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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안 밀러(1895-1943)는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 산천을 그린 미국화가다. 금강산의 마하연, 만물상, 대동강의 황포돛배, 한강의 황포돛배, 한강 나루터, 향원정, 혜화문, 농촌풍경 등 우리나라를 소재로 한 작품 40여 점을 남겼고, 그 작품들에는 근대의 풍경과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녀의 작품들은 대부분 목판화인데, 전해지는 작품이 많지 않아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그래서 작은 전시회조차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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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안 밀러 <마하연, 금강산> 다색목판 38 x 26cm  1928년 

 

고준한 정감이 넘치는 이 작품은, 2004년 8월 18일부터 10월 2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열린 <그리운 금강산 전>에 ‘녹음방초(Grass Blades from a Cinnamon Garden and Promotion)’라는 이름으로 출품되었다. 그러나 ‘녹음방초’는 릴리안 밀러의 시집 제목이고, 작품 아래에 보면 'Makaen Monastery, Diamond Mountains, Korea’라고 표기되어 있다. 화가가 직접 이 작품의 이름을 <금강산에 있는 마카엔 사찰>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런데 'makaen'이라는 단어가 생소해  영어 사전을 찾아봤으나, 이런 단어는 없었다. 

'마카엔'이 혹시 일본 발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알아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1998년 8월 19일부터 다음해 1월 30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패사디나에 있는 패시픽 아시아 박물관에서 열렸던 밀러 유작 전시회 '두 세계의 사이' 전시도록을 찾아보니, "mahalyan temple을 묘사한 작품"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발음으로 짐작되는 마하연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일제강점기 때 발행된 금강산 사진첩을 찾아보니, 사찰의 위치와 형태가 정확히 일치했고 사진 설명 아래에 'Makaen Monastery'라는 영문표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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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헌 <내.외금강산전도> 견본에 수묵담채 19 ~ 20세기초, 강릉시 오죽헌 . 시립박물관 소장  

 

마하연은 내금강 백운동의 울창한 수림과 기암절벽 사이에 있던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때인 66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화엄십찰에 들던 유서 깊은 사찰로, 지리산 칠불사와 함께 우리나라 2대 참선 도량의 한 곳이다. 불교계의 기록에 의하면, 근대의 고승 만공선사가 1905년부터 3년 동안 선을 지도했고, 성철, 청담스님 등도 젊은 시절에 이곳에서 선을 공부했다. 

 

마하연은 조선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데, 율곡 이이(1536 - 1584)도 19세 때 '의암'이라는 법명으로 금강산의 여러 사찰에서 참선하며 불교의 이치를 연구했을 때 잠시 머물었던 곳이라는 기록이 이종호 교수의 저서 <율곡 -인간과 사상>에 나온다. 율곡은 금강산 시절에 사용했던 '의암'이라는 법명때문에 훗날 다른 유학자들로부터 승려생활을 했다는 오해와 공격을 받았지만 본인은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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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는 마하연 뒷산인 중향성을 은빛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는 조선시대 문장가 농암 김창협이 <동유기>에서 마하연을 방문한 후 ‘지는 해가 아름다워 앞마당을 산책하면서 중향성 봉우리를 쳐다보니 완만한 은색으로 빛나 눈이 부셔 바라 볼 수가 없다.’ 라고 기록한 부분과 일치한다. 따라서 이 그림은 금강산의 짧은 해가 산봉우리를 넘어갈 때를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마하연은 이렇게 금강산 양지바른 언덕에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 그리고 근대까지 천이백 년이 넘도록 온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영주 부석사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지니면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참화 속에서도 무탈하였지만, 광복 후 언젠가 사찰이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은 절터와 공덕비, 중창비 그리고 주춧돌 일부와 돌계단만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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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의 황포돛배> 다색목판  46 x 23cm  1920년

 

밀러는 이 작품의 배경이 한강임을 작품 제목을 통해 확실하게 밝혔다. 위에서 언급한 패시픽 아시아 뮤지움 전시도록에는 캔달 브라운(Kendall Brown)이라는 미국의 미술사가 쓴 '릴리안 밀러의 생애와 예술'이 실려 있는 데, 그가 공개한 밀러의 작업노트에 보면 "이 나루터 근처에 연꽃이 많은 연못이 있다."라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두물머리(양수리) 근처에 ‘연지’가 있고, 그곳에 팔당 댐이 완공되기 전까지 나루터가 있었으니, 위의 장소는 두물머리 나루터일지도 모른다. 지금 두물머리에는 작품에 보이는 소나무는 없지만, 강 가운데의 작은 섬이 그런 추정을 뒷받침해준다.  

 

밀러가 그린 배는 경강선박(京江船舶)으로 보인다. 정승모 지역문화연구소장은 <한국의 전통 사회 시장>에서, "서울의 지주들이 지방의 소작인들로부터 받은 소작미를 운반하던 배"가 경강선박이고, "한강의 주요 나루터에 본거지를 둔 배"라고 설명했다. 운반비로 부를 축적한 배 주인들은,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쌀 운반뿐 아니라 서울의 객주에서 받은 물건을 황포돛배에 싣고 한강 물길을 따라 강원도나 충청도에 가서 팔고, 그곳에서는 숯, 나무, 생선 등을 싣고 와 서울에 팔면서 상권을 확장해, 경강상인(京江商人)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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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강선박에 대해서는 강원대학교 심경호 교수도 <한국사 기행>에서 "강상이 번성하면서 한강을 오르내리던 황포돛배의 수는 하루 평균 100척이었고, 배 한 척에 대략 30가마니의 쌀이나 소금을 실었다."라고 했다. 위의 그림에 보이는 자루의 숫자도 그쯤 되어 보이니 일제강점기 시기에도 강경상인의 후예들은 존재했고, 그들이 갖고 다니던 물목도 조선시대와 비슷했음을 알 수 있다.

 

밀러는 제작 노트에서 1920년부터 황포돛배에 깊은 관심을 뒀다고 기록했고, 실제로 여러 작품 속에 돛 포와 배의 모습을 자세히 표현했다. 황포의 제작 과정과, 물감을 들이는 과정과 탈색에 대한 기록도 남겼다. 밀러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황포돛배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고, 1928년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노을 속의 황포돛배>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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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속의 조선 황포돛배> 다색목판 두쪽 연결 36 x 76cm 1928년 

 

미국인 화가의 목판화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 민족의 서정적 감성을 잘 표현한 서사시 같은 작품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지, 돛 포가 활짝 부푼 일곱 척의 황포돛배가 노을 가득한 대동강 물길을 따라 유유히 내려오는 모습이다. 참으로 장엄하게 하늘과 강물을 뒤덮은 붉은 노을이기에 주요한의 시가 생각난다.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위에, 스러져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이라 파일날, 큰길을 물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 주요한 <불놀이> 첫 부분 1919년 
 

 

밀러는 황포돛배 선단의 장엄한 풍경을 실감이 나게 표현하려고 두 장의 목판화를 이어 붙여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는데, 넓은 크기로 직접 보면 이미지로 볼 때보다 웅장한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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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는 이 작품에서 강 왼쪽의 정자와 벽에 있는 소나무 두그루를 표현해, 연광정 부근의 풍경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연광정은 모란봉 을밀대와 부벽루 가까이 있는 데, 예로부터 평안도 '관서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면서 평양감사 술자리가 벌어지던 곳이다. 현재는 북한의 국보유적 제23호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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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황포돛배>는 릴리안 밀러의 회고전인 ‘두 세계의 사이에서’ 전시도록의 앞뒤 표지화로 실렸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는, 전시회에서 대표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을 도록 앞면에 싣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작품은 밀러의 대표작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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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가을 저녁> 다색목판 22 x 43cm 1928년 가나아트 소장

 

농촌에서 하루 일을 끝내고, 다랭이 논 사이를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일가족의 모습이 정감있게 표현된 작품이다. 당시 그리고 60년대까지 우리나라 어느 농촌에서나 볼 수 있던 흔한 풍경인데, 보면 볼수록 평화롭고 푸근한 느낌이 든다.

 

밀러가 당시 농민의 모습을 잘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직접 농촌을 다니며 직접 스케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화가가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스케치 여행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렇게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느낌을 직접 화폭에 담기 위해서다. 화가란, 그렇게 열심히 다니며 보고 그릴 때, 삶의 모습과 풍경 속에서 삶의 의미와 시대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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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이렇게 그 시대의 보편적 삶의 모습이 보이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박수근 화백의 작품세계가 높게 평가받는 이유도 전쟁 후 힘들게 살아가던 아주머니들과 어린 소녀들 그리고 무기력할 수밖에 없던 노인들의 삶을 소박하게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화가가 화폭에 그 시대를 상징하는 삶의 모습을 표현하려면, 시대와 삶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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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정취> 다색목판 23 x 18cm  1928년 

밀러는 작업노트에서, 강인한 삶을 살아가는 당시 우리나라 여인들에 대해 “하얀 연꽃 같은 여인네들이 어떻게 그리 힘든 일을 오래할 수 있는지, 조선의 여인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라고 기록했다. 밀러는 이렇게 아주머니가 아이를 등에 업고 함지를 머리에 인 모습을,  당시 우리나라 여인의 대표적 모습이라고 파악했다고 할 수 있다. 밀러는 이렇게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이 몹시 인상적이었는지, 이 작품은 다른 색의 판화로도 만들었다. 그러나 검은 배경과 강렬한 조화를 이루는 붉은색을 사용한 이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다.

그녀가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산천을 다니며 많은 작품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인 랜스포드 밀러가 1914년부터 서울 주재 미국 영사로 재직했기 때문이다. 밀러의 전시회 도록에 실린 '밀러의 일생과 예술'에 의하면, 그녀는 아버지가 영사로 부임하던 때에는 미국 Vassar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었고, 졸업 후인 1917년에 가족과 합류했다. 이때 경복궁의 향원정을 그렸고, 다음 해인 1918년 9월부터 아버지의 주선으로 미 국무부 극동지역국에서 근무했지만 화가의 꿈을 버리지 못해 1년 후인 1919년 10월 다시 우리나라에 왔다. 

밀러는 1932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와 함께 일본으로 거주지를 옮겼지만, 1935년에 발행된 영어판 우리나라 옛시조 선집인 <난초의 문(Orchid Door)>의 삽화를 그리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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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는 1936년 하와이의 호놀룰루로 이사했고, 2년 후에는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에는 동양인이 많이 살고 있어, 판화를 판매하기가 하와이보다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업 화가의 삶이란 그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고달픈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전업화가로서의 삶을 지켜가던 밀러는 1942년 암 진단을 받은 후, 1943년 1월 11일 눈을 감았다. 그녀의 나이 4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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