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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고치는 게 아니라 안 걸리게 하는 게 명의

임락경 목사 2011. 05. 30
조회수 13134 추천수 2

용왕 병은 산 음식 못 먹고 바다 음식만 먹은 탓
당뇨병엔 흰쌀밥 놀부음식보다 잡곡밥 흥부음식

 

먼저 전해들은 이야기이다. 어느 집안에 의사 삼형제가 있었다. 삼형제 중 셋째가 병을 제일 잘 고친다고 한다. 그는 모든 병원에서 못 고친다고 포기한 환자들까지도 만나면 다 고쳐낸다. 그의 소문이 이웃마을, 이웃 지방까지 퍼지면서 병원에 줄 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입원할 수도 없을만큼 휴일 없이 바쁜 의사였다.

그러나 그 소문난 셋째 의사가 항상 하는 말은 ‘나보다는 우리 둘째형님이 더 훌륭한 의사고, 큰형님은 더 훌륭합니다.’ 라는 것이다. 그의 둘째형님은 병이 나면 금방 고쳐내기 때문에 환자도 보호자도 이웃도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큰형님은 병이 나지 않도록 조처하기 때문에 본인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셋째 의사동생이 항상 하는 말은 겸손이 아니고 실제로 형들이 훌륭한 의사였던 것이다.

 

소문난 막내보다 티 안나는 큰형님이 훌륭한 의사인 이유

 

나 또한 이번 기회에 삼형제의 큰형님처럼 병이 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을까 한다. 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처음부터 끝까지 학술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검증할만한 근거도 없다. 내 글을 읽으신 의학계나 한의학, 식품업계서 보면 엉터리이다.

트집 잡아 문제 삼지 말고 즉시즉시 충고하고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또 충고할 가치가 없으면 탓하지 말고 그냥 돌팔이가 하는 이야기라고 기분 좋게 웃어넘기시기 바란다. 무식한 촌 농부의 글이라 두서가 없다. 개가 짖는다고 같이 짖으면 미친개 된다.


질병의 역사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이전에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은 없었다. 이런 말하면 빨리 반박이 있을 줄 안다. 심봉사 있었지 않느냐고. 심봉사는 원래 심봉사가 아니었다. 원래 학규였는데, 학규였을 때는 봉사가 아니었고, 부자로 잘 살다가 중간에 눈이 멀었다고 소설에 쓰여 있다. 심학규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 아니고 부자로 잘 살다가 장님이 된 것이다.

또 조선시대에도 부잣집에는 더러 뇌성마비환자들이 안방에 있었다. 그 아이는 이웃집에서도 모르고 그 집의 종도 모른다. 부자 집 안방은 친척만이 드나들고 부자 집 골방은 사촌들도 출입금지다. 그곳에 뇌성마비아이들이 갇혀 살고 있었다. 조선시대 부잣집에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이 있었고 가난한 집에는 없었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전부다.

물론 조선시대 이전에 바보 온달이 있었다. 그러나 온달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재능이 뛰어난 인재였으나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던 것을 평강공주가 내조 잘해서 장군으로 진급시킨 역사다. 내려오는 말에 미련한 데는 약이 없다고 한다. 혹시 미련한 아이 있는 이들 있으면 병원가지 말고 약 쓰지 마시기 바란다.

 

부잣집과 가난한 집의 차이


일제 때는 문둥병이 많았다. 문둥병은 ‘나병’이 되었다가 지금은 ‘한센스병’이다. 부르는 이름만 다르지 모두가 같은 병이다. 지금은 걱정할 것 없다. 발병하면 항라제 맞으면 금방 고쳐진다고 한다. 나병환자들 모여 사는 곳에 가보면 내 나이가 젊은 나이다. 앞으로는 염려할 병이 아니다.


8․15 이후에는 폐결핵환자들이 많았다. 폐결핵환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각 면단위지역까지 보건소가 생겼다. 그러다가 70년대에 폐결핵환자가 없어졌다. 보건소에서는 할 일이 없어지니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엉뚱하게 풍선장사도 하고 남자들만 만나면 내시 만드는 내시제작소가 되었다. 내시 만드느라 예비군훈련장까지 쫓아다녔다.

이때 나는 산아제한을 반대했다. 우리나라에 산아제한하면 안 된다고 떠들었다. 지금처럼 글도 쓰고 방송도 하고 했다면 나는 국가시책반대죄로 고생 많이 했을 것이다. 그때는 내 위치가 있든 말든 하는 촌놈이었다. 그때 내가 산아제한을 반대한 것은 무슨 예언가라서 한 것이 아니었고, 독일에서는 어린애를 낳으면 정부에서 장려금을 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디서나 주장했다. 우리나라에 산아제한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인구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 내 대응은 외국이민 보내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2006년) 미국에 가보니 우리나라에서 70년대에 이민만 많이 보냈으면 조금 과장해서 LA가 아닌 켈리포니아주를 모두 점령해서 한국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고 본다.


80년대에는 뇌성마비, 정신박약, 관절염 환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모여 사는 이들이다. 우리 집에 이들이 80년대부터 모여 살고 있는데, 병명이 정박아다. 나이가 40세가 되어도 병명은 정박아다. 이제는 정박어른이고 정박할아버지여야 한다.

 

아토피 서울 강남엔 100%, 시골 마을 1%


90년대는 암환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엇이나 외국에 지면 못 견딘다. 반드시 1위를 해야 한다. 늦게 자는 것도 그렇고 암환자 많기로도 앞서가고 있다. 내가 속해 있는 정농회(正農會)에서 번역한 책이 있다. 이 책을 쓴 이는 일본의 왼 별(星)성을 지닌 의사인데, 그 책을 보면 일본에서 2015년에는 암 사망률이 50%라고 예상했다. 우리나라는 2006년 9월에 발표한 것이 27.5%였다. 일본이 앞섰는지 우리나라가 앞섰는지 암환자 많기로 앞을 달리고 있다. 암환자들 별것 아니다.

우리 집에서 30명 식구가 30년 가까이 살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암환자 없이 산다. 또 정농회 열심히 활동하면서 바른 농사짓는 이들도 30년 동안 암환자 안 나왔다. 바른 농사와 바른 식생활이 암 발생을 억제한다고 본다.


2000년도에는 수술환자들 중 1위가 치질이었다. 치질은 주로 변비만 고치면 된다. 한 가지 다른 요인은 주로 여인들이 불량품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면서 생긴 치질이나 자궁병도 있다.


2003년도에는 제일 심각한 병이 아토피였다. 아토피는 통계적으로 대도시 병이다. 서울 한강 남쪽인 부자동네서는 100%다. 그곳에 강의하러 가서 자기 집에 아토피환자 있는 사람 파악해보면 100%다. 4대문 안에는 50%, 4대문 밖에는 30%, 시 외각 지역에서는 20%, 소도시에서는 10%, 우리 마을인 광덕리에서는 1%다. 그도 서울서 이사 들어온 아이다. 이마저 지금은 없다.

아토피에 대해서 다른 잡지사의 월간지에 연재한 바가 있다. 그때 아토피 연구하느라고 그리스말을 배웠다. 그리스말을 유창하게 배운 것이 아니라 아토피와 알레르기란 단어만 배웠다. 그리스말로 ‘아’라는 말이 ‘모른다’, ‘궁금하다’는 뜻이다. 알레르기란 ‘뭔지 모르겠다’, ‘궁금하다’는 말이고, ‘토프’는 ‘장소’를 말한다. ‘어디인지 궁금하다’, ‘어딘지 모르겠다’, 겨드랑이인지 목인지 사타구니인지 궁금하다는 말이다. 그리스말은 어려우니 내가 우리말로 번역을 했다. 아토피는 아이가 흙을 피하여 생긴 병이다. 결국은 못 고치고 못 고친 아토피(兒土避)를 흙으로 고쳤다. 여기까지가 질병의 역사이다.


백혈병과 당뇨병


다시 조선시대로 가자. 옛날 부잣집에는 주로 삼대 이상 된 독자들이 있었다. 삼대 독자는 가난한 집에 있지 않고 부잣집에 있었다. 부잣집 삼대 독자는 주로 10살 넘으면 죽는다. 이유인즉 이렇다. 어릴 적부터, 아니 어머니가 임신할 적부터 흰쌀밥 먹고 고기만 먹고 땀을 안 흘리면 백혈구 양성이 안 된다. 백혈구 양성 안 되면 백혈병 걸린다. 백혈병 걸려 10살 되면 죽는다.

왜 10살인가? 10살 미만에 병이 나거나 다치거나 죽거나 하는 것은 모두가 부모책임이다. 만약에 염라대왕이 실수로 백혈병 아이를 10살 미만에 데려가면 이 아이가 염라대왕과 재판석 앞에서 항의를 빗발치게 할 것이다. 왜 부모님 잘못인데 나를 데려왔느냐고, 당신 염라대왕을 헌법재판소에 상소해서 탄핵시키겠노라고 꼬치꼬치 따지게 되어 염라대왕의 다른 재판을 못할 정도로 마비될 뿐만 아니라 또 탄핵도 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염라국에서도 자기책임 회피하느라고 10살 넘어서야 백혈병 걸린 아이를 데려간다.

 

명 짧은 아이, 교회가 아닌 절로 데려가야 하는 까닭

 

이때, 9살 쯤 될 무렵 스님이 나타나서 일러준다. 이 아이가 명이 짧겠다고. 아이를 살리는 방법은 절로 데리고 가야한다. 교회로 데리고 가거나 기도원으로 데리고 가면 안 된다. 그곳에서는 고기를 먹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너무들 하신다.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젊은 스님들 죽어 화장터에 오신 일도 없고, 중풍 걸려 지팡이 집고 절룩거린 스님들 못 보았다. 애꾸도 장님도 귀머거리도 없다. 다만 흰머리 날릴까봐 머리를 깎고 다니신다.

그 비결은 아주 간단하다. 부처님이 80살 넘도록 건강하게 사셨다. 이상한 것은 부처님과 주지 스님 식성이 똑같다. 주지 스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부처님이 좋아하신다. 한 가지 다른 것은 주지 스님께서 부처님 식성에 맞춘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주지 스님 식성에 맞추신 것뿐이다.

이것을 내가 어느 큰 사찰 주지스님께 물어보았더니 맞는 말이라고 하셨다. 그때 내가 틀린 것 한 가지가 있다고 했다. 부처님은 백미만 드시고 그것도 옛날에는 밥을 해서 드셨는데 요즈음은 그냥 흰쌀로 직접 드린다. 주지스님은 기어코 잡곡만 드신다. 이것이 다르다. 백혈병 당뇨병 절에 가서 살면 다 고쳐진다.

 

이제는 당뇨병에 대해서 원인과 치료법을 말하고자 한다. 내가 좋아했던 음식, 즐겨했던 음식 끊고 싫은 음식 먹으면 고쳐진다. 바다 용왕이 병이 나면 산토끼 간으로 고치면 된다. 용왕의 병은 바다에 있는 고급음식인 해진미(海珍味)만 많이 먹고 산에 있는 산진미(山珍味)를 안 먹어서 생긴 병이다. 그러므로 산에 있는 짐승 간이면 고쳐진다. 꼭 간이 아니고도 산에 있는 산삼이든 사삼이든 도라지든 산에 있는 음식을 먹으면 용왕의 병은 고쳐진다. 용왕의 병을 진단해보면 눈이 어두워진 것 같다.

시력이 안 좋고 안경 낀 사람들은 아무 간이든 짐승 간을 먹으면 좋다. 안경 끼고 다니는 이들 통계를 내보면 짐승 간을 먹어 본 사람이 드물다. 사람 인(人) 변에 뫼산(山)자 하면 신선 선(仙)자이다. 신선들은 병이 안 난다. 그들은 늙어서도 귀도 밝고, 눈도 밝고, 이도 튼튼하고, 걸음걸이도 빠르다. 요즈음은 애들이 안경 끼고 치과가고 다리 아프고 보청기 찾는다.


신선들이 먹는 음식이 산해진미(山海珍味)다. 즉 산진미 해진미다. 바다에서 오래 산다는 물고기는 거북이다. 거북이는 3천년 산다고 한다. 육지에서 오래 사는 동물로는 학을 말한다. 천년학이라고 한다. 거북이와 학이 오래 살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산진미 해진미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고 살기 때문이다.

 

심봉사는 심청이 덕에 눈을 뜬 게 아니다


당뇨병이 있어서 혈당이 오르면 병원까지 가서 혈당을 재볼 필요 없다. 자가진단을 해보자. 당뇨병은 목이 마르고 시력이 좋지 않고 애를 못 낳는다. 물론 성욕도 없다. 당뇨병이 의심되면 심청전을 생각해보자. 심봉사가 눈이 밝아진 것은 딸이 인당수에 빠져 죽어서 눈을 뜬 것이 아니다. 딸이 물에 빠져죽으면 아버지는 눈이 더 어두워져야 한다. 이것은 수영선수 부모님은 눈이 다 밝아야 맞는 말이다.


더 궁금한 것은 공양미 300석을 절에 바치고 아버지가 눈이 밝아졌다는 이야기이다. 어릴 적부터 궁금한 이야기였다. 강의 차 무등산에 있는 큰 사찰에 갔다. 강의 도중 주지 스님께 공양미 300석을 절에 바치면 부모님이 눈을 뜨느냐고 여쭈었더니 못 뜬다고 하셨다. 그것도 단 둘이 있는 장소도 아니고 전남의 일간지 신문에 참가자 모집을 해서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듣는 가운데 주지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심학규가 눈을 뜬 것은 공양미 삼백 석이나 심청이가 인당수에 다이빙해서 나았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이렇게 의학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맞지 않으나 혹 종교적으로는 맞는 말이 아닌가 하고 확인했더니 역시 종교적으로도 맞지 않는 말이다. 내가 확인하기로는 뺑덕어미가 심봉사를 흰쌀밥에 고기를 먹였다면 당뇨병 못 고쳤다. 멀쩡한 심학규가 살다가 시력을 잃은 것은 당뇨병 때문이다. 당뇨병 환자들이여, 뺑덕어미 도망간 심봉사 생활만 하면 모두 고쳐질 것이다.

 

당뇨나 고혈압 같은 병은 욕심 먼저 고쳐야


그래도 혈당 수치가 떨어지지 않으면 이제는 우리 옛 선조들의 이야기인 흥부놀부로 가자. 놀부는 흰쌀밥에 고기 먹고 땀을 흘리지 않아서 당뇨병이 있어 성욕도 없고 아들딸이 없고, 흥부는 잡곡 먹고 채소 먹고 땀을 많이 흘려 아들딸이 16명이다.


당뇨병환자들은 음식을 보고 놀부음식인지 흥부음식인지 구별해서 흥부음식으로 바꾸면 된다. 흰쌀밥은 놀부, 불고기는 놀부, 잡곡밥은 흥부, 시래기국은 흥부…, 이것저것 나열할 것 없이 스스로 알아서 흥부음식을 골라 먹으면 된다.

 

옛 어른들은 병이 나면 관직에서 물러나 산으로 들어가서 마음을 수양하고 난 후에라야 몸 치료를 시작했다. 황제내경에 보면 당뇨나 고혈압 같은 병은 욕심이라는 마음에서 생긴 병이라고 씌어 있다. 당뇨의 증상은 다뇨(多尿), 다음(多飮), 다식(多食) 세 가지 특징이 있다.


모든 음식엔 몸에 필요한 영양분도 있지만 독도 있다. 인슐린이 안 나오거나 나와도 제대로 기능을 못하면 음식물이 몸 안에 흡수가 안 되고 그 독을 신장이 걸러 오줌으로 내보내려 하니 ‘다뇨’이다. 몸이 움직이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니 먹어도 먹어도 계속 배가 고파 ‘다식’이다. 독이 혈관에 고여 피는 끈적끈적하고 탁하며 췌장에 불이 나고 타들어가니 불 끄려면 ‘다음’이다.


이러한 몸은 사람 꼴을 지니고 살지만 인계(人界)가 아닌 아귀계(餓鬼界)에 산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마음의 욕심을 버리자. 돈이나 명예만 욕심이 아니다. 아는 것도 지나치면 욕심이고, 사랑도 지나치면 병이다.

 

쫄딱 망한 놀부, 흥부가 덜컥 도와주면 안돼


당뇨는 몸, 머리, 마음이 균형을 이루면 완치는 안 되더라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머리 쓰는 만큼 땀 흘려 일하고 나누고 베풀고 살아보자. 놀부가 욕심 부려 벌 받아 쫄딱 망했을 때 흥부가 도와주면 안 된다. 놀부는 땀 흘려 밭 갈고 씨 뿌리면서 잡곡밥 먹고 겸손한 마음으로 인생 다시 살아야 병 고치고 자식도 낳고 잘 살 수 있다.


당뇨병 때문에 혈당수치가 너무 많이 오르면 그때는 급히 병원에 가서 인슐린 주사 맞고 혈당수치를 떨어트려야 한다. 그 다음, 음식 먹기 전에 재보고 먹고 나서 재보고 어느 음식을 먹으면 혈당수치가 오르는지 자기가 먹어보고 판단하면 된다. 과일도 혈당은 오르지만 얼마 지나면 금방 내려간다. 오래가는 것은 설탕보다 고기이다. 또 빵이나 과자도 오르고, 이 외에 말 못할 식품들이 많다. 그것은 본인이 알아서 먹고 안 먹고 결정할 일이다. 주로 본인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당뇨병이 오래 계속되면 결국은 신장투석을 해야 한다. 병원에서 피를 걸러내야 한다. 이때는 신장투석 이후도 음식을 잘 골라 먹고 이뇨제가 될 수 있는 음식들을 먹고 자연식을 한다면 신장 투석하는 횟수가 적어져 20∼30일까지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 병원에서 정해 놓은 날짜에 가는 것보다 내가 필요한 날짜에 병원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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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락경 목사
개신교 목사. ‘맨발의 성자’로 불렸던 이현필(1913~64)과 류영모의 제자인 영성 수도자이다. 30년째 중증장애인들을 돌보는 사회복지가이자 유기농 농부 겸 민간요법계의 재야 의사. 군인으로 복무했던 강원도 화천에 터를 잡아 1980년부터 시골교회를 꾸려가면서 중증장애인 등 30여명을 돌 보는 한편 유기농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igolzzi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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