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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벽수행의 망상

일반 조회수 13722 추천수 0 2010.04.26 01:02:04

달마와 양무제의 대화

 

깨달음이라는 그 말 때문에 고금의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왜 나에게는 깨달음이 오지 않을까. 사실 깨달음의 원조는 달마대사입니다. 그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달마대사가 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로 들어가 처음으로 무제(武帝)를 만났습니다. 양무제가 물었습니다.

 

“짐이 즉위 한 뒤로 수많은 절을 짓고, 탑을 쌓고, 경을 쓰고, 스님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달마 대사가 대답했습니다.

 

“조금도 공덕이 없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것은 분별심을 가진 세속의 복이며, 쓰면 없어지는 공덕일 뿐입니다.”

“불법의 첫째가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텅 비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몇 마디 주고받다가 무제가 물었습니다.

   

“나와 이야기하는 당신은 무엇입니까?”

“모르겠습니다.”

 

양무제가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자 달마는 아직 불법을 펼칠 때가 아님을 알고, 하남성 숭산 소림사로 들어가 9년 동안 면벽 수도한 끝에 깨침을 얻어 혜가를 만나 법을 전했습니다.

 

---- 

성철 스님은 8년 장좌불와 면벽 수행을 통해 큰 스님의 이름을 떨쳤지요.

“9년 동안 면벽 수도한 끝에 깨침을 얻어 혜가를 만나 법을 전했습니다.”

이 표현은 달마를 이해하는 말로 맞는 표현일까요? 혹시 무슨 오해가 있는 것은 아닌지요.

 

대개의 사람들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후대사람들이 달마를 얼마나 크게 오해하고 있는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양나라 무제와의 만남에서 달마는 이미 하나의 세계를 뛰어 넘고 있습니다. 양무제는 달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숭산의 골짜기에 들어가기 전에 달마는 이미 벽을 만납니다. 넘을 수 없는 벽, 마음의 벽, 곧 양무제입니다. 달마의 마음은 전달할 방법이 없었고, 양무제는 자신의 불심과 공덕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방이 막혀 있는 벽을 만난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면벽아래 놓인 셈이지요. 따라서 9년의 면벽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건 엉터리 해석이고 주장입니다. 도리어 9년간 도처에 양무제와 같은 사람들만 있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9년만에야 법을 전수할 수 있는 사람, 비로소 벽이 허물어지고 소통이 가능한 혜가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도리어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진의입니다.

 

깨달음은 면벽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이 찾아오면 그 깨달음을 갖고 소통할 수 없고 사람을 만나도 몸은 만나지만, 마음은 벽일 수밖에 없으니 면벽에 들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줍니다. 사방을 둘러보지만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일러줍니다. 하여 인생은 그 때부터 어쩔 수 없는 면벽에 처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벽을 만날 수밖에 없더라도, 마침내 혜가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희망을 전해주는 이야기입니다. 9년 만에 겨우 한 사람을 만난다는 달마의 이야기. 그 만남을 통해 선의 불꽃은 활활 타오릅니다.

 

너도 나도 경전을 들어 말합니다. 경전을 해석합니다.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수행하지 않더라도 인생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떤 이에겐 분명히 알 수 없는 절망감으로 무엇엔가 이끌려

종교에 귀의하고, 무엇인가 종교생활이라는 걸 하게 됩니다.

무슨 수행을 해서 큰 깨달음을 얻고자 하지 않았더라도

시시 때때로 찾아오는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형태의 몸짓을 하게 되더란 이야기지요. 각종 종교를 순례하기도 하고, 금식을 하기도 하고, 면벽 수행을 해보기도 하고....

 

그러던 중, 어떤 빛이 찾아옵니다.

그걸 깨달음이라해도 좋고, 구원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무슨 이름을 달고 있더라도,

인생의 길을 새롭게 보게 되는 계기가 찾아옵니다.

수행과 용맹정진을 통해서는 도무지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주어집니다.

큰 의문이 풀리고, 환한 빛이 찾아옵니다.

 

수많은 절을 짓고, 탑을 쌓고, 경을 쓰고, 스님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라고 묻는 양무제의 이야기가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지도 알게 됩니다. 그것이 아무런 공덕이 없다는 것을 이유를 들어 설명하지 않더라도 알게 됩니다.

이 두 세계의 건널 수 없는 강과 벽이 면벽수행입니다.

 

면벽수행은 그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수행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따라서 적절치 않습니다. 도리어 면벽에 처하게 될 뿐입니다. 도처에 이미 벽이 있는데, 새삼 사방을 벽으로 막아놓고 면벽수행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한 이야기란 말인가요? 면벽 수행에 대한 화려한 수사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방을 벽으로 막아놓고 오로지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여 청정 구경각에 이르고자 합니다.

효험이 있겠지요. 효험이란, 9년 면벽 수행이, 혹은 그 어떤 면벽수행도 어리석음이라는 사실이 들통 나는 게 면벽 수행의 유일한 효험입니다. 기독교에서 유행하고 있는 40일 금식기도의 효험 역시, 그것 해봐야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깨닫는 게 40일 금식기도의 유일한 효험입니다.

 

모든 명상이 이와 유사합니다. 절제와 가지런함의 모양새는 잠시 갖춰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는 새로운 계기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인생은 의문입니다. 의문이 찾아오고, 그 의문에 충실한 것만이 참 명상입니다. 의문을 의문하지 않으면 답도 없습니다. 적당히 찾아오는 답은 답이 아닙니다. 양무제의 답, 그래서 불사를 하고, 탑을 쌓고, 경전을 편찬해 보급하고, 스님을 돕는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답으로 여기는 것, 그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근기가 약한 이들은 그 같은 종류를 모범답안으로 삼고자 합니다.

 

면벽수행자를 큰 스승으로 삼고서, 거기에 기대어 자신의 질문을 묻어두려 합니다. 다시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공덕이란 말이지? 하고 말입니다. 잠시 묻어둘 수 있지만, 물음을 끝까지 묻는 것, 그 누구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묻고 또 묻는 것만이 명상이고 답을 얻는 지름길입니다. 선사들의 공안을 통한 화두도 좋고, 무엇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자기 자신에게 찾아오는 질문이어야 합니다. 질문하기 위한 질문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에게 찾아드는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을 다른 이를 통해서 얻는 것은 힌트일 뿐, 자신의 참된 답이 아닙니다.

 

하나의 의문이 풀리면 또 다시 새로운 물음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물음이 찾아오지 않으면 그대로 두면 됩니다. 좀 더 지내고 있노라면 물음은 또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찾아온 물음을 무시하지 않고 끝까지 붙잡고 묻는 사람이라면 그러합니다.

달마의 면벽 일화가 불교에 끼친 망상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물론, 그 참뜻을 곡해한데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도 도처에서 그 같은 곡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달마는 벽속에 갇혀서 지금도 면벽 중에 있는 셈이지요.

이제는 벽을 거두어 내야하는 일이 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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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벽수행을 하지 않아도

아, 나는 이미 숨 막히는 벽속에 갇혀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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