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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말을 할줄 아는 사람

법인 스님 2018. 0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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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암-.jpg » 서울 서촌 이서재의 집전에서 <하루 일지암>이라는 행사 도중 일지암 암주 법인 스님이 방문객들과 차담을 하고 있다. 사진 이서 화백


포근한 미소와 한 잔의 향기로운 차는 산중 암자를 찾아오는 벗들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자신을 성찰하고 남다른 사유의 시선을 탐구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대화는 늘 즐겁다. 차를 마시면서 부처님 말씀과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책은 재미와 의미가 있는 차담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차담이 끝나면 무엇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차나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간 이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다. 


어느날 한폭의 수채화같은 얼굴을 가진 벗이 소식을 전해왔다. “그저 옆에 있어도 좋은 벗들이 찾아 와서 햇볕 바른 마루에서 스님이 주신 차를 마셨습니다. 향긋한 차향을 머금으며 서로가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이심전심의 경지가 멀리에 있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에 차향과 미소가 어리는 듯 했다. 얼마 전에는 감동적인 선물 사례를 받았다. 법조계에 몸 담고 있는 분이 찾아와 차담을 나누었다. 평소 책을 가까이 하고 있다는 그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에 대해 나의 의견을 물었다. 나도 그 책을 읽은지라 많은 공감을 확인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을 좋아하는 그의 진심이 느껴져서 두 해 전에 출간한 나의 책을 선물했다. 다음 날 그 분의 전화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와 책장을 펼쳤는데 마음이 열리고 공감되는 내용이 많아서 하루에 한두 편씩 ‘아껴가며’ 읽겠다는 것이다. 아껴가며 읽겠다,는 그의 말에 가슴이 찌릿했다. 부족하나마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이만한 찬사가 없겠다 싶었다. 분에 넘치는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차와 책을 받은 두 사람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성의 있는 답신의 행간에서 그들이 ‘자기 말을 한다’는 믿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말은 곧 존재의 집이라고 한다. 존재의 집은 그만의 독특한 사유의 시선으로 포착한 세계이다. 그러한 세계에 사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발설하는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체험과 느낌으로 말한다. 그러한 말이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선사들은 선문답을 통하여 사구(死句와)와 활구(活句)를 가려낸다. 즉 다른 사람들의 좋은 말을 사유와 체험의 과정 없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자기의 말인양 착각하는 속내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한 제가가 스승에게 “해탈이 무엇이냐”고 묻자 스승은 “누가 너를 묶어 놓았더냐”고 되물었다. 또 제자가 “무엇이 부처의 마음이냐”고 묻자 스승은 “누가 너를 더럽혔더냐”고 되물었다.


 나는 어느 농부의 말을 지금도 큰 울림으로 간직하고 있다. 온갖 자연환경과 동네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농사 짓는 결실의 과정에서 그는 나름의 깨달음을 이렇게 말했다. “나만 살고자 하면 나도 살수 없다”. 농부의 이 한마디에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는 경전의 가르침이 사람 사는 세상으로 나왔다. 자기 말을 하는 사람들의 한마디는 어디서나 생생한 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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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스님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전남 땅끝 해남 일지암 암주로 있다.
이메일 : abcd369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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