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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더 큰나

현장스님 2018. 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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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덴마크에서 ‘미아’ 라는 예쁜 여학생이 부모님과 함께 대원사에 내려와 하루 쉬어 갔습니다. 미아는 한국 아이인데 부모님은 덴마크 분들이었습니다. 다섯 살때 입양 된 것입니다. 미아가 이제 어엿한 아가씨가 되자 그리던 고국과 낳아주신 어머니를 뵈러 먼 길을 걸음 한 것이었어요. 조국의 산하에 다시 안긴 미아는 무척 행복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모국어를 모르는 미아가 낳아주신 어머니를 만나면 무슨 말을 나눌 수 있을지 이 일을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짠 해집니다.
 ‘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그 그리움을 잃어버린 삶의 벌판이란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것이겠습니까?
 저는 알뜰히 미아를 길러주고 지금도 늘 큰 사랑의 품으로 안아주는 미아의 양부모님들께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논어>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부모 없는 어린 아이를 내 아이처럼 거두어 키울 수 있는 이는 백리 안의  사람들을 다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내 아이와 남의 아이가 다르지 않다는, 그러니까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 매 순간 행복한 통합을 이루어 내는 사람은 이렇듯 따뜻하고 숭고한 힘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두 가지에 크게 집착해서 살아갑니다. 첫째는 가족이며, 둘째는 현세입니다. 자기 가족만 중요하고 남의 가족의 소중함은 깊이 생각하지 못합니다.
현세의 삶만 알지 전생과 내세의 삶은 생각할 줄 모릅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두 가지 집착에서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전생에 많은 가족들이 있었음을 알기 때문에 오늘 만나는 모든 이웃들이 내 어머니며 내 자식이라 생각하며 친절과 자비심을 키워갑니다. 내 아이 뿐만 아니라 남의 아이 모습이 바르게 보이려면 ‘나’라는 땅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아야 합니다. <논어>에도 ‘군자는 자기 자식을 너무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라고 했지요.‘나’ 라는 땅에서 한 걸음 물러나 보면 제대로 보이는 것이 어디 자식 뿐 이겠습니까?
 중국 강소성 양자강 강가에 ‘금산사’ 라는 아름다운 절이 있지요. 청나라 건륭황제가 이 절을 참배하고 나서 양자강을 바라보며 한 노스님과 차를 마시며 대담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황제가 물었습니다.
 "이 절에서 몇 해나 사셨습니까?" 
 "몇 십 년이 지났습니다."
 "그렇다면 그 동안 저 강 위를 오가는 배를 몇 척이나 보았습니까?"
 "오직 두 척을 보았을 뿐입니다." 
 "어떤 배였습니까?"
 "한척은 이익을 쫒는 배이고 한척은 명예를 쫒는배였습니다. 오직 이 두 척의 배만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배를 타고 삶이라는 거친 강을 흘러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만약 이익과 명예만을 구하는 배 위에서 한가로이 한 생을 보낸다면 백 리는커녕 한 집도 행복하게 만들기가 힘겨울 것입니다. 이웃집 아이는 커녕 내 아이도 행복하게 만들기 어렵습니다."
 종교란 행복한 삶의 길입니다. 진정한 행복의 길을 모르는 이를 요즘 말버릇에 따르면 종맹(宗盲)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앞 날의 종맹은 성경이나 불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저 관계로서의 삶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다’ 라고 말입니다.
 미아를 길러준 미아의 양부모님은 미아 말고 다른 아이를 갖지 않았습니다. 혼인해서 함께 산지 스무 해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함께 차를 마시며 그 분들께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장님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혼인한지 서른 해가 되던 날 이 장님 부부는 기적처럼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부부는 처음으로 마주 바라 보았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러자 아내도 남편에게 인사했습니다.
 “그 동안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비로소 인사를 나누게 된 부부는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미아의 양부모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도 혼인한지 서른 해가 되면 이와 같은 인사를 나누게 되기를 빕니다.”
 누구에게나 세 가지 ‘나’가 있습니다. 첫 째는 ‘내가 생각하는 나’ 입니다. 둘 째는 ‘남이 생각하는 나’ 입니다. 셋 째는 ‘나도 모르는 나’ 입니다. 우리는 보통 내가 생각하는 나 또는 남이 생각하는 나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웃음을 웃을 때도 그렇고 옷을 입을 때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나는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나도 모르는 ‘나’ 에 눈먼 봉사인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나’ 이것은 관계로 목숨을 삼는 나인 것입니다. 관계로 목숨을 삼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나’ , ‘남이 생각하는 나’로 목숨을 삼을 때 우리 삶은 말할 수 없이 힘겨워지는 법입니다.
 ‘큰 태풍도 한갓 부평초 풀 끝에서 일어난다’는 장자의 말씀처럼  삶의 온갖 괴로움도 이 부평초 같은 ‘나’를 세우는 순간 생겨나는 것이지요.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49년을 잘못 살았음을 알았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가 혼인해서 아들 딸 낳고 이 일 저 일 두루 겪으며 한 평생을 꿈결처럼 보내기 일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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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님
아름다운 전남 보성 백제고찰 대원사 아실암에서 불자들을 맞고 있다. 대원사에 티벳박물관을 설립하여 티벳의 정신문화를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티베트불교와 부탄을 사랑한다.
이메일 : amita175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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