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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스캔들, 스캔들의 신학

일반 조회수 14757 추천수 0 2011.07.28 10:10:52
성서인문학의 탄생을 기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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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신학이 거듭나고 구원받아야 할 당위적 요청 앞에서”1)  

바흐(J. S. Bach)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그와 동시대 사람들은 한 인간이 그렇게 많은 곡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돈 소문. “바흐는 푸가를 작곡하는 기계를 가졌다.” 오늘날의 기술로도 바흐의 푸가 수준에 도달할 만한 곡을 만드는 작곡 기계의 발명은 쉽지 않다고 하니, 그 소문은 필시 찬사 혹은 질시 어린 경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차정식 교수의 다작을 두고 ‘신학계의 고은’이라는 칭찬조의 농(弄)을 했지만, 더욱 주목해야 할 바는 그의 다작이 보여주는 일정 수준의 질적 성취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마나하든지 누구라도 할 만한 작업”의 맴돌이질에서 벗어난 그의 연구 성과는 좬신학의 스캔들, 스캔들의 신학좭로 다시 우리의 독서 욕구를 자극한다. 

이 책은 “성서인문학의 지평을 개척하고 인문학으로서 신학의 잠재력을 회복·갱생시키는 차원에서 신학적 스캔들의 진정성”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한다. ‘성서인문학’이라는 개념은 기존의 신학 지형에서 독특한 자리를 주장하는 것 같다. 그것은 저자가 ‘주석쟁이’의 ‘권태로운 노동’으로 다소간 폄하한, 텍스트 내에 머무는 성서학과 거리를 둔다. 그렇다고 그것이 이른바 성서신학으로 환원되지도 않는다. 기존의 성서신학은 조직신학의 옷에 자신을 맞추거나 신약에서 주요한 주제들, 대개 ‘신학적’ 주제들로 신약을 갈무리하는 형태이다. 그러나 성서인문학은 그러한 신약신학의 그물로는 잡히지 않는 바람, 혹은 건져지지 않는 것에 대한 기록 노력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것은 통상적으로 신약을 지배하는 세계관이라고 하는 묵시문학적 종말론에 의해 희생당한 일상과 또 일상에 얽힌 세세한 욕망에 관한 탐구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신학적 방법론을 넘어서는 인문학적 방법론이 요청된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 우리 인간의 삶을 해부하기에는 때로 인문학적 메스가 적합할 터. 이 책에서 주로 등장하는 이름은 르네 지라르, 가라타니 고진, 알랭 바디우, 엠마누엘 레비나스, 조르주 바타이유 등이다. 고진을 제외하고는 대략 프랑스가 주무대였던 이들이다. 

위 학자들의 이론이 우리에게 아주 생경하지는 않다. 관건은 저자가 이것을 얼마큼 잘 벼려 성서라는 땅에서 자라는 곡식의 열매를 거둘 것이냐이다. 그리고 그들 이론의 전유가 단지 ‘나는 이만큼이나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읽는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신학’이 처한 곤경을 넘어서기 위하여, 차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 시대의 신학이 ‘거듭나고 구원받아야 할 당위적 요청’에 응답하기 위하여 잘 버무려졌는지, 그리고 그것의 효용이 확실한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스캔들, 넘어짐과 넘어뜨림의 신학적 메타포

저자는 플라톤의 ‘파르마콘’ 비유, 20세기의 데리다가 우려냈던 ‘파르마콘’ 비유에 상응하는 신학적 메타포로 ‘스캔들’을 포착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메타포는 성서의 안과 밖을 넘나들고 동시에 인문학적 관심사를 통찰하여 심층적 구조를 해석하는 데에 적격이다. 

그것은[창조적 메타포로서 스캔들] 파괴하면서 창조하는 신학의 에너지이며, 해체하며 재구성하는 자율적 생명의 신진대사이다. 나아가 신학적 메타포로서의 ‘스칸달론’은 생활세계와 사유의 지형을 헤치면서 보듬고 억제하면서 가로지르는 정중동의 생성원리이며, 체계의 원칙과 그 바깥의 에누리를 두루 포괄하는 담론 생산의 요체이다.

‘스캔들’이라는 양가적 메타포는 책 전반에 걸쳐 여러 주제들과 혼합되어 제시된다.2) 서평이 독자를 위한 것이라면 나는 독자들을 위해 먼저 “2장 스캔들과 타자의 윤리 - 예수의 어록을 중심으로”를 읽기를 권한다. 그곳에서 저자는 예수의 어록 가운데 ‘스캔들’과 관련된 말씀 자료를 뽑고, 그것에 대한 주석 작업을 시도한다. 또한 저자는 “스캔들”에 관한 인문적 이론의 대표자 격인 르네 지라르의 스캔들 론(論)을 더불어 소개하는데, 이 장에서 우리는 “스캔들”에 관한 신학적 담론의 기초적인 자료들을 제공받을 수 있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여기서 저자는 일정한 정도로 ‘주석쟁이’의 일을 수행한다. 그가 예수의 스캔들 담론에서 주목한 바는 타인의 욕구에 대한 배려, 특별히 언어와 물질의 사용을 통한 약자에 대한 배려이다. 저자는 그것을 스캔들이 만들어내는 ‘타자의 윤리’라고 부른다. 이어 “3장 침묵과 절교-수난사회에 얽힌 이중적 스캔들”은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스캔들을 살핀다. 

물론 예수의 수난 사화에서 ‘스캔들’이라는 용어가 명시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예수의 수난 이야기에서 한 인간으로서 예수에게 닥친 수난과 죽음이 만드는 예수의 스캔들, 곧 예수를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스캔들이자 동시에 예수를 통해 드러나는 세상의 추문(醜聞)으로서 스캔들을 발견한다. 예수의 절규와 예수의 침묵은 예수의 스캔들의 양면성을 적절히 보여준다. 수난과 죽음은 예수의 삶을 멈추게 하는, 곧 넘어뜨리게 하는 장애물이었다. 예수는 그 장애물을 앞에 두고 하나님을 향해 절규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이 때 하나님 ‘아버지’의 침묵은 절규하는 ‘아들’ 예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스캔들일 수 있다. 다른 한 편 한 순전한 인간예수가 특별한 폭력적 탐욕이나 음모의 흉포함 없이 세상에 의해 체포되고 고문 받고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세상의 사악성을 드러내는 추문이다. 예수는 그러한 세상을 향해서는 침묵하는데, 그 침묵은 세상의 스캔들을 더욱 분명하게 한다. 세상의 폭력과 사악함은 죄 없는 한 인간의 목숨을 게걸스럽게 노리고, 그 어린양과 같은 인간은 침묵하며 세상의 추문을 고스란히 채찍 맞고 못 박힌 몸으로 보여준다.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를 ‘스캔들’로 해석하여 자신의 편지 곳곳에서 사용하는데, 저자는 예수의 스캔들이 어떻게 바울에게까지 이어지는지를 4, 5, 6장을 통해 살핀다. 저자도 마찬가지겠지만 내 판단으로도 ‘스캔들’에 관한 바울의 신학화가 없었더라면 아마 ‘스캔들’이라는 메타포가 이처럼 풍부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서, 고린도서, 그리고 빌립보서가 저자의 해석 대상이 된다. 
로마서의 ‘스캔들’은 “스캔들을 제거하는 스캔들”로, 또 그것이 드러내는 그리스도론은 “외교적 그리스도론”으로 해석된다. 고린도 서신의 스캔들은 “스캔들을 내파하는 스캔들”로 변주된다. 스캔들인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로서 하나님의 어리석은 구원을 알리며, 그 스캔들은 로마 교회의 경우와 유사하게 고린도 교회 내부의 복잡한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는 신학적 메타포로도 활용된다. 두 서신의 스캔들 용례를 미루어 볼 때 바울에게 스캔들은 예수와 그의 십자가 구원, 그리고 그것이 내포하는 신앙 윤리를 위해 강력한 개념이었음이 분명하다. 저자는 이를 “예수의 신학적인 수제자 바울에게 스캔들은 곧 십자가였고, 그 십자가의 이중성이 스캔들의 신학적 진정성을 대변했다”고 표현한다. 여기서 이중성이란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의 스캔들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은 방법이며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가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치와 죄악의 표상이다. 그러나 구원은 그러한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이들에게 다가온다. 다른 한 편 십자가라는 스캔들은 “세상의 보편적 죄악을 폭로하는 하나님의 의”이다. 십자가는 “죄인 천지의 세상을 향해 마치 투명한 거울처럼 그 회칠한 무덤의 컴컴한 내부를 보여준다.” 

Ⅰ부의 6장 “‘매인 몸’의 나타남과 그 계시적 징후 - 빌립보서의 신학적 매트릭스”는 평가하기 다소 모호한 글이다. 빌립보서에는, 예수의 수난 사화가 그렇듯, 스캔들이라는 단어가 없다. 그러나 저자는 바울이 감옥에 묶인 현실을 예수의 수난과 견주면서 수인(囚人) 바울을 이제까지 진행했던 ‘스캔들’의 차원에서 해명하고자 한다. 저자에게 빌립보서의 바울의 ‘매인 몸’의 주제는 이른바 몸의 신학을 도출하기에 매우 적합한 신학적 초상으로 해석된다. 이 글은 또한 이어지는 Ⅱ부와 Ⅰ부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담당한다. 다소 경직된 판단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 글 역시 ‘스캔들’이라는 이 책의 범위에서 다소간 벗어난 것이 아닌가 한다. 

현대 일상에 온 스캔들, 그리고 그 신학

저자는 Ⅰ부에서 성서의 스캔들을 주석적인 방식으로 다루며 2,000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뛰는, 또 지구의 거의 반대편에까지 치고 올 수 있는 신학적 동력을 마련하였다. 이제 그는 주석쟁이의 도서관에서 나와 ‘스캔들’에 얽힌 신학적 담론을 세속을 간파하는 도구로 들고는 욕망, 금기, 향유, 쾌락, 억압, 고통이 휘도는 오늘 우리의 자리에 선다. 

Ⅱ부의 글들은 현실 분석이자 비판이고, 신학적 주체에 대한 재점검과 선회, 그리고 욕망과 그리스도 십자가가 가진 가학성과 피학성의 심층적 심리 구조에 대한 설명들로 이루어져있다. 타부, 잠, 불면, 식욕, 폭력 죽음 등 어쩌면 우리의 일상을 빼곡 채우는 것들에 대한 성찰이다. 

글의 요약은 친절하게도 저자가 곳곳에서 하고 있으니 나는 이곳에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몇몇 사항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가령 5장 “고난과 희생 담론의 신학적 스캔들”은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다. 저자는 고난과 희생에 얽힌 우리 교회의 어설픔을 조롱 섞인 어조로 해설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 주변의 고난과 희생 담론은 … 대중들의 감동 드라마이다.” 그러한 ‘대중 감동 드라마’의 “신학적 방패막이로 무차별적으로 남용되는” 예수의 십자가 고난에 대한 언급도 부적절할 뿐이다. 나아가 저자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종종 동원되는 십자가 신학의 가학성/피학성을 언급하면서 그것의 극복에 관해 말한다. 평소 십자가에 관한 사춘기적 감상주의를 메스꺼워 했던 내게 그 글은 마치 내가 쓴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저자는 이어지는 6장에서 “폭력적 죽음의 내력과 대안적 희망”을 다룬다. 이 두 장 모두 종교와 고난과 희생, 그리고 폭력에 박혀 있는 거멀못의 구조를 살피는 데에 유용하다. 뿐만 아니라 신학 혹은 신앙의 이름으로 불행하게 폭행당하고, 고난과 희생을 강요당하는 이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다른 이들을 억압하고 눈물 흘리게 하는 이들 모두에게 유익하다. 

인문학이 종교로부터 벗어나면서 인간의 욕망을 과감하게 학문의 주제로 다룬 것과는 달리 종교 내에서 욕망의 문제는 늘 주변부에 머물거나 다소간 외면되는 대상이었다. 이 책의 주요한 공헌 가운데 하나는 욕망, 향유, 쾌락을 새롭게 생성되어야 할 신학적 주체의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고려하는 데에 있다. 1장인 “금기와 향유, 또는 신학적 주체의 전회”나 3장 “식사와 치유, 혹은 ‘마지막 욕망’에 대한 성찰”은 그 주제를 차분히 다룬다. 

이제 이 책을 전체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자리에 왔다. 다소 아쉬웠던 점부터 말하고자 한다. 왜 누구의 이론을 참조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은 대부분 할 말이 없을 때, 또는 저자에게 무엇인가 훈수를 두려는 속셈에서 꺼내놓는 서평자 혹은 논평자의 수작이다. 그러나 그러한 오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나는 저자가 프랑스의 또 다른 이론가 쟝 보드리야르의 이론을 왜 고려하지 않았는지 하는 의문이 든다. 그 역시 스캔들에 관한 읽을 만한 이론을 내놓았고, 나는 십자가, 특별히 바울의 십자가 해석을 위해서는 보드리야르의 스캔들 이론이 훨씬 더 선명하게 바울의 십자가 해석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정상 상태를 스캔들로 꾸며” 사회를 유지하려 한다는 스캔들 생성 뒤에 깔린 권력의 작용에 관한 분석에 관해서는 보드리야르의 스캔들 이론만큼 분명한 게 없다. 저자에게 자극 받아, 그리고 보드리야르의 이론을 조합해 떠오른 착상은 신학의 근본적 생성 배후에 대한 도전이었다. 십자가라는 예외 상황이야말로 하나님이 자신의 정상 상태를 감추기 위한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그 외 성서 주석에서 여러 부수적인 사항들은 굳이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 책이 주는 장점을 말하기에도 지면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저자의 ‘해석의 힘’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저자에게 힘 있는 ‘신학자’라는 명예를 건네려다가 그보다는 저자가 표방한 ‘성서인문학’을 떠올리며 그를 ‘성서인문학자’로 명명해 본다. 그것은 새로운 이름이고 이 시대에 불릴만한 이름이다. 과다한 칭찬보다 이렇게 건조한 말이 도리어 이 책의 가치를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책의 전체적인 논지와 발상을 짚던 나는 저자에게 “질투가 난다”고 연락을 했다. 그 불일 듯 하는 질투를 독자들도 한 번 직접 느껴보시기를.

김학철 l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 D.)를 받고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신약학 겸임교수를 지냈다. 『손으로 읽는 신약성서』, 『복음서의 교회정치학』, 『렘브란트, 성서를 그리다』 등등 다수의 저·역서와 사회정치학적 시각에서 마태복음서를 연구한 논문들을 계속해서 쓰고 있다. 현재 연세대학교 신학과 교수이다. 

글쓴이 / 김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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