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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딸의 성추행 후유증

법륜 스님 2012. 09. 27
조회수 12173 추천수 0
딸이 고등학교 2학년인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바로 신고하고 치료를 받았어야 했지만 본인도 말하기 싫어하고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 보여서 그냥 덮어두고 말았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남자만 보면 거부반응을 보이고 머리카락을 뽑으며 자해를 합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도 먹는데 머리카락을 뽑는 증상은 여전합니다. 오랜 세월 습관이 돼서 겨울에는 가발을 씌우고 손을 테이프로 감아보기까지 했습니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약을 늘려봤는데 부작용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이렇게 된 게 다 엄마 탓이라고 합니다.


상처는 마음의 문제일뿐 기억 사라지도록 도와야
민감한 반응은 오히려 해 죄의식 가질 필요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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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음속에서부터 아이가 성추행을 당한 것이 큰 문제라는 생각을 버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성추행의 상처라는 게 밖에서 온 문제 같아 보여도 사실은 내 마음의 문제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껴안으면 사랑받았다고 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껴안으면 성추행을 당했다고 하잖아요. 몸의 상처는 치료를 받고 시간이 지나면 치유가 됩니다. 마음에 남아 있는 기억이 문제인데, 엄마가 먼저 그것이 아무 일도 아닌 줄을 알고 아이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자꾸 ‘우리 아이가 성추행 당했으니 큰일이다. 이 일을 어쩌나!’하면서 걱정하면 엄마의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져서 아이는 그 일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기억하게 됩니다. “그때 많이 힘들었지? 하지만 그런 건 손에 난 상처 같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는 거니까 괜찮아. 큰일이 아니란다.” 이렇게 얘기해주고, 아이 스스로도 ‘저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라고 기도하게 도와주세요.

머리카락 뽑는 버릇은 무의식 세계에 초조함과 불안이 일어나서 그런 같은데 너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아이가 머리카락 뽑는 행동을 엄마가 못 견뎌 문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아예 머리를 깎고 다녀도 되고, 가발을 쓰고 다니면 또 어때요. 안 생각을 넓게 하면 머리숱 같은 건 별 문제 아니니까 너무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병원에 가서 상담하고 치료를 받아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엄마가 머리카락 뽑는 것을 문제 삼는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엄마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난리 피우는 게 더 문제에요.

그리고 딸에게 죄의식을 느낄 필요 없습니다. 아이를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죄의식을 가지면 안 됩니다. 내가 잘못해서 아이가 저렇게 됐다고 후회하는 마음은 수행이 아닙니다. 참회를 하라는 건 나로 인해 생긴 일이니까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해도 ‘그래, 내가 부족해서 네가 고생을 하는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내라는 거지 후회하고 자책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꾸 문제를 삼으면 삼을수록 상처가 더 커집니다. 가해 남성들에 대해서는 물론 사회적으로 엄격하게 제재를 가해야 하겠지만, 피해 당사자는 별일 아니라는 의식을 가져야 상처가 치유됩니다. 바깥으로는 강력하게 처벌을 하되 내적으로는 별일 아닌 줄을 깨달아야 해요. 마음에 남은 상처일 뿐이지 사실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자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법(諸法)이 공(空)한 이치입니다. 제법이 공한 줄을 알아 내 몸은 누가 더럽힐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치면 피해를 입을 수가 없어요. 피해도 상처도 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 가해 남성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내 상처가 없어집니다. 사실 그 단계까지 가야 완전한 상처 치유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늘 화목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이성에 대한 거부반응이 차차 없어지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제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불가항력적으로 나한테 닥친 성추행 사건이 제1의 화살입니다. 그 사건은 그것으로 이미 끝나버렸는데 그것을 상처로 삼아서 제2, 제3의 문제를 계속 일을 일으키면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내 운명이 돼버리고 마는 겁니다. 이런 제1의 화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사회변화라면, 설령 제1의 화살을 맞았더라도 제2, 제3의 화살이 맞지 않도록 하는 게 내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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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
1988년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는 보살의 삶을 서원하고, 정토회를 설립했다. 기아·질병·문맹퇴치운동과 인권·평화·통일·생태환경운동에 앞장서는 실천하는 보살로서 2000년 만해상을, 2002년에 라몬 막사이사이상을, 2007년엔 민족화해상을 수상했다.
이메일 : book@jungt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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