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서로 마음을 열어 고민과 아픔을 나누고 치유하며 행복을 모아내는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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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되면 늘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줬던 다정다감한 언년이 할머니가 생각난다. 할머니는 위암으로 3년을 투병하고 74세에 정토마을에 왔다가 진달래가 만개하던 다음해 봄날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40대에 일찍 암으로 죽은 남편을 대신해 함양에서 홀로 농사지으며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모두 가르쳤다. 하지만 암이 온몸으로 전이돼 정토마을에 온 후에는 찾는 사람 없이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냈다. 자식들이 아무도 오지 않는 연유가 궁금했다. 딸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고향집에 얼마 되지 않은 논 몇 마지기와 시골집, 그리고 밭을 큰아들에게 물려주자 다른 자식들이 모두 할머니를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큰아들밖에 모른다는 딸의 목소리에서 원망이 묻어났다. 둘째와 셋째아들은 시어머니 병수발을 할 바에는 차라리 이혼하겠다는 아내들의 성화에 정토마을을 방문할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또 자신은 딸이라 출가외인 아니겠냐며 나중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그때 전화하라고 했다. 큰아들에게 연락해 어머니가 기다린다고 말하니 함양에서 정토마을이 있는 청원군까지는 너무 멀어서 못 간다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냉정하게 만드는 것일까. 우리의 마음을 타인과 단절시키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할머니는 자신이 평생 살아왔던 함양 고향집에 가고 싶어 했다. 고향에 가면 아직 살아있는 친구들과 친지들, 그리고 남편 무덤도 볼 수 있다며 그리움 가득한 눈빛으로 먼 산을 바라보곤 했다. 봄이 오면 고향으로 가겠다는 할머니 말 속에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짙게 배어있었다. 하지만 어느 자식도 할머니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보다 못한 사람들이 자식들의 불효를 나무라는 말을 꺼내면 할머니는 언제나 자식들의 허물을 덮기에 바빴다.


“내가 물려준 것도 없꼬 묵고산다고 바빠서 잘 해준 것 하나 없어예. 키울 때는 얼마나 착했는지 말도 못합니더. 우리 고향사람들이 다 알아예.”


할머니는 야윈 몸과 주름 가득한 얼굴에 그리움 가득 담긴 말간 눈동자로, 가을과 겨울을 지나 봄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전부였던 자식들을 말없이 기다렸다.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봄 이파리처럼 파릇한 자식들이 할머니에겐 인생의 전부였으리라. 할머니는 암 투병의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도 자식걱정을 놓지 않았고 행여 사람들이 당신 자식들에게 쓴 소리 할까 첩첩이 새끼들을 감쌌다.


하지만 한번도 오지 않는 자식들을 기다리다 지친 할머니는 결국 정토마을 뜨락, 진달래가 소담스럽게 핀 아침나절에 세상을 떠났다.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75년 인생을 고이 접은 할머니. 그리운 고향에 가지도 못하고 그렇게 떠나간 할머니. 죽음 앞에서 피와 살로 맺은 인연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이승을 떠나는 사람들의 고통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나는 할머니처럼 마음이 넉넉하지 못해 자식들을 이해하거나 용서할 수 없었지만 누워있는 할머니 모습에는 이미 용서가 담겨있었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짓던 아름다운 사람 동규씨는 일찍 아내를 잃고 13살짜리 아들을 막노동으로 키우며 살다가 위암말기로 정토마을에 왔다. 그는 4개월 투병 끝에 사슴처럼 선한 눈에 굵은 핏빛 눈물 흘리며 세상을 등졌다. 13살짜리 아들이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 평생 가슴이 아플 것이라며 큰아버지 집에 아들을 맡긴 채였다.


임종 후, 아들이 도착해 숨을 거둔 아버지 다리를 붙잡고 통곡했다. 대학 들어가면 그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큰아버지 동네로 돌아가던 그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부모님 은혜의 무게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자식인 우리는 잘 모른다. 티끌 하나조차도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들은 부모님 은혜에 무감각한 채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의 늙음과 질병 그리고 죽음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것은 결국 모든 사람이 경험해야 할 여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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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행 스님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부모님에게 먼저 다가가 하루를 함께 보내는 것은 어떨까. 죽음으로 헤어지면 천만년이 흘러도 다시 만날 수 없는 인연 아닌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려받는 과보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출처 : 법보신문 1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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