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작은 속삭임, 결국 ‘하나된 큰 마음으로’

김인숙 수녀 2012.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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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의 ‘부치지 못한 편지’

삐딱 패션 친구들도 선생님 손길 느낄 때마다 힘 얻어

제자의 뻔한 거짓말도 모른척, 지나고보니 가슴 뜨거워


ss6_P_0.jpg » 한겨레 자료사진.



나는 예고 없이 수녀님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불쑥 물었다.   

“수녀님,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지금도 생각나는 선생님 혹시 계시나요?”

“네, 있어요. 그런 선생님.”


아무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질문을 받아도 금방 떠오르는 그런 선생님을 나는 원했다. 그런 선생님이 모두 있지는 않았다. 

“죄송해요. 없는데요.”

“저는 선생님과 친하질 않아서…….”


누가, 언제, 어디서 물어도 말할 수 있는 ‘그리운 나의 선생님’을 알려준 대로 소중히 정리해 보았다. 




박순자 아녜스 수녀                                                        

교대를 갓 졸업하고 오신 박정남 선생님은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셨다. 시골이었던 우리 학교는 겨울이면 교실에 난로를 피웠고 아이들은 땔감으로 솔방울을 한 보따리씩 들고 왔다. 난로 위에는 우리들의 도시락이 올려졌다.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도시락을 옮겨 주려고 장갑을 찾고 있어서 나는 얼른 내 장갑을 선생님께 내밀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도시락을 옮기다 그만 내 장갑을 태워버렸다. 나는 선생님께 괜찮다고 했으나 선생님은 새 장갑을 사 오셔서 나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순자야, 이것은 나의 실수로 태운 것이니까 너에게 다시 줘야 한다. 자신의 실수는 언제나 인정해야 한단다.”


어느 날 실습시간과 과학시간에 뽕잎을 따러 갔다. 선생님은 그 때마다 ‘이것도 수업시간이니 충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대신, 수업시간 45분에서 30분은 뽕잎을 따고 15분은 오디를 따 먹게 했다. 선생님은 언제나 ‘놀 때는 놀고 할 때는 하자’였다. 


나는 선생님을 통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과 해야 할 일은 누가 보든 안 보든 정도를 걸어야 함을 배웠다.  



조근영 아가다 수녀                                                         

제가 가장 뵙고 싶은 선생님은 중학교 1학년 서정숙 국어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은 키가 작고 목소리는 허스키, 굵은 파마가 잘 어울리는 열정적인 분이셨지요. 그 분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자유로움을 주고 싶어 하셨어요. 그러면서도 우리들이 학교 교육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셨지요. 


선생님은 매일 아침, 일단 우리들의 머리와 손톱 검사를 하시면서 아이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살피셨어요. 그것은 검사의 차원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점점 깔끔하고 정돈된 학생으로 변해 갔습니다. 무스로 멋을 부리고, 삐딱 패션의 아이들도 선생님의 손길로 인해 차츰 정돈되어 갔습니다. 저를 사랑해 주신다고 느낀 것은 머리 검사를 할 때 짧은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개별적으로 “근영아, 어쩌구 저쩌구…”라고 하시며 속삭여 주실 때였어요.


선생님에겐 특별한 마력 같은 것이 있었는데 우리 반 모두를 한 마음으로 일치시켜 체육대회를 해도 1등, 공부도 1등, 숙제 잘하는 것도 1등, 떠드는 것도 1등, 노는 것도 1등으로 만드셨습니다. 교무실 바로 옆, 우리 1학년 2반은 너무 떠들어서 늘 방송을 탔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우리를 한 번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방송이 나오면 그냥 웃어 넘기셨지요.


여름방학이 되었을 때 저는 선생님께 몇 번이나 편지를 쓰다가 다시 지우고 보내려다 망설이길 몇 번 반복하다, 결국 용기가 없어 편지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개학날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복도 유리창을 닦고 있던 내 옆으로 슬그머니 오셔서 물었습니다. 


“근영아 방학 잘 지냈어? 선생님이 너 편지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왜 편지  안 썼니?”


쑥스러움을 많이 탔던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몇 번이나 보내려다 망설였다는 사실을 차마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선생님의 중대 발표가 있었습니다. 2학기를 시작하면서 사랑하던 서정숙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가신다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왜…… 왜…… 왜? 그 날부터 우리 반은 모든 것이 뒤쳐졌습니다. 공부도, 놀이도, 떠드는 것도, 체육대회도 우리들의 희망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며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갔습니다. 


짧은 기간에 우리를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으시고, 하나로 똘똘 뭉치게 했던 선생님.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이 늘 귓전에 맴돕니다.


“근영아, 선생님이 너의 편지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그리운 서정숙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정말 좋아한다고, 감사하다고 쓴 편지를 보내지 못했어요. 선생님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열정적이셨던 교육자, 엄마 같은 선생님, 제 마음을 가득 채우셨던 선생님, 어디에 계시나요?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적은 저의 편지를 이제야 선생님께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이정숙 아순타 수녀님                                                         

미술을 가르쳤던 최베드루닐라 수녀님은 조그만 시골 중학교 저의 담임이셨습니다. 3학년 때의 일입니다. 수학여행을 가야 했으나 우리는 형편이 되지 않아 갈 수 없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선생님께서 ‘농번기 모심기’ 알바를 나가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우리는 대 찬성, 선생님과 함께 논으로 갔습니다. 학생들과 열심히 모를 심으신 선생님은 우리가 지루해 할까봐 녹음기를 가지고 오셔서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돈을 벌어 수학여행을 모두 갈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도 담당하신 선생님은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헤밍웨이, 톨스토이 등 대문호 작품들의 책을 읽으라고 주셨는데 이해도 안되고 어려웠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 실망 드리지 않으려고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나는 선생님 덕분에 책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도 잠자기 전에 꼭 한 페이지 이상씩 책을 읽고 자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작년 10월에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선생님은 늘 격언과 삶의 지지 편지를 보내주시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밑받침이 되어 주셨지요. 살아계실 때 중학교 동문 카페에 저의 소식을 알리면서 “이 수녀가 이렇게 어려운 곳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도움이 되어주라”는 글을 남기셨습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제자에게 선생님이 보낸 마지막 편지 역시, 언제나 스승이셨습니다. 


“아순따 수녀님! 일 많이 하는 것은 좋은데 바른 건강, 바른 정신, 잘 간직하도록 조심하시고 새해에도 하느님의 축복 가득하시도록 기도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위옥희 엘리사벳 수녀                                                         

조용근 수학 선생님은 나의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이셨다. 우리 반 모두가 인정하는 담임선생님은 수학 과목을 열정적으로 정말 잘 가르친다는 것과 연민이 많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수학 과외로 수입도 꽤 많았으나 선생님은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아낌없이 줘버려 셋방을 살 정도로 언제나 가난하셨다. 


내가 수녀가 되어 수학교사로 발령을 받았는데 몇 년 동안 교직을 그만 둔 상태에서 다시 수학을 가르치려니 심적 고통이 굉장했다. 누구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할까 고민 끝에 바로 ‘조용근 선생님이라면….’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즉시 그분의 행방을 추적하였다. 그동안 아무 연락 없이 지냈으나 나는 선생님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선생님은 서울 유명한 학원에 명강사로 계셨다. 나는 선생님 강의를 무료로 들으며 자신감을 얻고 학교 강단에 설 수 있었다. 수학을 엄청 잘 가르친 선생님 덕택에 우리 동기들은 수학과를 많이 선택했다. 



김은경 세실리아 수녀                                                         

그리운 나의 스승은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이혜숙 선생님이시다. 시골 아이들인 우리는 도시에서 여선생님이 오신다고 해서 무척 좋아했다. 서예를 잘 하신 선생님은 붓글씨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모집하였는데 나도 그 반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나에게 서예반 문을 열 수 있는 권한을 주었는데 속으로 나는 선생님께 사랑을 받고 있구나, 생각했다. 선생님은 우리를 붓글씨 대회에 자주 참가시켜 상도 받는 기쁨도 맛보게 해 주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크리스마스 즈음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물으셨다. 나는 대뜸 성경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잊어버렸는데 선생님은 신약성서를 사서 시골 꼬맹이에게 주셨다. 정말 감동적인 선물이었다. 수녀가 된 뒤, 나는 선생님을 꼭 한 번 만나게 해달라고 계속 기도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녀원에서 초등학교 교사들의 성서그룹 나눔이 끝나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때 나는 외출을 하고 들어오다 그 그룹과 마주쳤는데 너무 낯익은 한 분이 계셔서 물었다. 


“혹시 이혜숙 선생님이 아니세요? 저… 동곡 초등학교 생각나세요?” 


선생님은 금방 “아, 김은경, 동곡에 김은경?”하시며 놀라셨다. 이렇게 선생님과 나는 극적인 상봉을 하였다. 



유미화 마리아 수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김진숙 담임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주었다. 머지않아 식목일이니 집에 나무 한 그루씩 심어 놓고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할 때 그 나무를 꼭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학교 숙제라 하면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해냈다. 숙제를 안하고 학교에 간다는 건 내 자존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기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 내가 아, 그 나무 심는 숙제를 잊고 말았으니….


가정 방문 날, 엄마와 초면 인사를 마치신 선생님께서 “미화야, 네가 심어놓은 나무 어디 있지?” 하실 때 나는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숙제를 안 했다는 말은 죽어도 하기 싫어 입을 꼭 다물었다. 선생님은 눈치를 채셨는지 더 이상 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다음은 영희네 집 방문이었다. 선생님을 앞질러 영희네 집을 향해 가던 나는, 잊어버린 숙제에 대해 점점 더 화가 났다.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선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그리고 나는 손을 뻗쳐 손가락으로 한 그루의 나무를 가리키며 모기만한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여기 이 나무 제가…… 심은…… 거예요.”


그 나무는 30년도 훨씬 넘은 우리 동네 밤나무였다.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는 내 귀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뜸을 드린 후 천천히  “으∼응, 이 나무…… 이 나무를 심었구∼나∼.”


선생님은 한참을 논 뚝 길에 서서 그 큰 밤나무를 쳐다보시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선생님 뒤에서 선생님 구두 뒷굽만 찍어보며 걸었다. 지금도 그 일만 생각하며 혼자 있어도 부끄럽다. 그리고 그 밤나무는 잊었지만 제자의 마음을 읽어준 선생님의 “으∼응, 이 나무…… 이 나무를 심었구∼나.” 하신 말씀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 가슴을 뜨겁게 달궈 놓고 있다. 





‘그리운 선생님 이야기’는 이쯤에서 멈추고, 못다 실은 사연은 소중하게 저장해 놓았다.  또 여기에 실린 선생님 이야기는 들려준 순서대로 정리하였지 선별한 것이 아님을 알리고 싶다. 나는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잊어지지 않는 선생님들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자신의 전공과목을 열정적으로 가르쳤으며 교사직에 열정적이었다

둘째, 아이들을 존중하고 아이와 개인적인 만남을 하였다

셋째, 아이들은 수녀 선생님을 따라 수녀가 되고, 수학 선생님을 따라 수학 교사가 되었다. 즉 스승은 제자의 거울이라는 점이다. 




돈보스코 예방교육 영성    

예방교육자 돈보스코는 교육자로서의 뚜렷한 표지는 불타는 사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교육은 마음에 관계하는 것’이기에 ‘마음이 없는 사람을 교육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돈보스코는 또 교육자의 체면이 손상되는 것은 피하면서도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에 어떤 동등성이 존재하기를 바랐습니다. 돈보스코는 말합니다.  “교육자가 과거의 학생으로부터 ‘나의 선생님은 결코 날 알지 못했다. 한 번도 날 이해한 적이 없었어.’라는 말을 듣는다면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예방교육은 관계의 교육학입니다. 관계는 모든 교육의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관계가 빠진 교육은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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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수녀
청소년 교육에 헌신하는 살레시오회 수녀이다. 현재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마자렐로센터'에서 돈보스코 예방교육영성을 바탕으로 10대 소녀들의 교육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둘째오빠> <어머니 당신이 희망입니다> <버림받은 사람들의 어머니 테레사> <너는 젊다는 이유 하나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 < 너는 늦게 피는 꽃이다>가 있다.
이메일 : clara2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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