에서 육·천·혜·법·불안의 눈을 거론하는 까닭은 우리의 눈이 ‘본다’고 하는 이 ‘전체적 과정’이나 ‘생리적 과정의 사실’이나 또 ‘우리 인식의 단계적 제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람성품이 이런 여러 눈으로써의 상대적 인식작동으로 사는 삶으로써의 일체동관이듯이, 이 여러 눈으로 비쳐지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 역시 연기의 실상이라는 이 ‘하나의 법으로 통’하는 일체동관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도올이 구태여 불교의 이 금강경으로 세운 이 금강의 법을 바르게 설명하는지 지켜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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