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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에서 그린 금강산

좋은 글 행복한 사진 조회수 29406 추천수 0 2008.07.18 05:29:10

금강산 길이 막히니 생각나는 그림이 있다. 청계 정종여(1914 ~ 1984)가 1942년에 그린 '어 경포대 망 만이천봉'이라는 가로 3.5 미터의 10폭 병풍 그림이다. 그의 나이 불과 스물여덟에 그린 작품으로, 경포대에서 그렸다는 뜻에서 ‘어 경포대’라고 했고, 그곳에서 보이는 외금강을 그렸다는 뜻으로 ‘망 만이천봉’이라고 화폭 왼쪽 위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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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여 <어경포대 망만이천봉> 종이에 수묵담채 135 x 350cm(8폭병풍) 1942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우리나라 미술사에 외금강을 이렇게 웅장하게 그린 작품은 만나기 쉽지 않아, 이 그림은 여러 금강산 전시회에 출품되었다. 그러나 그림이란 크기만 크다고 웅장한 것이 아니라, 큰 화폭에 여러 모습을 조화있게 채울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정종여는 외금강의 웅장함과 경포대의 아늑함을 잘 조화시키면서 화폭 곳곳에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이 작품을 그린 장소인 경포대는, 경포호가 시작되는 왼쪽(호숫가 동북쪽)에 있는데, 호수와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관동팔경' 중 첫번째로 꼽는 누각이다. 경포호는 '거울처럼 맑은 호수.'라는 뜻인데, 옛 사람들은 '경포호에는 달이 4개가 뜬다.'라며 호수의 낭만을 노래했다. 하늘에 뜬 달, 바다에 비치는 달, 호수에 비치는 달, 술잔에 비치는 달을 합쳐 4개의 달이라고 했는데, '앞에 있는 여인의 눈동자에 뜬 달'을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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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는 오른쪽부터 그림이 시작된다. 옛날에는 글씨를 오른쪽부터 썼기 때문에 화가들도 그렇게 그렸고, 이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왼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는데, 정종여는 이 부분을 풍속화처럼 재미있게 그려 화폭이 단순한 풍경화에 머무르지 않게 했다.

바다의 물결과 나무 숲을 그린 솜씨를 보면, 그가 옛 그림을 충실히 공부했음을 알 수 있다.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그림에 보면 이런 물결과 나무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그림에 사람들의 모습이 없었다면, 그림은 잘 그렸지만 옛 그림의 아류에서 벗어했다는 지적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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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당시 바닷가 사람들 특히 아낙들의 삶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데, 어른 아이 구별 없이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가는 모습에서 바닷가 삶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아주머니들이 아이를 업은 모습을 통해서는 젖먹이를 꼭 데리고 다니던 당시의 풍습을 볼 수 있고, 이들이 근처 도시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마을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근처 도시의 5일장에 가서 수산물을 팔고 집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갖고 오는 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배에서 내린 사람 중에 남자가 한 명도 없는 점도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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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인 광주리가 작은 아낙들은 걸음이 빨라 앞으로 가고, 광주리가 큰 아낙 두 명은 잠시 쉬면서 이야기를 한다. 손에 생선꾸러미를 든 모습과 아낙의 등에 업힌 아기가 잠이 든 모습에서, 화가의 섬세함과 자상함을 느낄 수 있다. 정종여의 절친한 친구였던 운보 김기창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그는 서울에 살면서 1남 3녀를 뒀는데, 여행 중이 아니면 언제나 집에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가정적이고 다정다감한 화가였다고 한다. 

맨 뒤에서 걸어오는 가족을 보면, 여자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광주리를 이고 가고, 남자 아이는 짐도 들지 않은 채 길 옆에 서서 심통을 부리는 모습에서는 아들을 우대하던 당시의 풍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아들을 놔두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이제는 보기 어려운 추억 속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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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가운데 부분이기 때문에, 그림의 중심답게 경포대와 외금강이 잘 어우러지게 그렸다. 호수에 물오리 떼와 뱃놀이를 하는 배 3척을 그려 호수의 분위기를 평화롭게 했다. 실제로 경포호에는 철새들이 많이 찾아와, 호수 가운데 섬 한곳에는 '조암(새바위)'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는 조그만 정자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이게 그리는 방법을 부감법이라고 하는데, 이 방법으로 그리려면 주변 환경을 머릿속에서 완전하게 외울 정도로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부감법으로 그린 그림은 많지 않고, 특히 요즘 화가들의 작품에서는 쉽게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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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보면 그가 경포대 주변을 잘 알고 있고, 화폭 어느 한 곳도 소홀히 그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호수 주변에 많은 집을 그렸는데, 부자들이 사는 기와집은 전망 좋은 언덕 위에 있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초가집은 산 언덕 아래에 모여있다.

왼쪽 맨 위의 기와집은 부잣집답게 청기와로 그렸고, 오른쪽 아래의 기와집은 검은 기와로 그렸으니, 그의 관찰력이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초가집의 지붕을 짚단 색으로 그린 부분도 마찬가지다. 대단한 묘사력을 가진 화가라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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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 부분이니, 작품이 끝나는 부분이다. 그림 중간 부분에 소떼를 몰고 가는 풍경을 그려 목가적 분위기가 물씬 나게 했다. 왼쪽 아래에는 새참을 갖고 가는 아낙과 아이를 그렸고, 허수아비가 세워진 논에서는 남자가 아닌 여인이 벼를 베고 있다.

 

사실 이 그림은 여름에 그린 그림이라고 화폭 왼쪽 위에 쓰여 있다. 그러나 그림이 끝나는 부분이기 때문에, 농사도 끝나는 풍경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허수아비까지 세웠으니, 화가의 재치를 느낄 수 있다. 허수아비 오른쪽 위로 사당이 보이고, 바닷가 소나무답게 구불구불한 소나무에서는 그가 경포대 주변 풍경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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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 석조전 건물 앞에서 (1930년대말 - 1940년대초 추정)

 

정종여는 우리나라 근대미술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겼다. 그러나 그는 9·28 서울 수복 며칠 전 후배 동양화가가 데리고 온 2명의 인민군에게 납북되어 북한으로 갔다. 1999년 북한에서 발행된 <조선력대미술가편람>에 의하면, 그는 월북화가들과는 달리 1952년 2월까지 ‘미술제작소’라는 곳에서 선전화를 그렸고, 그런 ‘검증’을 거친 후에야 조선미술가동맹의 ‘현역미술가’가 되었다. 남한에서 탁월한 기량을 자랑하던 그가 뒤늦게야 정식 화가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그가 자진 월북을 하지 않았다는 ‘정황 증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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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력대미술가편람 증보편>  정종여 부분  평양 문학에술출판사 1999년

그는 조선미술가동맹에서 2년 동안 당이 요구하는 그림을 그린 후에 1954년 1월 평양미술대학 조선화 강좌 교원으로 임명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10년간 재직하면서, 북한 미술이 채색화로 가는 길목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다.

 

억지로 끌려간 정종여는 "조선화를 현대적 감정과 정서에 맞게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라는 김일성의 '교시'를 실천하기 위해 남한에 있을 때는 그리지 않았던 채색화를 그려 정치적으로 순탄한 삶을 마쳤고, 자진해서 올라 간 근원 김용준은 채색화를 반대하며 수묵화를 고집하다가 은퇴한 후 쓸쓸하게 생활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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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낙조> 종이에 수묵담채 31.5 x 47cm 1942년

 

청계 정종여는 1984년 12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북한에서 가장 그리고 싶어 했던 그림은 “한라산과 남해안 다도해의 절경 그리고 지리산, 금강산, 백두산이 한 화폭에 어우러진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조선시대 화가 이인문이, 가로 8.5미터의 초대형 화폭에 그린 그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라는 사실이 1987년 8월 일본 조총련에서 발행한 <조선화보>에 실렸다. 그러나 그런 그림을 그렸다는 기록도 없고 남아있지도 않으니, 그는 자신이 가장 그리고 싶어했던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눈을 감은 것이다.

 

그가 고향인 거창에서 지리산을 오르내리며 그렸던 지리산 그림을 소개하며, 이번 이야기를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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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조운도> 종이에 수묵 126.5 x 380cm 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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