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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65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15-3. 若有人能受持讀誦, 廣爲人說, 如來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無有邊不可思議功德. 如是人等, 則爲荷擔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

15-3. 여기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이를 설한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나니,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 잴 수 없고 가없는 불가사의 공덕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 이와 같은 사람은 여래가 깨달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스스로 깨닫게 되리라.

[강해] ·····. 이 절에서는 “不可思議”가 개념화 되어 있으므로 그 뜻을 풀어 번역하지 않았다. “不可思議功德”은 물론 무슨 신비스런 공덕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가 단절된 無我의 공덕을 이름이다. ·····. 끝 귀에 나오는 “荷擔”은 “걸머멘다”는 의미인데, ·····. 宇井는 漢譯에 의거하여 ····· “자기의 어깨로써 보리를 짊어진다” ·····. 티베트譯文은 “일체중생은 자기의 깨달음을 어깨에 멘다”이다. 그 뜻을 종합해 보면, “자기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어깨에 멘다”는 관용구적 용법이 우리 독자에게 잘 전달되지 않음으로 나는 “여래가 깨달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스스로 깨닫는다”로 의역 하였다.

“어깨에 멘다”는 것은 내 자신의 것으로 한다, 내 자신으로 만든다, 내 힘으로 삼는다의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야 한다. 불교에서는 自力과 他力, 모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대승은 철저한 自力의 믿음 위에 서있다.

--- 도올이 해석하고 강해하는 이 금강경은 철저하게 인간의 이야기다. 그 정도는 도올이 그저 사람이니 그렇다 친대도, 대체 이 금강경을 이루고 있는 언어문자에 뭔 신비한 힘이랄 게 있다고, 이 경을 몸에 지니거나 경문을 외워대고, 설령 이 경을 강해하는 설명을 한다고, 이 경이 사람에게 불가사의한 공덕을 성취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하긴, 도올이 이 금강경의 금강을 바르게 생각하여 바르게 말하지 않고 엉뚱한 인간의 윤리로나 이해하여, 이를 책으로 써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사서 읽으므로, 그 공덕으로 도올은 수억의 재물이 쌓이니, 이 금강경이 불가사의한 신비한 공덕이긴 하다. 헐!

이 분절은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보리살타라는 여래의 법이 비록 사람이 생각해 낸 법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조차 이 여래법에 의한 보리살타의 바라밀로써, 이 여래법은 이 여래의 사람 삶인 앎으로 온통 드러나는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의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보리살살타의 바라밀다임을, 공덕임을, 연기의 실상임을, 진리의 진실임을 말한 것이다. 즉 여래라는 금강의 법은 사람의 삶은 물론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에 보편하는 진리의 진실이므로, 이 법은 어떤 존재와 현상만으로 생각할 수도, 이름할 수도 없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에 보편하는 짐으로 짊어져져 있는 법칙의 깨달음이란 것이다. 이를 사람 삶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15-3. 반야의 지혜는 어떤 사람이 사람들을 위하여 널리 읽고 노래하여 여래를 설명하는 것으로 능히 받아 지녀진 법이므로, 이 여래의 법은 사람에게 다 알려진 법이며, 이 여래의 법은 사람에게서 다 드러나 있어, 다 얻어 성취할 수 있는 헤아릴 수도 없고, 이름 할 수도 없고, 끝이랄 것도 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이 공덕의 법이다. 이와 같은 이 여래의 사람들은 여래라는 무상정등각의 깨달음인 이 연꽃을 짊어진 여래법칙인 것이다.

도올은 이 여래의 법인 진리의 진실이라는 이 금강을 말하지 않고 다만 인간의 윤리로써의 일만 말한다. 더구나 대체 개념 아닌 말이 어디 있단다고, 이 많은 말 중에서 “不可思議”란 말만이 개념인 것처럼 말하며, 이 말이 보리살타의 바라밀로써 여래의 법칙임을 말하지 않으니, 이는 이 금강경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온통 이 여래법칙의 금강임을 까맣게 모른 것이다. 더 해괴한 건 이 “不可思議”란 말이 ‘무슨 신비스런 공덕이 아니라’고 하면서 오히려 ‘인간의 언어가 단절된 無我의 공덕을 이름’한 것이라는 신비한 개념으로 말하는 건, 석가여래가 깨달은 진리의 진실이라는 이 신비한 여래법을 몰라도 넘 모른 것이다. 또 ‘불교에서는 自力과 他力, 모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대승은 철저한 自力의 믿음 위에 서있다.’는 말 역시 불교를 몰라도 넘 모른 말이다. 불교는 自·他 등,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으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총체적 인연·인과의 대·소승적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작동력인 보리살타에 의한 바라밀다로써 연기의 실상임을 바르게 아는 진리인식의 깨달음이라는 무상정등각이지, 뭘 믿고 안 믿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15-4. 何以故? 須菩提! 若樂小法者, 著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則於此經不能聽受讀誦爲人解說.

15-4.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 작은 법에 만족하는 자들은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에 집착하게 됨으로, 이 경을 들어 자기 것으로 하지도 못하고, 읽고 외워 남을 위하여 해설하지도 못하게 되느니라.

[강해] ·····. 我見에 집착하게 되면 이 經을 들어 자기 것으로 하지도 못하고(聽受) 남을 위하여 해설할 수도 없다는 것은 만고의 명언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학문(묻고 배움)을 하는 기본자세에 관한 것이다. 우선 내가 없어야 남의 말이 들린다. 이것은 내가 줏대를 없애라는 말이 아니다. 우선 남의 말을 들을려면 내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 도올이 지식이 많다고 말하는데, 나는 지식이 없다. 단지 내 서재에 책이 많아 그 책에 있는 정보들을 활용할 뿐이다. 단지 내 마음이 비어 있기 때문에 많은 지식을 담을 수 있고, 남의 말들은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주어담을 수 있을 뿐이다. 이 점 ‘금강경’을 읽는 젊은이들이 명심하여 학문하는 방법의 가장 근원적인 자세로 삼어 주었으면 한다. 젊었을 때, 교회 가고 절에 가고 설교 많이 듣고, 하나의 신앙체계에 고착되는 것보다는 아상·인상을 없애는 “虛其心”(노자 3장)의 공부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할 것이다.

--- 이 분절이 남의 말을 듣거나 뭘 배우는 데 있어 내가 어떤 주관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면, 말을 하는 이의 말뜻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거나, 뭘 배우는 데 있어 객관적인 저 배울 것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 이런 주관적 편견에 사로잡힌 나나 내 맘를 없애야 한다는, 사람간의 사회적 관계인 사람의 윤리를 말한 말이 아니다. 설령 그렇단대도 이 사람의 윤리가 진리의 진실임을 말해야 이 금강경의 금강인 줏대를 바르게 본 것이다.

도올의 말마따나 줏대가 없으면 안 된다. 주관적인 걸 주관적인 것으로, 객관적인 것을 객관적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줏대가 없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 줏대가 인간의 윤리적 줏대가 아니라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에 보편하는 진리의 진실로써의 줏대여야 한다.

이 분절 역시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가 독립적 개체인 소승·소법자로써의 작동태로 사로잡혀 작동하는 작동성임을 사로잡힌 사람의 의식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見은 意識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는 소승·소법자로써의 아·인·중생·수자라는 이 독립적 개체 의식에 사로잡힌 집착의 삶임을 말하는 것이다. 즉 아·인·중생·수자 등, 이 상대적 인식의 대·소승적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보리살타의 바라밀로써 중도·여래·열반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이므로, 이 법은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의 법임에도 불구하고, 이 법의 언어로 이 법을 말해도 오히려 이를 바르게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마치 물이나 공기가 인간의 삶에 절대적 조건으로써의 연기의 실상임에도 이를 바르게 알기가 어렵듯이, 마땅히 인간의 삶으로써의 언어가 여래로써 진리의 진실인 법임을 바르게 알아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15-4. 어떤 말이냐 하면, 수보리야. 지혜는 ‘소승의 삶을 즐기는 자’로써 보리살타의 여래이므로, 아·인·중생·수자의 의식으로 드러난 여래법칙에 사로잡힌 작동의 삶인 것이다. 이 불가사의한 법은 사람의 삶인 읽고 노래하며 해설을 하는 것으로도 알아듣기가 어려운 법이다.

이 분절의 小法者는 당근 소승이라는 개념의 말로써 ‘보리살타의 바라밀다’가 아니라 ‘보리살타의 바라밀’을 격의한 말이다. 바라밀을 흔히 그물에 비유하여 설명하니 이 소법자를 그물에 비유하자면 하나의 그물코와 이 하나의 그물코에 연결된 그물선들로써의 독립적 개체 작동을 표상한 말이다. 이렇단다고 착각하지 마시라. 이 하나의 그물코도, 또 이 모든 그물코로 형성된 하나의 그물도 다만 이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으로써의 대·소승적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연기의 실상인 것이지, 그 대·소승으로써의 실재의 실체랄 것은 없는 無常無我로써 보리살타의 바라밀인 여래로써의 법이다. 바라밀다는 복수이고 바라밀은 단수이다. 이는 지구도 세계고, 태양계도, 은하계도 세계이며 이들을 통털은 우주를 세계라고도 하듯, 대·소승으로써의 각각의 경계를 말할 때는 바라밀다이며 통털어 말할 때는 바라밀이다.

若樂이란 말의 樂은 반야의 지혜인 소법자로써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의 세계가 반야의 지혜로 실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총체적 인연·인과의 작동성이므로,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은 서로가 서로를 즐기는 관계작동선상에 있는 연기의 실상인 여래의 법임을 표상한 말이다. 이 樂은 앞 절에서 이 여래의 법을 ‘荷擔’이라는 부정적 개념으로 설명한 것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 이 여래의 법을 설명하여,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이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총체적 인연·인과의 상대적 작동성인 ‘樂·荷擔’등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인 보리살타의 바라밀다이며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쓰인 말이다. 즉 이 荷擔이나 樂은 보리살타의 작동태를 표상한 말이다.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 작동하는 이 삶의 연꽃을 즐거이 짊어진 저 시지프스와 같은 보리살타로써의 진리의 진실을 표상한 말이다.

이를 말하지 않고 도올은 자기의 서가에 있는 서책의 내용이 사람의 맘으로 가득 쌓인 지식의 앎이 문자화한 연기의 실상임을 말하지 않고, 자기는 완전 無知의 빈 깡통이라 아무거나 편견없이 다 받아들여 채울 수 있는 줏대있는 자라고 해괴한 줏대의 소리를 하는 건, 정말 엉뚱한 도올여래이다.

이 금강경을 읽음에 있어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어떤 기존의 편견에 사로잡혀, 예컨대 도올처럼 윤리적 편견과 같은 편견에 사로잡혀 읽는다면, 이 금강경의 금강은 결코 바르게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도올이 말한 대로 ‘젊었을 때, 교회 가고 절에 가고 설교 많이 듣고, 하나의 신앙체계에 고착되는 것’은 구태여 불교가, 기독교가 선 까닭엔 참말 안타까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우리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이 모든 성품은 구태여 선 불교나 기독교의 宗을 알거나 모르거나 오해하거나, 이미 이 宗으로 작동하는 삶으로써의 宗이므로 사람성품이 설령 ‘신앙체계에 고착’된 삶을 산단대도 사람 삶으로 무슨 큰 허물이 있을 것인가마는, 저 “虛其心”(노자 3장)이 아상·인상 등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의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宗으로써의 진리의 진실인 우리의 이 사람의 삶을 없애는 공부란다면, 대체 이 일이 우리 사람 삶에 뭔 ‘훨씬 더 유익할 것’이랄 것이 있을 것인가?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15-5. 須菩提! 在在處處若有此經, 一切世間天人阿修羅所應供養. 當知此處則爲是塔, 皆應恭敬作禮圍繞以諸華香而散其處.

15-5. 수보리야! 어느 곳이든지 이 경이 있게 되면 바로 그곳이 일체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가 기꺼이 공양하는 곳이라. 마땅히 알지니라! 이곳이 곧 탑이라는 것을! 모두가 기꺼이 공양하는 마음으로 절을 드리고 주위를 돌면서 온갖 꽃의 향기로써 그곳에 흩으리라.

[강해] ·····. 성경구절 한 구절이 있는 바로 그 곳이 탑이요 십자가요 절이요 교회다! 어디 교회가 따로 있을 손가? ·····. 바로 진리의 말씀이 있는 바로 그 곳이 탑이요 십자가요, 모든 사람과 신과 천사가 그 주위를 경배하고 아름다운 꽃의 향기로써 聖化하리라! ·····. “供養”이란 말은 “puja”의 역어인데, 그 원의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대접한다”는 뜻이다. 종교적으로 위대한 경지에 간 사람들에게 공경스럽게 資具등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 진리의 진실이라는 당체랄 것은 없다. 이 금강경이라는 경뿐만이 아니라 어느 곳이든지 온통 전부 다 완전 진리의 진실인 당체이다. 이 금강경이나 성경뿐만이 아니라 이 경들 속의 내용이며 언어문자들 역시 온통 진리의 진실이 아닌 건 없다. 이 금강경도 그렇지만 성경이란 것도 오직 진리의 진실을 말한 진리의 진실이다. 이 경들이 생긴 이래 수많은 도올과 같은 사람들이 이 경을 인간의 윤리로나 오해·왜곡한 이해로 변형시켜서 그렇지 오직 진리의 진실을 말한 진리의 진실이다.

이 분절 역시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가 ‘持經功德’, 곧 ‘법의 공덕으로 지녀진 법의 공덕’으로써 보리살타의 여래법에 의한 보리살타의 여래로써의 공덕임을, 오직 진리의 德으로써 진실의 功임을 말한 것이다.

15-5. 수보리야.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가 온통 지혜의 보리살타인 여래이므로 이 법으로 있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일체 세간 천인 아수라는 ‘더불어 작동하는 삶으로써’ 공양이다. 마땅히 알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법칙인 지혜는 이 보리살타의 법으로 일어선 불탑이므로, 모두가 서로 응하여 공경하는 예를 만들어, 온갖 향기로운 꽃으로 장엄하여 ‘흩어지는 탑’으로써 보리살타의 바라밀인 연기의 실상이다.

금강경이며 성경 등, 모든 경들이 이 진리의 진실을 말한 언어문자로써 진리의 진실이라 사람인 역대 선지자들이 이를 귀하게 여긴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래서 이 경전을 신주단지 모시듯 공경·공양해야 한다면, 이 건 아니다. 이거야 말로 속임수다. 설마 도올이 자기가 ‘종교적으로 위대한 경지에 간 사람’이니 자기를 공경·공양하라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이런 유명짜한 사람들의 헛소리가 있어 종교의 宗을 말한 경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위대한 경지에 간 사람’은 ‘종교적으로 위대한 경지에 간 사람’이 아니고는 알 수가 없다. 법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소문을 믿는 건, 경문이나 외우고 몸에 지니고 다니는 건, ‘종교적으로 위대한 경지’랄 것이 없는, 이 눈앞이 온통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大通歷史線上에 서있는 진리의 진실이므로 ‘종교적으로 위대한 경지’임을 바르게 알아보지 못한 허망이다. 오직 ‘持經功德’의 금강임을, ‘법의 공덕으로 지녀진 법의 공덕’으로써 보리살타의 여래법에 의한 보리살타의 여래인 이 공덕으로써의 진리의 진실이 곧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임을 바르게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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