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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공유한 또래 청소년들이 가장 좋은 멘토죠”

이길우 2016. 05. 20
조회수 11378 추천수 0
청소년 상담 전문가 김인숙 글라라 수녀

00558119801_20160520.JPG » 청소년 상담 전문가 김인숙 글라라 수녀.
열다섯에 가출한 소녀. 처음엔 친구 집에서 생활했다. 얼마 뒤 성매매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원룸을 얻었다. 30~40대 아저씨들을 상대로 ‘조건 만남’을 했다. ‘조건 사기’도 쳤다. 알고 지내던 남자들과 짜고 성매매한 남자를 협박했다. 폭행하고, 돈을 뜯어냈다. 돈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었다. 하루에 백만원을 쓰기도 했다. 본드를 흡입했다. 칼로 팔목을 긋기도 했다. 경찰에 잡혔다. 재판을 받았다. 

김인숙 글라라(59·[사진]) 수녀는 이 소녀에게 다가갔다.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마음이 통했다. 김 수녀는 이 소녀에게 또래 친구들을 위해 충고의 말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소녀는 편지 형식으로 답했다. “친구야! 아무리 돈이 필요해도 자기 몸을 아프게 하는 일은 안 했으면 좋겠다. 내 몸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상처라고 봐. 쉽게 유혹에 빠져 망가질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잊지 마.”
 
김 수녀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5동 천주교 살레시오여자수도회의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지오청소년센터에서 ‘6호 처분’을 받고 맡겨진 청소년들과 5년 동안 생활했다. 청소년들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게 됐다. “학교를 포기하면 안 돼, 가출하면 안 돼…, 이런 식상한 충고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들 스스로 방법을 찾길 바랐어요. 많은 대화를 통해 진정한 위로와 용기을 주고받았어요.”

법원이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12~18살)에게 1~5호 처분을 내리면 집으로 돌려보내지고, 7~10호 처분을 내리면 소년원 등 보호시설로 이송된다. 6호 처분은 그 경계인 셈이다. 6호 처분을 받은 청소년들은 대부분 보호자가 없다. 돌아갈 집도 없다. 그들은 6개월간 민간시설에 위탁된다.

Q1 (3).jpg » SBS 뉴스 장면 캡쳐.
6호 처분을  받은 또 다른 소녀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정신질환까지 앓고 있었다. 술만 마시면 몽둥이와 죽도로 사정없이 소녀를 폭행했다. 두려움의 대상인 아버지, 그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던 소녀는 학교에서 패거리를 만들었다. 다른 학생을 때리고 돈을 뜯어냈다. 친구들에게 아버지에게 당한 폭력을 그대로 썼다. 가출 2년, 떠돌던 소녀는 경찰에 붙잡혔다. 세상이 싫고 사람이 싫었다. 그 소녀는 이런 충고를 했다. “친구야! 나도 욕하고 때리는 아빠를 피해 집을 나왔어.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나는 더 나빠졌어. 혼자 해결하지 말고 주위에 도움을 청해. 잠시 친척집에 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아는 사람 연락처를 꼭 가지고 다녀. 다급한 일이 생길지 모르거든. 스스로 더 이상 망가지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면 도움받을 수 있는 어른이나 기관이 있을 거야. 가출은 도망치는 길밖에 되지 않고, 더 큰 범죄로 이어지기 마련이야.”

한 소년은 재래시장통에 있는 무허가 불법시술소에 들어갔다. 장미, 나비, 리본 등 그림을 골랐다. 기계에 연결된 쇠꼬챙이에는 바늘 30여개가 뭉쳐 있다. 거기에 잉크를 찍어 문신할 부분을 계속 쑤신다. 오징어 구울 때 나는 냄새가 난다. 하루 세 시간씩 두 달을 걸려 팔에 문신을 했다. 문신은 중독이었다. 목과 허벅지, 심지어 손가락에도 그림과 글자를 새겼다. 집에서 직접 바늘에 먹물을 묻혀 문신하기도 했다. 문신은 뒷골목에서 효과를 봤다. “친구야! 나도 문신을 하고 후회를 많이 했어. 지워지지도 않아. 할 때보다 지우려면 열 배, 스무 배 비용도 많이 들고, 고통이 심해. 지워지는 문신은 절대 없어. 건전하게 살려고 해도 문신을 본 사장님들은 무조건 해고했어. 간신히 취직한 세차장에서는 문신을 했다는 약점을 잡아 싸게 부려먹는 곳이었지.”
 
x9788984319776.jpg » <괜찮아, 인생의 비를 일찍 맞았을 뿐이야>(휴 펴냄)김 수녀는 이들의 이야기를 <한겨레>의 수행치유 웹진 ‘휴심정’(김인숙 수녀의 또래멘토)에 연재했다. 그렇게 모은 24명의 이야기를 담아 최근 <괜찮아, 인생의 비를 일찍 맞았을 뿐이야>(휴 펴냄)를 출간했다.
김 수녀는 이 책을 일반 학생들이 꼭 봤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언젠가는 가출을 하거나 잘못된 길을 갈 수 있는 학생들이 먼저 비를 맞은 또래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 위기를 슬기롭게 해쳐 나갈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아이들은 어른들을 싫어해요. 이유는 좋은 어른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들이 만난 어른들은 대부분 자신을 이용하고, 때리는 나쁜 어른들이었어요.”

김 수녀가 특별히 청소년 보호에 열중하는 이유는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전남 목포,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상고에 차석으로 입학했지만, 포기하고 서울로 왔다. 어린 나이에 돈을 벌고 싶었지만,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다. 세상에 분노했다. 중졸의 학력, 어렵게 ‘사환’으로 취직했다. 한 직장 상사가 따뜻한 충고를 해주었다. “여기서 멈추기엔 아까운 나이예요.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 말아요.”

야간고를 마친 그는 26살에 수녀가 됐다. 주로 청소년 인성센터와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사회에 봉사했다. 비행 청소년들은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았다. “‘비행’이라는 딱지가 붙은 청소년들을 연민과 사랑으로 대하는 이유는 그들이 모두 ‘10대 인숙이’로 보이기 때문이죠. 그들이 실수를 되풀이하려 할 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어요.”

8년 만에 비로소 김 수녀에게 마음의 문을 연 소녀도 있다. “이제야 수녀님이 다른 어른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고마워요.” 취직한 소녀는 건강식품을 사들고 왔다. 그렇게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다.
김 수녀는 청소년들에게 6호 처분을 내린 판사들의 사랑에 놀랐다고 말한다. “자신이 재판한 아이를 끝까지 챙기는 판사님들입니다. 2011년부터 센터에 정기적으로 와서 화장실 청소와 텃밭일 등 가장 낮은 일을 티 내지 않고 하십니다.”

한 판사가 청소년들과 밥을 먹으며 들려준 얘기가 인상적이다. “인간은 모두 다 한 번씩 인생에서 비를 맞습니다. 그 비를 여러분은 10대 때 맞았습니다. 10대 때 맞았으니까 20대, 30대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나는 비를 빨리 맞았구나. 그러니 앞으로 내 인생을 잘 준비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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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우
아직도 깊은 산속 어딘가에 도인이 있다고 믿고 언젠가는 그런 스승을 모시고 살고 싶어한다. 이소룡에 반해 무예의 매력에 빠져 각종 전통 무술과 무예를 익히고 있고, 전국의 무술 고수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과 몸짓을 배우며 기록해왔다. 몸 수련을 통해 건강을 찾고 지키며 정신과 몸이 함께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한다. 한겨레신문 창간에 동참했고, 베이징 초대 특파원과 스포츠부장, 온라인 부국장을 거쳐 현재는 종교 담당 선임기자로 현장을 뛰고 있다.
이메일 :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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