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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의 트렌드 vs 클래식]소파를 버리고 우주를 얻다?
김경 | 칼럼니스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9172103205&code=990100

 

 

얼마 전 시골의 작은 집으로 이사하며 대형 카우치 가죽 소파를 버렸다. 정확히 버린 것은 아니고 새로 이사 들어오는 가족이 사용하겠다고 해서 예전에 살던 집에 그냥 남겨두고 왔다.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 같으면 소파를 놓을 거실의 한 벽에 그림을 걸고 커다란 나무 테이블을 놓았다. 책상의 각도는 정확히 거실창을 통해 테라스와 이웃의 더덕밭과 산과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위치다. 아침이면 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 다음 뉴스를 보며 아침식사까지 하고 작은 방에서 사무용 나무 의자와 노트북을 가져다 방금 식사를 마친 자리에 놓으면 그 순간부터 재택 근무가 시작된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간단한 한 접시 요리와 와인이나 막걸리를 내놓고 음악과 촛불을 켠다. 그러면 하루 종일 식탁이며 책상으로 쓰였던 테이블이 다시 한번 분위기를 전환하여 근사한 카페 기능까지 하게 된다. 심지어 별과 은하수가 춤추는 밤이면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테이블과 거실 창 사이에 러그를 깔고 눕는다. 그러면 우리가 한낱 소파 위가 아니라 이 지구의 대지 위에서, 찬란한 우주 속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감격에 찬 소속감마저 느끼게 된다.

예전에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소파가 필요하고, 그걸 놓고도 여유가 있을 만큼 널찍한 거실도 필수다. 거실과 주방은 반드시 분리돼 있어야 하고 그 중간쯤 식탁을 놓을 수 있는 다이닝룸 성격의 공간도 필요하다. 책이 많고 집에서도 일을 해야 하므로 서재도 필수다. 그런데 작은 집에 이사해 나름대로 고육책으로 그걸 하나로 통합하니 오히려 훨씬 더 기능적이기도 하거니와 미학적으로도 더 낫다는 걸 알게 됐다. 보통 자기 집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몸집 큰 소파가 차지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거기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는 하루 1시간도 안됐다. 그러니까 소파가 사람 대신 하루 종일 거실 창을 통해 해가 뜨고 구름이 지나가고 바람이 불고 밤이 되어 달이 뜨는 풍광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대신 사람은 답답한 사무실과 서재, 비좁은 주방, 갑갑한 침실 사이를 왔다갔다 종종걸음치며 살고.

작고하신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낯선 가구들 틈새에서 가구들이 군림하도록 우리는 작아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셨는데 소파를 버리고 이제야 그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게 됐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사람은 나날이 왜소해지고 건축은 나날이 비대해지는 가운데 정기용 같은 건축가가 있었다는 건 우리에겐 여전히 감사한 일이다. ‘흙집 연구’와 ‘기적의 도서관’으로 유명한 건축가였지만 그 유명세에 비해 가장 가난한 축에 드는 건축가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건축계의 공익요원’이니 오죽했을까?

하지만 그는 “나의 집은 백만평”이라며 호기를 부리는 분이기도 했다. 실제로 오랜 세월 명륜동의 한 허름한 다가구주택에서 거주하셨지만 그에게 안팎의 경계는 무의미했다. 집 밖에서도 거주하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마다 창밖으로 바라보는 명륜동 일대의 풍경은 그의 집 일부가 되고,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성균관 앞마당은 자신의 정원이라 여기며 새벽이든 낮이든 조금만 여유가 있어도 그곳의 500년 된 은행나무 밑에 앉아 있곤 하던 분이다. 지금도 눈에 선하게 생각난다. 소파도 TV도 없는 텅 빈 거실에 작은 좌식 탁자와 두서없이 쌓아올린 책 무더기만 있던 풍경이…. “10년을 경영하여 무옥을 지었는데 반은 청풍이요 반은 명월이로다. 강산을 들일 것이 없으니 둘러치고 보리라”는 시구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분이었다.

최근 들어 일본에서는 1952년에 지어진 마쓰자와 주택을 리메이크한 9평 하우스가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여러 건축가들에 의해 새롭게 재현된 마쓰자와의 9평 하우스는 정확히 1층 9평, 2층 6평인 작은 집에서 현대의 4인가족이 어떻게 충분히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로 <9평 하우스>라는 책으로도 만들어졌다. ‘집이 넓어야 지내기 편하다’는 우리의 통념을 깨는 책이랄까? 심지어 편안함에 대한 생각을 조금 포기할 경우, 작은 집이 고층건물 옥상의 아주 넓고 값비싼 집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100년 전 버트런드 러셀이 취향에 대해 했던 이런 말을 상기하게 만드는 예라고 할까? “고상한 취향을 가로막는 최대 방해꾼 하나. 썰렁함에 대한 두려움과 여기에서 유래하는 충동, 방 안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고 여기저기에 양탄자를 깔고 한 치도 남기지 않고 모든 공간을 활용하려는 충동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의 혐오감을 일깨우는 집은 집주인의 미적 감각의 결여를 값비싼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가구와 잡다한 전자제품을 통해 상쇄할 수 있다고 믿는 집이다.” 작은 집이 더 아름답고 우아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말이다.

덕분에 내 손으로 그 작은 집을 좀 더 살기 편하고 개성적으로 개조하고 싶다는 모험심까지 갖게 만들고. 뭐 못할 것도 없다. 우리 집 같은 경우 거실과 주방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게 최대 불만인데 그것부터 해치우자. 슬라이딩 레일 도어 스타일의 움직이는 가벽을 만드는 거다. 그럼 혹시 다음 테마는 ‘셀프 인테리어 도전기’에 대한 것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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