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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지킴이로 살...

2012. 08. 20
조회수 7171 추천수 0

강정마을 지킴이로 살아가는 네 명의 예수회 수도자

예수회 김성환 신부, 김정욱 신부, 박도현 수사, 이영찬 신부.


이들은 지난 2011년 7월부터 제주 강정마을과 인연을 맺었고, 강정마을 주민으로 1년째 살아가고 있다. 작년 9월 2일 구럼비에 펜스가 둘러 쳐지고, 굴착기와 레미콘이 오가는 해군기지 사업 현장, 경찰과 대응하면서 주민들이 넘어지고 눈물 흘리는 현장, 매일의 미사가 봉헌되는 현장에는 항상 이들이 있었다.


그러는 동안 이들은 최다 연행, 사제 구속이라는 상황을 겪었고, '레미콘 신부님'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각자 다른 사도직을 가졌던 이들은 이제 '강정마을 지킴이'라는 새로운 사도직을 얻었고, 같은 자리를 지켜 내고 있다. 이들은 왜, 강정마을에 왔고 떠나지 않은 것일까. 물음에 대해 그들은 "강정마을에 우리의 삶이 있다"고 대답했다.


20120820_7.JPG » 경찰, 용역과 싸우고 밀려났다가도 연좌한 자리에 다시 앉아 묵주알을 굴리는 이영찬 신부는 "죄악의 회심을 청하는 것"이라고 했다. 해군기지는 권력욕, 패권주의에서 비롯된 엄청난 죄악이라고 하면서, 그들의 회심을 바라고 또 바란다고 말했다. ⓒ한수진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정현진 기자 regina@catholicnews.co.kr


그들은 왜 강정마을에 살게 됐나? 
최다 연행 수도자, '레미콘 신부님'이 되기까지…


강정마을과 가장 먼저 인연을 맺은 것은 김성환 신부였다. 예수회 민족화해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성환 신부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논문을 집필하던 참이었고, 문정현 신부를 방문하기 위해 강정마을에 왔다. 그 뒤로 박도현 수사, 이영찬 신부, 김정욱 신부가 차례로 강정마을에 발을 디뎠다. 김성환 신부를 보기 위해서, 문정현 신부를 만나기 위해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 각기 다른 이유로 강정마을을 찾았지만, 그들이 목격한 현실은 같았다.


5년 동안 주민들이 아무리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강정마을, 주저앉아 우는 사람들, 경찰과 해군에 의해 기만 당하는 사람들, 펜스에 갇혀 버린 구럼비, 구럼비에 더이상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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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회 이영찬 신부 ⓒ한수진 기자

이영찬 신부는 구럼비에 펜스를 치기 전 보름 동안 구럼비 바위 위에서 살았다고 했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체험으로 알아야겠다는 결심은 안식년의 나머지를 강정마을에서 보내게 했다. 무조건 공사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수시로 레미콘에 올라가는 탓에 결국 '레미콘 신부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얼마 전 레미콘 위에서 버틴 8시간 기록은 당분간 누구도 깨지 못할 듯 보인다.

박도현 수사. 그는 지난 2월 구럼비에 들어가 100배를 올리던 중 연행돼, 구속될 위기에 놓였었다. 당시 포승줄에 묶여 이동하는 박도현 수사를 본 문정현 신부는 목을 놓아 통곡했다. 몸집이 작은 박도현 수사의 한때 소원은, 체중이 불어서 경찰 4명 이상이 달라붙어야만 끌고갈 수 있게 되는 것. 경찰 2명이 가뿐히 자신을 들고 가는 것이 가장 억울했다면서 웃었다.


희망버스에 올랐다가 김성환 신부를 보기 위해 도착한 강정마을은 박도현 수사에게 너무나 아픈 곳이었다. 특별 사도직으로 청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실무자로 일하고 있던 그는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강정마을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는 강정마을 공인 최다 연행 수도자가 됐다.


김정욱 신부는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고 말했다. 서강대 사회봉사센터를 맡고 있던 김정욱 신부가 처음 강정마을에 들어온 직후인 9월 2일 새벽 구럼비에 펜스를 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사 현장을 지키던 사람들이 경찰에 실려가 버려지고, 맨발로 다시 현장으로 걸어오는 참담함, 단식하던 양윤모 선생, 포클레인 앞에 드러누운 여인을 보면서 그는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결국 구럼비 폭파를 막기 위해 펜스를 뜯은 김정욱 신부는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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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덤프트럭 앞을 가로막은 김정욱 신부(가운데)


가장 힘든 순간은 마음과 삶을 나눈 이들이 다치고 끌려가는 것..
구속 뒤에 엄습한 두려움과 싸워 이기기..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강정마을의 1년.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질문이지만 궁금했다. 그들도 지키던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었을 터였다. 

김성환 신부는 구럼비 바위를 폭파할 때, 그리고 김정욱 신부가 구속됐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사실 김성환 신부는 작년 7월부터 엄청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 시도될 구럼비 폭파를 막기 위한 준비였다.

폭파가 이뤄질 지점을 예상하고 뛰어들어 막아낼 것이라는 결심이었다. 폭파가 이뤄진 3월 7일 새벽, 김성환 신부는 예상지점에 몰래 들어가 새벽 3시부터 오전 11시까지 찬 바닥에 꼼짝 않고 숨어 있었다. 폭파가 시작되면 뛰어들어 막아 낼 생각이었다. 사람이 있으면 폭파하지 못하고, 다시 폭파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김성환 신부는 곧 끌려 나왔고, 주저 없이 폭파는 감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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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회 김성환 신부. 그는 "울고 있는 이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 즉각적인 측은지심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우는 것이 기쁨이 되고 정의가 꺾인 현장에서 오히려 위로를 얻는 역설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한수진 기자

두 번째는 김정욱 신부의 구속. 김성환 신부는 김정욱 신부의 구속을 보면서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괴로웠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이 시작한 일에 동료가 구속되다니……. 죄책감과 미안함이 밀려들었다. 김성환 신부는 강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바로 그때였다고 했다.

이영찬 신부는 처음 연행됐을 때를 떠올렸다. 철컥, 철컥, 철컥……. 쇠문을 3개나 지나야 열리는 방. "이게 뭔가…….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온갖 생각이 다 들어 복잡한 심경이었지만, 그 다음 연행부터는 너무 편안해서 스스로에게 놀랐다고 하며 웃었다.

이영찬 신부는 외적으로, 심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생활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전쟁터 야전생활과 같은 불안정한 상황, 특히 구럼비 폭파가 시작될 즈음 마을에 매일 울렸던 비상 사이렌 소리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공사를 막기 위해 항의하고, 레미콘에 올라가는데 정작 나는 잡아가지 않고 주변의 다른 활동가를 연행해 갔다. 경찰의 의도였을지 모르지만, 정확히 먹혀들었고 심리적으로 너무 큰 압박이었다."(박도현 수사)


너무 많이 연행돼 나중에는 스스로 민망했다는 박도현 수사는 "그동안 함께하고, 서로 마음을 아는 이들이 옆에서 연행되는 것. 그것을 바라봐야 하는 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다"면서 "특히 양윤모 씨와 마을 주민 김미량 씨가 연행될 때,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느끼던 사람으로서 견디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다만 이 불의 앞에 버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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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회 김정욱 신부 ⓒ한수진 기자

"구속 당시, 함께 구럼비에 들어갔던 이들이 한 사람씩 사라지고 나 혼자 남았을 때,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의 두려움……. 버텨야 했고, 버티기로 했다. 처음이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풀려난 후였다. 나오자마자 강정마을에서 부활 미사를 집전했다. 언제나처럼 공사를 막아야 했지만 이미 구속이 어떤 것인지 겪은 나는 두려움을 갖게 됐다. 사업장 앞으로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상황, 누구한테 표현할 수도 없는 마음…….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나에겐 가장 힘든 일이었다."(김정욱 신부)


김정욱 신부는 "우리의 목적은 구속이 아니므로" 앞으로 누구도 구속되지 않기를 늘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구속까지 되는 상황은 자신의 양심을 표현하는 중에 생길 수도 있지만, 개인의 저항을 알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강정마을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영찬 신부는 처음부터 단 하나의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이 불의한 정권과 공권력 앞에 버티고 서 있어야 한다는 것. 매일 같은 시간에 미사를 하고, 그 시간만이라도 공사를 지연시키고,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하는 것, 그렇게 강정마을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연대하고 또 연대하라 
"왜 거기에 앉아 있느냐"고 묻거든


"악의 세력도 연대한다. 더 철저히……. 악이 비롯되는 근본과 그 연결 고리를 제대로 보고 깨달아야 한다. 특히 신앙인들은 그러해야 한다."(이영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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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6일 구럼비 바위 첫 폭파가 이뤄졌다. 폭파를 막기 위해 구럼비 바위로 들어간 김성환 신부가 경찰에 의해 끌려 나오고 있다. ⓒ정현진 기자



김정욱 신부는 "누군가 '왜 그 자리에 앉아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스스로도 늘 품고 있는 질문이고, 평화, 인권, 환경, 국가폭력 등 여러 문제가 답이 될 수 있을 테지만, 이 질문은 정해진 답이 없는 열린 질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그러한 질문에 각자가 어떤 답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대답이 종결점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강정마을은 '지금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도록 우리에게 도전하는 장소다. 국가의 역할, 인권, 평화가 무엇인지 모든 이들에게 생각하도록 촉구하고 도전하는 공간이 바로 '강정마을'이며, 그 답은 항상 진보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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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럼비 바위에서 기도하는 박도현 수사 ⓒ'구럼비야 사랑해' 카페, 진달래산천


무엇이 우리를 강정으로 이끄는가
아픔이 힘이 되는 역설의 공간, 강정마을


사람이라면 갈등과 고뇌를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잠시 강정마을을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와 머무르는 까닭에 대해 물었다. 국가 공권력에 대한 분노, 무력감을 넘어 기쁨이 되는 그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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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회 박도현 수사 ⓒ한수진 기자

"사람들의 아픔, 그것이 나를 이끄는 힘이다. 돌아보면 사람들의 아픔을 봤던 순간, 그들과 함께했던 순간에 나는 가장 큰 힘을 받았던 것 같다. 도전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나에게 비춰주는 '빛'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다."(박도현 수사)


이영찬 신부는 "광야의 삶을 살았던 세례자 요한, 바오로 사도, 예수님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에게 위로의 원천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이며, 형제들과 활동가들의 격려"라고 답하며 "내가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주민들이 나에게 마음을 내주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김정욱 신부는 "처음에 강정에 왔을 때, 이곳의 문제가 여러 의미로 다가왔고, 강정의 초대는 곧 책임감이었다"면서 "그러나 지난 1년의 시간은 이제 '관계'가 되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사정이 내 눈에, 마음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히 큰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사람이 보이니까 이곳에 오는 것이고,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된 것"이라고 담담히 고백한다.

강정마을에는 '예수회 집'이라 불리는 공간이 있다. 작년 9월부터 지내던 집을 빌려 수시로 형제들이 들를 수 있도록 마련한 곳이다. 이제 10월 말이면 1년 계약이 끝나지만, 다시 계약을 할 예정이다. 강정마을 문제가 평화롭게 해결되는 날까지 이곳에 머물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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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마을 '예수회 집' 앞에서. (왼쪽부터) 박도현 수사, 이영찬 신부, 김성환 신부, 김정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정현진 기자  regina@catholicnews.co.kr

본 글은 휴심정 벗님매체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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