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서로 마음을 열어 고민과 아픔을 나누고 치유하며 행복을 모아내는 게시판입니다.

도올의 금강경 오해 25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4-2. 所謂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應如是布施, 不住於相.

4-2. 이른바 색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고, 성·향·미·촉·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다는 것이다.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보시할 것이며, 상에 머물러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강해] 종교의 사회적 기능으로서 우리는 반드시 “구제,” “보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가 실제적으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측면이 심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세에서 끊임없이 그 조직이 유지되는 이유는 아마도 이 보시의 기능때문일 것이다. ·····. 그런데 우리가 대승의 인식론으로 들어가게 되면, 주는 자도 空이요, 받는 자도 空이요, 주고 받는 것도 空이다. 따라서 “보시”의 가장 본질적인 여건은 내가 보시를 행한다고 하는 나의 相의 해소다. 한마디로 나타나지 않게 보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태복음 6:3~4)

·····.

色·聲·香·味·觸·法은 六境이며 이것은 육근과 함께, 諸法중에서 色法에 속하는 것이다. 色法이라함은 물체적 형태를 갖는 것을 말한다. 즉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다. 보시는 이러한 물리적 色法에 안주하거나 집착하여서 행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제일 끝에 나오는 “不住於相”에서 “相”은 곧 “표시”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티를 내지 않는다,”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아주 쉽게 이해될 것이다

- 이 금강경은, 아니 구태여 불교가 있는 까닭을 밝혀 증명한 모든 경전은 보리살타의 부처를 앞세워 이 보리살타의 부처를 바르게 아는 깨달음일 뿐이다. 이는 우리가 상식으로 알 듯 뭘 깨달은 부처가 되려고 노력하는, 부처가 덜 된 보살된 사람이 실천해야 할 삶의 덕목을 설명한 것이 경전이 아니란 것이다. 깨달은 부처가 되려면 보살단계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 삶은 왼손이 하는 보시 따위의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는 정도로 남모르게 하는 은밀함으로 해야 보살계급에 맞는 삶으로써, 이런 삶을 살아야 부처라는 최상계급에 이를 수 있다는, 이런 삶의 방법을 기록한 게 경전이 아니며, 석가여래가 깨달아 말한 진리의 진실이 아니다. 바로 이런 사유며 이런 말로 작동하는, 이 색성향미촉법이라는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으로 펼쳐져 베풀어지는 이 지혜의 보시작동을 일러 보살이라고 칭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유며 말로써의 이 색성향미촉법이 실재의 실체로 있는 住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즉 색성향미촉법으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은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는 無常無我로써 연기의 실상인 보리살타임을 말한 것이다. 보살된 사람의 삶을 말한 게 아니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지혜작동으로써 보리살타임을 말한 것이다.

석가여래는, 결집된 경전이 석가여래의 말을 옳게 기록한 것이라면 이 경전은,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가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로써 이 성품의 삶은 이 보리살타에 의해 오직, 이 성품의 삶으로 지혜작동한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금강의 부처임을 밝힌 증명의 언어문자다.

이 宗을 말하지 않고 종교의 사회적 기능으로써의 보시를 말하여 이 보시의 주체인 我相을 없앤 無我의 보시여야 대승의 보살님이라고, 그래야 티가 나지 않는 보시 따위의 선업을 행하는 보살님이 되는 거라고, 이런 걸 가르치는 게 종교라고 말하는 건, 참말이지 宗을 모르고 종의 지말인 인간윤리에나 사로잡힌 사유의 말일 뿐이다.

이런 사유체계가 대승불교운동 이후에 일어나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면, 이런 사유체계의 대승불교운동이란 것이 과거 역사적 사실이래도, 사실이 아니래도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선 까닭에 눈꼽만큼도 어긋남이 없는 진리의 진실이다. 이를 시간이라는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으로 보면 차례가 설 것이며, 공간적으로 보면 한 덩어리로 녹아들어 이 공간으로만 보이는 연기의 실상이다.

석가여래의 젖먹이 때를 들춰보면 석가여래의 온전한 몸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인가? 그의 사유체계가 중중무진의 시·공간이 아닌 소박한 윤리적 문제라고 알아야만, 우리 인간이 역사발전의 주체라는 자긍의 깨달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인가?

도올은 ‘우리가 대승의 인식론으로 들어가게 되면, 주는 자도 空이요, 받는 자도 空이요, 주고 받는 것도 空이다. 따라서 “보시”의 가장 본질적인 여건은 내가 보시를 행한다고 하는 나의 相의 해소다. 한마디로 나타나지 않게 보시해야 한다는 것이다:’라며 말미에 ‘色法이라함은 물체적 형태를 갖는 것을 말한다. 즉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다. 보시는 이러한 물리적 色法에 안주하거나 집착하여서 행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에 등장하는 ‘空’이며 ‘공간’이란 말은 어떤 의미로 쓴 것인가?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있는 까닭을 드러낸 말인가? 아니면 단지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있는 이 까닭으로 한 말인가?

‘“보시”의 가장 본질적인 여건은 내가 보시를 행한다고 하는 나의 相의 해소’란 말은 空은, 대승의 공은 내가 보시는 행하되 이 ‘보시를 행한다’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런 생각이며 보시를 행하는 주체의 나를 해소하여 없앤 이 空을 말하는 것인가? 無我의 空이 될라고? 아니면 나는 멀쩡히 있는 것이고 다만 내가 보시니 뭐니 하는 이 작동의 행이 ‘보시라는 작동의 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않으면, 이 생각만 없으면 된다는 것인가? 이것이 보살된 자의 대승적 보시의 삶이란 말인가?

앞에서 도올은 空에 대한 구체적 진술이 없었다. 모든 언어문자는 진리의 진실을 표상한 진리의 진실이긴 하지만 이 空이라는 말에 대한 개념이며 그 실제는 구태여 불교가 있는 까닭으로 있으면서 이를 밝혀 증명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의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 도올이 이 말에 대해 좀 더 구체적 진술이 있다면 그때 바르게 논하기로 하고 여기서 멈추자. 다만 말미의 ‘공간’이란 말의 쓰임에서 도올의 空에 대한 오해의 악취가 물씬 풍겨 앞날을 흐리게 하고 있다. 대체 티가 나지 않는 행이 어디 있을 것인가? 티로 보자면 보시가 아니라 한 생각, 한마디 말이며, 이 생각이며 말의 있음과 없음으로써의 이 티조차도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의 총체적 인연·인과 작동으로써 독립적 개체의 소승이며 동시에 통합적 전체의 대승으로 작동하는 연기의 실상인 티보살님인데, 도올의 보살님은 대체 뭔가? 다만 티란 말의 개념보단 상대적으로 커서 티를 포괄하는 대승인 이 ‘공간을 점유하는 물리적 색법’으로써의 티에 안주하거나 집착하는 행을 행하지 않을 수 있다니. 보살된 자의 삶은 아무런 티가 없어야 한다니, 대체 이런 삶은 뭔가? 없는 삶인가? 별 해괴한 삶의 보살된 자이다. 그렇담 보살된 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티를 내도 괜찮다는 말인가? 그럼 보살된 자와 보살 안 된 자가 있다는 말이네. 참말로, 또 공간이란다면 무한공간이 있는데 눈꼽만큼의 티를 내어 점유 좀하면 뭐 어떻노? 하늘이 무너지나 땅이 꺼지나. 뭐 꼭 이런 보살이 되어 ‘물리적 색법으로 점유되는 공간’일랑 다른 이에게 보시해야만 하는 선남자 선여인이 되어야만 한다는 건가? 그런 삶을 의지하신다면 하시라. 그건 오직 그대의 의지(오온의 행)의 삶일 뿐임이니. 아무리 그렇단 대도, 一期一會(일회로써의 이 나·我는 일회로써의 이 나·我가 탄생하기 직전의 중중무진의 시·공간 곧 삼세로써의 일기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여 탄생한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으로써 오직, 이 일회의 나·我임을 표상한 말)의 소중한 내가 나를 空되게 하는 이런 허접의 일을 내가 왜 하노. 미칫나?

보시는 단지 보살의 작동태다. 육경이란다면 이 육경으로 보시하는 이 작동이지, 육경이랄 실재의 실체랄 것으로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도올은 금강경이 보살된 사람의 삶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 말하고 있지만, 이 금강경의 보살은 이게 아니다. 금강경은 보살이라는 말의 개념이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의 세계가 하나로 작동하는 삶이라는 개념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설령 사람보살을 말한달지라도 사람 삶으로써의 이 작동이 삼세로써의 총체적 작동으로써 연기의 실상인 진리의 진실임 말하고 있는 것이다.

無我 등 四相은 물론 육근 육식 육경이며 보시 따위,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은 보살된 자가 해소해야 할, 없애야 할 원수 같은 것이랄 것은 없는, 다만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의 선정으로 보시, 펼쳐져 베풀어지는 작동의 지혜로써 연기의 실상인 보리살타이다. 온통 보리살타이다.

그러므로 이 4-2 구절의 해석어는 이렇게 바꿔야 한다.

“보살은 앞에서 이른바 대로 실재의 실체랄 물체 따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물체라고 펼쳐져 베풀어지는 이 작동이다. 소리며 향기며 맛이며 느낌이며 의식으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도 이와 같은 보시작동이다. 수보리야! 이와 같은 보시작동으로 응하는 보살은 실재의 실체랄 육경 따위의 相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마태가 예수의 말씀이라고 전한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라는 말씀은 뭔 티내지 않는 보시 따위, 사회주의적 이념에 완전 사로잡힌 사람의 삶을 말한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그 댓가로써의 복락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다. 내가 원하여 행하는 것은 다만 내가 원하여 행하는 이 오온의 지혜작동일 뿐, 이 일의 결과는 오직 아버지 보리살타로써의 일이란 것이다.

왼손 오른손의 일은 왼손 오른 손의 일이기는 하지만 온 몸이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한 까닭으로써 오직 왼손이며 오른 손의 일임을 예로 들어 하나님의 역사를 밝힌 말이다. 저 반야심경의 보리살타依반야바라밀(一期에 依한 一會, 보리살타에 의한 지혜작동)과 같은 의미맥락의 말이다.

온 몸은 보리살타며 손 등, 온 몸을 구성하는 헤아릴 수 없는 각 기관작동은 반야바라밀이다.

예수님이나 석가여래의 말씀은 인간의 삶만을 말한 인간의 윤리가 아니다. 설령 저들이 살았을 그때 인간의 삶만을 말했단 대도, 이건 우리가 그렇게 알아들은 것일 뿐이며, 설령 저들이 인간의 윤리에 대한 소박한 깨달음이 우주론적 존재론으로 확대된 것은 저들의 일이 아닌 역사의 문화적 소산의 일이라고 한 대도, 이건 다만 우리가 안 이 앎일 뿐이다. 이 나의 앎이 과거의 저들의 미래로 온 如來임과 같이, 지금 이 내 앎의 과거인 저들의 저 소박한 깨달음 역시 저들의 과거로부터 온 미래의 여래임을 바르게 보아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이 삼세는 총체적 인연·인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므로, 이 성품의 삶은 완전 자유며 평화며 자비며 사랑의 지혜로 작동하는 진리의 진실이라고 아는 이 한 생각을 일으키시라.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있는 까닭은 오직 이 일일 뿐임이니.

이 금강경에 대한 사유의 말을 하는 도올이며, 도올의 이 사유며 이 말은 온통 지혜작동으로써의 보리살타인 진리의 진실이다. 다만 이를 바르게 보아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성품의 삶이 온통 이것임을 아는 깨달음을 격발하시라. -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공지 게시판 글쓰기에 관한 안내입니다 [3] admin 2011-07-08 528858
2371 일반 정신질환 환자에게 마음이식 수술을 심공이 2009-08-10 1220318
2370 일반 트위터와 페북 친구에게 휴심정 글을 배달합니다 image [1] admin 2011-08-09 445560
2369 일반 영성이란 무엇인가? (목적있게 사는 법 42) [1] pumuri 2011-08-30 285060
2368 일반 휴심정이 한겨레신문으로 격주 1회 찾아갑니다 imagefile [1] 휴심정 2013-05-22 239670
2367 일반 영성이란 무엇인가? (목적있게 사는 법 42) movie pumuri 2011-08-30 184960
2366 일반 이상이 있으면 높은 파장이 발산돼 (건강하게 사는 법 38) pumuri 2011-08-18 89150
2365 일반 뒷골이 뻑뻑한 경우 (건강하게 사는 법 43) pumuri 2011-09-03 85038
2364 일반 목적있게 사는 법 32 pumuri 2011-07-21 83826
2363 일반 건강하게 사는 법 32. image pumuri 2011-07-06 83389
2362 일반 남의 일에 상관 말기 (무심 36) pumuri 2011-08-13 82043
2361 일반 알아야 진화할 수 있다 (목적있게 사는 법 46) pumuri 2011-09-15 81754
2360 일반 심포삼초 강화 운동요법 (건강하게 사는 법 34) pumuri 2011-08-10 81502
2359 일반 몸을 두드리는 타법 (건강하게 사는 법 45) pumuri 2011-09-12 79207
2358 일반 감정적인 일처리 (무심 35) pumuri 2011-08-11 79015
2357 일반 오행 도인법 (건강하게 사는 법44) pumuri 2011-09-07 78228
2356 일반 12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명상편지 53) pumuri 2011-08-20 77356
2355 일반 맑은 기운, 탁한 기운 (건강하게 사는 법 48) pumuri 2011-09-26 76711
2354 일반 뇌파를 발사하는 의통 명상법 (건강하게 사는 법 39) pumuri 2011-08-21 76447
2353 일반 포기하십시오 (무심 47) pumuri 2011-09-18 76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