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매체
휴심정과 제휴를 맺은 자매매체의 뉴스를 전하는 마당입니다

중노릇 힘들다

2012. 07. 30
조회수 10151 추천수 0

20120730_1.JPG » 미니스커트, 한겨레 자료 사진.바야흐로 노출의 계절이다. 도시에 나가면 여기저기서 화장을 멋지게 하고 속살이 훤히 드러나는 옷과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산속에 사는 수행자가 어쩌다가 도시에 나갈 일이 있어 이런 여성들과 마주치는 것은 민망하고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도시 포교당에 사는 스님들은 산속에 사는 스님들보다 더 근기가 수승한 분들인지도 모르겠다.


성적욕망은 탐진치 중에서 탐욕에 해당한다. 이 성욕이라는 감각적 욕망은 아나함과를 얻어야 없어지게 된다고 한다. 일반 범부는 물론이거니와 예류과를 얻은 성인이나 일래과를 얻은 성인도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나함과나 아라한과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이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감각적 욕망을 멀리하고 육근을 단속하는 일은 무한한 인욕의 힘이 필요하다. 실로 수행자의 하루하루는 살얼음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수없이 찾아드는 번뇌는 한순간 방심한 수행자의 청정한 삶을 무너뜨린다. 부처님은 성욕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사십이장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성에 대한 욕망보다 강하고 큰 것은 없다. 이런 것이 하나이기에 망정이지 
만약 두 개가 있었다면 온 천하에 도를 닦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너의 마음을 믿으려 하지말라. 너의 마음은 믿을게 못된다. 
여인을 가까이 하지말라. 여인을 가까이 하면 재앙이 닥친다. 
아라한이 되었다면 그때 너의 마음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점일 것 이지만 사십이장경의 말씀대로라면 일반 수행자가 주지를 하거나 포교당을 운영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적어도 아나함이나 아라한이 되고 나서야 포교를 할 수 있고 여인에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디가니까야의 대반열반경에는 수행자가 여인을 만났을 때 처신하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이 부분은 앞뒤의 문맥과 상관없이 갑자기 아난다존자가 묻는 것으로 나타난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어떻게 여인을 대처해야 합니까?"
"아난다여, 쳐다보지 말라."
"세존이시여, 쳐다보게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아난다여, 말하지 말라."
"세존이시여, 말을 하게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아난다여, 마음챙김을 확립해야 한다."


난다가 3번 묻고 부처님이 3번 대답하는 것으로 끝나는 이 질문은 그야말로 갑자기 나타나는 대화이다. 三界의 道師이시며 四生의 慈父이신 부처님도 여인을 대처하는 방법에는 뾰쪽한 수가 없나보다. 첫 번째는 여인을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 탁발할 때에도 보시하는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현재 도시에 사는 스님들이 여인을 쳐다보지 않기란 불가능한 상황이다. 길거리에 나서면 부딪치는 것이 여성이고, TV에도, 인터넷에도 얼짱, 몸짱들이 넘치고 넘친다. 性을 상품화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신 수행자로 산다는 것은 더욱 힘들 수 밖에 없다. 조용할 것 같은 山寺에도 교통의 발달로 평일에도 관광객들이 넘친다. 만남을 피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여인에게 말을 하지말라는 가르침도 따르기 힘들다. 다 같이 저 언덕에 함께 가자는 대승불교의 이념에 동조하는 수행자들이 여인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면 그들의 책임을 다할 수 없다. 오히려 대승불교는 포교를 위해서나 신도들의 고민을 상담을 하기 위해서 먼저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대화하는 적극성과 상담의 기술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결국 현실을 감안한 최선의 방법은 세 번째 답변처럼 여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을 관찰하는 마음챙김의 확립뿐이다. 여인이 늙었거든 어머니 같이, 나이가 조금 많으면 누님같이 생각하고, 적으면 여동생 같이 생각하면서 대화를 하라고 부처님은 가르치신다.


옛날에 이 문제를 잘 아는 선배 수행자에게 물은적이 있다. 그 선배 수행자는 ‘종교인은 이중인격을 갖추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라는 아픈 대답을 들려주었다. 이중인격을 갖추어야 그나마 중노릇을 끝까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불행한가. 이중인격으로 살아가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였을까? 부처님은 욕망의 달콤함과 위험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가르치셨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욕망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아야한다.”


내면속에서 일어나는 욕망과 싸우다가 자포자기하고 이중인격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욕망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잘 관찰하라고 가르치신다. 인간은 이중인격이 아니라 다중인격이라 해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상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그 관찰 내용을 나눈다는 것은 그 자체가 法에 대한 관찰이고 法에 대한 대화가 된다. 자신을 관찰한다는 것을 교리적으로 말하면 5온에 대한 관찰하는 것이고 4성제를 관찰하는 것이며 드러내고 나눈다는 것은 8정도를 실천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자신의 법을 설명하면서 “와서 보라”고 자신 있게 설명한 것은 누구든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내면의 평화는 있는 것을 무시하거나 욕망을 적으로 삼고 그것과 싸우는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대화할 때 수행자들 각자는 홀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고 있다는 도반의식을 공유하게 된다. 이러한 나눔과 이해와 위로를 같이 할 때 중노릇이 좀 쉬워지지 않을까? 현실에서 중노릇이 힘든 이유는 난감함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도반들을 만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포커스> 조신



 

본 글은 휴심정 벗님매체인  <불교포커스 http://www.bulgyofocus.net>에 실린 것입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최근기사 목록

  • 비 그리고 아픈 손가락비 그리고 아픈 손가락

    휴심정 | 2017. 02. 27

    비 그리고 아픈 손가락 <법보신문> 한명철/농부 원래는 오늘이 콘크리트 타설하는 날이었습니다. 새벽에 현장에 갔더니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의아했습니다. 보통은 타설 인부 열 두엇 명에 콘크리트 펌프카가 위치를 잡고 있어야 하는...

  • 나이든 아내의 속사정

    휴심정 | 2015. 01. 27

    나이든 아내의 속사정  우리 시어머님은 설 쇠면 88세, 시아버님은 91세가 되신다. “부부가 장수한다고 다들 부러워한다.” 아버님이 밝게 웃으며 하시는 말씀이다. 그럼 옆에서 어머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옆에서 밥해주는 사람이 죽어나는 ...

  • 자유인 되기, 주인공 되기자유인 되기, 주인공 되기

    휴심정 | 2014. 07. 21

    숭배 지우기, 자유인‧주인공 되기강신주,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2014.07.02  <불교포커스> 정성운 기자 *강신주무문관 12칙은 암환주인(巖喚主人). 서암 사언 화상은 매일 자기 자신을 “주인공!”하고 부르고서는 ...

  • 소비없는 풍요로움소비없는 풍요로움

    휴심정 | 2014. 07. 01

     소비없는 풍요로움<불교포커스> 2014.06.29  최원형_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 소장 노트북은 주로 검거나 회색이던 시절, 오렌지 색 노트북은 첫눈에 인상적이었다. 첫눈에 반해서 내 것이 된 노트북을 쓴 지가 삼년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 당신에게 부족함이 있다면당신에게 부족함이 있다면

    휴심정 | 2013. 12. 11

    당신의 모자람이 곧 나의 부족함입니다 <불교포커스> 정명성  |  pialine@naver.com     보지 않은 것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본 것을 의심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당연했고요. 초승달은 초승달이고 그믐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