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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일본식 조경을 철거하라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조선왕조실록환수위 간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사무처장.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BY : 혜문 | 2012.02.26 | 덧글수(0) | 트랙백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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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조선총독부 정문(구 조선통감부 자리, 좌)와 청와대 정문(우)
 
1.
지난 100년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가끔씩 생각하기 싫은 흔적들과 만난다. 그중 특히 식민통치 36년간 일본이 우리에게 남겨 놓은 상처를 들여다 보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언젠가부터 나는 아직도 존재하는 식민의 상징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면 그만일지 모르지만, 그것들은 중요한 장소마다 나타나 뭔가 ‘순정한 민족정신’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순신장군을 모신 현충사에 심겨진 일본 특산종 금송 같은 종류이다. 의아한 생각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런 흔적을 찾아가다 나는 우리나라 최고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 역시 일본식 조경에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
현재 대통령 관저로 쓰이는 청와대는 원래 조선시대 경복궁의 일부였다. 일제의 국권침탈후 조선총독부는 경복궁 안에 청사(廳舍)를 신축하면서 1927년 오운각(五雲閣) 외의 모든 건물과 시설을 철거하고 총독관저를 이 곳에 지었다. 따라서 역사적 경위를 고려하할 때 , 청와대가 일본식 조경에 오염될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 이미 학계와 문화재청에 의해 ‘일본식 조경’문제가 지적된 사항이었다.
 
그런데 청와대의 일부 조경은 아직도 왜식조경으로 남아있습니다. 원래 청와대지역은 경복궁의 후원이며 옛 궁담이 남아있고, 대통령 내외가 주무시는 집 후원에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의 각자와 오운정(五雲亭) 등의 정자가 원형대로 남아있어 사적지의 성격을 지닌 지역입니다. 청와대에서 우리나라 전통조경 전문가들을 불러서 자문 받아 일제시대 조선총독이 조성했던 그 조경을 수경 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재훈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조경학과 석좌교수), 사적지 조경의 현황과 과제 中)
 
 구체적인 정황을 수집하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길에 나는 넋을 잃을 정도의 충격에 사로 잡히게 되었다. 청와대의 정문은 일본 야스쿠니 신사의 대문과 닮아 있었다. 일본신사는 일반적으로 도리라고 불리는 정문을 세우고 그 옆에 등롱(燈籠)이라고 불리우는 석등을 배치한다. 그런테 놀랍게도 청와대 정문에 이런 양식이 나타나고 있었다.
 
일본 야스쿠니 신사 석등(좌) 와 청와대 대문의 석등(우)
 
청와대에서 석등이 나타나는 것은 좀 뜻 밖의 일이 었다. 석등은 조명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자(死者)의 영혼을 위로하거나 부처님께 공양을 위한 법구(法具)이다. 우리나라의 석등은 사찰이나 능묘에서만 나타날 뿐, 일반적인 주거지나 궁궐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한 사찰에 세워질 때에도 전통양식에서는 단 1기만 세워질 뿐 쌍등이나 다수의 등이 일렬로 배치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일본 신사 혹은 일본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일 경우에만 한정된다.
 
일본식 석등이 우리 청와대에 존재하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문화재청에 관련 사실을 질의했다. 마침 창덕궁 앞에도 이런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기에 우회적으로 창덕궁 석등은 전통양식이 아니므로 철거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문화재청에 발송해 보았다. 만약 문화재청이 창덕궁 앞의 석등을 철거한다면, 이는 명백한 오류로 청와대의 일본식 석등도 마땅히 철거대상이라는 확신이 설 수 있었다.
 
창덕궁의 석등 (좌) 일본 야스쿠니 신사 석등(우)
 
결과는 명료했다. 창덕궁 관리 사무소는 나의 이의 신청을 받은 뒤, 곧장 철거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 석등은 2012년 2월 13일 철거되었다)
 
문의하신 석등은 전문가 자문결과 ‘ 전통방식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1970년대 궁궐 주변정비를 위해 설치한 펜스의 일부로, 임의로 설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석조물은 철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자문위원의 의견이 있어 다음주 중으로 조속히 철거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2012. 2.7 문화재청의 답변
 
그렇다면 누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청와대에 일본신사에서나 볼 수 있는 석등을 설치한 것일까? 좀 더 결정적인 증거수집을 위해 고심하던 중 혹시 청와대 석등이 조선총독부의 잔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조선총독부의 사진을 조사해 보았다. 되었다. 예상대로 과연 남산에 위치한 조선총독부와 놀랄만큼 유사한 사진을 찾아 낼 수 있었다.
 
남산의 조선총독부 정문(구 조선통감부 자리, 좌)와 청와대 정문(우) 돌기둥 위에 위치한 석등이 유사점을 보인다.
 
3. 조선혼이여! 깨어나소서
그렇다면 누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일본식 석등을 청와대에 설치한 것일까? 석연치 않은 대답일지 모르지만, 나는 누구 한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일본식 풍습에 찌들어 있던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남기고 간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고, 먹고 살기에 급급하느라 놓치고 있었던 것들이 결국 청와대에 일본 석등을 설치하는 오류를 발생시키고 만 것이다. 게다가 국가 최고 권력의 상징에 대해 용기있게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할 수 없었던 지난 세월의 잘못이 아니었을까?
이제 긴 이야기의 결론에 도달해야 할 듯하다. 망국과 해방으로 뒤엉킨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 보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생각하기가 싫어질 때가 있다. 마치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처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할 지경이다. 여기에 나는 불교가 한줄기 실마리를 제공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불교는 없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이다. 불교적으로 말한다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미혹한 중생의 삶이라면, 잃어버린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 수행자이고 구도자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금강경에 등장하는 단어로 말한다면 ‘환지본처(還至本處)- 제자리찾기’라고 할 수 있다. 제자리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이고, 어떤 존재가 나아가야할 완전무결한 자리이기도 하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는 잃어버린 것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활동이고, 그것은 결국 참마음의 제자리 찾기, 양심의 제자리 찾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격동의 근현대사에서 벌어진 역사적 질곡에 의해, 인간의 탐욕에 의해 제자리를 떠난 것들을 제자리로 찾아오는 활동은 ‘불교 사상의 사회화’이고, 또 하나의 수행 과정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일본식 조경으로 오염된 청와대를 보며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민족문제’를 생각한다. 그리고 부처님께 ‘민족의 제자리찾기’를 위한 간절한 소망을 기원한다.
“조선혼이여! 이제 깨어나소서”
 
*이 글은 졸저 <빼앗긴 문화재를 말한다>,작은 숲, 2012. 에서 주요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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