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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때 우연히 들은 ‘인본의 종교’란 말씀이 뇌를 때려”

이길우 2016. 03. 28
조회수 11492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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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불교 철학박사 석법성 스님 

출가승은 오계(五戒)를 지켜야 한다. 살생과 도둑질, 간음과 헛된 말을 하지 않아야 하고, 또 술을 마시면 안 된다. 부처의 가르침이다. 부처가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부처는 무려 35가지의 이유로 제자들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다. ‘제2의 석가모니’로 추앙되는 용수보살(150~250년께)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술을 마시면 현세의 재물이 헛되이 고갈되고, 많은 질병의 문(門)을 열게 되고, 싸움의 근본이 되며, 나쁜 소문으로 사람들의 존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감춰야 할 일을 모두 말하게 되고, 술이 깨면 수치심으로 근심하게 되며, 악당들과 작당한다는 등 지금 들어도 누구나 수긍할 만한 이유들이다.

용수보살이 쓴 <대지도론>(大智度論)은 대승불교의 불법을 집대성한 대표적인 논서이다. 불교의 다양한 학술과 설화를 정리한 것은 물론 인도의 사상과 문화, 지리도 소개한 대작으로 꼽힌다. 본래는 1천여권이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구마라집(344~413)이 한문으로 번역한 100권만 남아 있다.

비구니인 석법성(사진) 스님은 지난 10년간 ‘불교대백과전서’로 불리는 <대지도론>(운주사 펴냄)의 번역에 몰두해 최근 출간했다.

신의주 최초 교회 세운 기독교집안
할머니·어머니 영향 불교에 심취
30대 초반 출가해 대만 보인대 유학

용수보살 정리한 대승불교 대표 논서
‘대지도론’ 10년에 걸쳐 번역해 출간
“대중도 이해하기 쉬운 불교 길라잡이”

스님은 애초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신의주에서 최초로 교회를 설립했다. 한국전쟁 통에 집안이 월남했다. 대지주의 집안이라고 자아비판에 시달리다가 피난온 것이다. 아버지는 4대 독자였다. 할머니가 기독교 집안의 며느리임에도 몰래 집 근처 절에 가서 기도를 한 끝에 얻은 아들이었다.

출가 전 스님은 공부 잘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친구와 함께 교회에 나가 성경을 공부하다가 어머니의 지인으로부터 “불교는 신본(神本)이 아닌 인본(人本)주의의 종교”라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인본이라는 말이 저의 뇌리를 때렸어요. 그래서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지요.”

노래를 잘했던 그는 서울 조계사의 찬불가 합창단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합창 연습을 하며 스님으로부터 금강경을 배웠다. “법문을 들으며 놀라운 환희심에 빠졌어요. 그 환희심은 무려 1년이나 계속됐죠.”

법문과 공부를 통해 법열(法悅)의 경지를 체험한 그는 출가를 결심했다. 7남매의 큰딸인 그가 출가한다고 하자 부모와 가족들은 심한 반대를 했다. 5년간 가족들과 밀고 당기는 갈등 끝에 30대 초반 그는 서울 보현정사에서 출가했다. 행자 시절 그를 가르치던 노스님은 “너는 아는 게 너무 많아. 이제는 버려야 해”라고 말하며 공부하지 말고 일을 하라고 다그쳤다. 법명과 관련된 일화도 독특하다. “노스님께 법성(法性)을 법명으로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불교에서 법성은 ‘우주 만물의 본체’라는 뜻이거든요. 평소 고집이 세다는 것을 알고 있는 노스님은 흔쾌히 허락하셨어요.”

그는 공부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대만으로 유학을 갔다. 푸런(보인)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해선 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사무국장을 지냈고, <사망학>, <다음생을 바꾸는 49일간의 기도>, <불자가 알아야 할 기본 경전> 등 10여권의 책을 펴냈다.

“용수보살이 불교 사상을 정리했기에, 불교는 서양의 어느 정신체계에도 뒤지지 않는 뛰어난 종교이자 철학으로 자리잡게 됐어요.”

그는 용수보살을 ‘대승불교의 아버지’라고 평가한다. ‘용수보살은 브라만 출신의 총명한 청년이었다. 그는 친구 세 명과 몸을 숨기는 둔갑술을 익혀, 왕국에 들어가 궁중의 미녀들을 범해 임신시켰다. 이성에 대한 욕망과 쾌락 탓이다. 왕은 범인을 잡기 위해 땅 위에 고운 모래를 뿌리게 하고, 그들의 발자국이 모래에 새겨지자, 창칼로 공중을 찔렀다. 친구 세 명은 그 자리에서 모두 죽고, 간신히 궁중을 탈출한 용수는 감각적인 쾌락에 회의를 품고, 모든 욕망이 번뇌와 고통의 근원임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했다. 출가한 용수는 90일 만에 기존의 불경을 다 섭렵하고 나서 설산으로 들어가, 대승경전을 얻게 되었다. 용수는 그 경전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경전을 두루 구했다. 대룡보살을 따라서 바닷속 용궁으로 들어가 90여일에 걸쳐 불법의 진리를 체득하고 남인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대승의 이치와 남을 이롭게 하는 길, 태어남도 없고 죽어감도 없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가르쳤다.’

용수보살로부터 시작된 불교 종파만 8개로, 그의 사상은 천태종과 화엄종 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대지도론’은 소승불교의 교설을 인용하면서도 대승불교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반야’(般若·지혜)와 ‘공’(空) 사상을 강조합니다. 불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도 불교를 이해하기 쉬운 길라잡이입니다.”

석법성 스님은 “생과 사를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절대적인 무소유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해야 한다”며 “현자나 성자의 삶과 죽음의 지혜를 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미련을 갖고 있지 않았고, 일체 정욕을 해탈했고, 물질적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즐겁게 살았다”고 소개했다.

“이제는 책을 쓰는 것보다 내면 수행에 힘쓸 작정”이라는 스님은 티베트 불교의 수행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겠다고 한다. “죽음은 무한한 생명의 시간 속으로, 오직 홀로 가는 새로운 여정입니다.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사후세계를 결정짓는 열쇠입니다. 오직 자신만의 길입니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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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우
아직도 깊은 산속 어딘가에 도인이 있다고 믿고 언젠가는 그런 스승을 모시고 살고 싶어한다. 이소룡에 반해 무예의 매력에 빠져 각종 전통 무술과 무예를 익히고 있고, 전국의 무술 고수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과 몸짓을 배우며 기록해왔다. 몸 수련을 통해 건강을 찾고 지키며 정신과 몸이 함께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한다. 한겨레신문 창간에 동참했고, 베이징 초대 특파원과 스포츠부장, 온라인 부국장을 거쳐 현재는 종교 담당 선임기자로 현장을 뛰고 있다.
이메일 :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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