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서로 마음을 열어 고민과 아픔을 나누고 치유하며 행복을 모아내는 게시판입니다.
 

땅값 오를만한 곳 피해 농사짓는 신앙공동체 신부님의 좌충우돌 5년

 
7가구 모여살며 공동노동·분배
농작물 파먹는 산짐승과 대화
쟁기로 멀칭 등 산속화제 만발

00405853101_20111001.JPG
» 서울을 떠난 박기호(62) 신부
심상찮은 먹구름을 돌아보며 방주를 지으러 간걸까. 그는 스스로 자신을 고대 이집트의 천민 ‘하삐루’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하삐루의 삶을 청산하려 홍해를 건넌 걸까. 멸망의 가증한 것을 보고 산으로 피한 걸까.
 

2004년 ‘산 위의 마을’로 선별한 쌍을 올려보내고 이태 뒤인 2006년 이들을 따라 훌훌 서울을 떠난 박기호(62·사진) 신부가 5년여에 걸쳐 기록한 ‘산중일지’ <산 위의 신부님>을 펴냈다. 번잡한 세상에서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산 위는 과연 어떠했을까. 아무렴 망측한 산 아래만 했을까.

 

충북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 556번지. 하루 세 차례 시내버스가 돌아나가는 보발분교 마을에서 내려 포장농로를 벗어나 산길 30분을 오르면 해발 490m ‘산 위의 마을’에 이른다. 북서풍을 막아주는 930m 뒷산 아래 2500평 대지에 집을 짓고 1만8000평 밭에 더덕, 야콘, 콩을 키우며 삶을 꾸려가는 가톨릭 신앙공동체다. 애초 십시일반으로 씨돈을 모아 개발되거나 값이 오를 만한 데를 피해 숨어들었다. 삼덕오행 곧 사랑, 순명, 자비심과 기도, 노동, 공유, 배려, 정직을 바탕으로 하여 농사일과 신앙생활의 일체화를 꾀했다. 입촌할 때 가진 것을 모두 지참금으로 내놓고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공동노동을 하고 과실은 공동분배다.

 

14가구 54명과 11명의 독신자로 시작해 빈번하게 들고 난 끝에 현재 7가구 32명이 산다. 아침 해와 함께 일어나 밭으로 나가고 5시40분이면 저녁을 먹는다. 8시면 하루일과 끝. 10시면 마을의 불빛이 사라지고 깜깜세상이다. 초등생 4명은 전교생이 12명인 보발분교에 다니고, 중학생 2명은 홈스쿨링을 한다.

1317383836_00405853301_20111001.JPG
» 산 위의 신부님 박기호 지음/휴·1만3000원
마을은 초봄부터 10월까지 식품비 지출이 적다. 지천이 푸성귀니 약간의 생선과 고기, 과일이면 족하다. 입촌 가족이 첫 봄을 맞으면 체중이 쑥 빠졌다가 여름 한철을 보내고 겨울이 되면 얼굴이 돌아온다. 어른들은 농사일이 힘들고 아이들은 1.4㎞ 떨어진 학교를 걸어다녀야 하니 애·어른 할 것 없이 밥을 수북하게 먹게 된다.
 

선생님이 묻는다. “눈이 녹으면 무엇이 될까요?” 도시아이가 답한다 “물이 됩니다.” 산골아이가 답한다. “봄이 됩니다.” 닭똥 냄새에 코를 막던 아이들이 닭장 안에 들어가 날달걀을 꺼내 먹곤 시치미를 떼고 나온다. 그렇게 도시의 아이들은 산골아이가 되어가지만 ‘산 위의 신부님’은 매달 첫째 목요일 ‘전기 안 켜는 날’을 정해놓고도 무심코 스위치를 올렸다가 복사(미사 때 신부를 도와주는 이) 아이의 귀엣말을 듣고서야 “아, 그렇군!” 한다.

 

신부나 입촌 가족이나 생초보 농사꾼이기는 마찬가지. 원주민한테 어깨너머로 배워서 심은 감자, 고구마, 더덕은 멧돼지들이 후벼가고, 배추 모종을 심어놓으면 노루가 짓밟고 귀뚜라미가 똑똑 잘라버린다. 콩싹이 나면 산비둘기와 긴꼬리까치가 와 파먹는다. 반짝이는 줄을 치고 허수아비를 세워도 효과는 며칠뿐이다. 동식물과 소통한다는 외국의 한 공동체를 떠올리며 보이지 않는 동물들을 향해 팔을 벌리고 대화를 한 그날 밤도 그들은 부산스럽게 밭을 다녀갔다. 밭 둘레에 ‘앗 따거’ 전깃줄을 두르고 하는 혼잣말. “너희도 먹고 살 권리가 있고, 우리도 우리 농사를 지킬 권리가 있다. 타협을 하면 좋겠지만, 살아보니 사람끼리도 소통이 어렵더라.”

 

비싼 수업료도 치렀다. 화학비료 잔류 성분 덕에 농사가 잘된 줄도 모르고 땅이 살아났구나 기뻐하다 이듬해 쫄딱 망하고, 송아지 펀드에 가입하라고 동료 신부들을 꼬드겨 모은 돈으로 산 어미소(?)는 열살배기 노파. 한배만 낳고 반값에 팔아야 했다. 청년 시절 방황기를 거쳐 나환자·행려자 돕는 일을 하다가 마흔둘에 늦깎이 서품된 신부. 낮은 곳에 눈길을 주기는 했지만 16년 동안 서울서만 맴돌다 뒤늦게 농사꾼이 되었으니 오죽하랴.


그러나 산 위의 마을을 거쳐간 이들 상당수가 다시 귀농하고, 소주 한병에 김치 한보시기면 소 코뚜레를 뚫는 김 노인, 사고가 발생하면 출동하는 해병대 출신 이발소 홍 사장, 감기 걸린 신부 좀 살려주세요 문자 날리면 한약을 대령하는 김 목사 등 소중한 이웃을 얻었다.

 

쟁기로 멀칭을 하는 지혜도 배웠다. 비닐 두루마리를 막대에 끼워 보습 앞에 달고 쟁기질을 하면 비닐이 펴지면서 파내진 흙이 비닐 한쪽을 덮는다. 보조자가 다른 쪽을 두둑 너머로 당겨 고랑의 흙을 덮어주면 멀칭이 완성된다. 새참을 먹느라 밭가에 앉으면 갓 시집온 새댁의 가르마처럼 예쁘게 보인다.

 

“농사를 짓기는 하지만 농부라고는 못 하죠. 자연에 대한 외경심, 농사에 대한 오랜 경륜이 있어야 하는데 몸조차 따라주지 않는걸.” 전화기 너머 신부는 아직 엄살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공지 일반 중앙일보 교보문고, 올해 인문서 우린 다르게 살기로했다 imagefile 조현 2018-12-21 25774
공지 일반 조현의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북콘서트 초대 imagefile 휴심정 2018-12-03 30671
공지 게시판 글쓰기에 관한 안내입니다 [3] admin 2011-07-08 778336
2222 일반 나라 끝, 해남 미황사 괘불재 imagefile [4] 志尙 2008-10-21 15733
2221 일반 이곳은 뭐하는 곳인가? [1] 땅끝촌넘 2008-01-02 15709
2220 일반 석천암에서 [1] 무를찾아서 2008-01-26 15662
2219 일반 지구의 절규, 마음의 절규 imagefile anna8078 2011-11-17 15648
2218 일반 자본과 노동! repent00 2013-04-06 15477
2217 일반 함세웅 신부 은퇴 미사 imagefile [1] 휴심정 2012-08-27 15412
2216 일반 앗. 사이트 오픈을 축하드립니다. image [1] 미야 2008-01-02 15376
2215 일반 “시장의 인간화·보통사람들 ‘성화’ 이뤄져야 새 세상” imagefile [2] 휴심정 2012-04-23 15350
2214 일반 좋은 엄마란... dhsmfdmlgodqhr 2012-07-05 15285
2213 일반 <왜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가 필요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1] loongrun 2015-12-04 15268
2212 일반 히말라야에서 온 청전스님 인터뷰 기사 image [4] 조현 2011-09-26 15198
2211 일반 안경벗지마 !! 장기하! imagefile hyuri4you 2011-08-15 15186
2210 일반 세대를 아우르는 다정한 멘토 혜민스님 - Dear 청춘 movie 휴심정 2012-05-29 15180
2209 일반 남자들이 죽을 때 후회하는 5가지 [1] 조현 2012-02-03 15126
2208 일반 위대한 조비알리스트2 - 울고있는 진인편 imagemoviefile [7] ujanggum 2014-05-21 15089
2207 일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극단적 종교갈등이 갖고 있는 파괴성... 영화 <그을린 사랑>... imagefile [2] hyuri4you 2011-07-25 15084
2206 일반 CBS 이명희입니다. [1] 이명희 2008-01-10 15030
2205 일반 말복, 그리고 입추 imagefile anna8078 2012-08-07 15021
2204 일반 "김종서 아들, 수양대군 딸의 사랑 진짜일까??" image leeyeon5678 2011-09-29 14999
2203 일반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imagefile [3] wonibros 2012-07-20 14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