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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톨스토이

박기호 신부 2013. 09. 08
조회수 21864 추천수 1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나스냐 빨라냐  톨스토이 묘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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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중에서

 

작년에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어록으로 만든 훈화집 ‘니콜라오와의 대화’를 출판했을 때, 기회가 생기면 톨스토이의 유적지를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지난 달 8월 이동훈 신부와 둘이서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승용차로 2시간쯤 가면 구 소비에트 연방의 총포제조창으로 유명한 ‘툴라(Tulla)' 라는 큰 도시를 지나고, 이어 ‘나스냐 빨라냐’ 마을에 이릅니다. 이곳이 톨스토이의 고향이고 저택과 농장, 그리고 공동체로 이용했던 톨스토이의 궤적을 유적지로 보존하고 있는 '나스냐 빨라냐' 입니다. 

 

어린이들을 대동한 젊은 부모들, 손자손녀의 손을 잡고  견학온 노인들, 젊은 연인들과 배낭여행으로 보이는 젊은이들까지... 꾸준한 방문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큰 주차장에는 많은 차량과 행상들이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매표소가 있고 바로 곁에 톨스토이가 인공으로 조성했다는 상당히 큰 호수에 청둥오리들이 헤엄치고 있습니다.

 

입구 울타리 밖으로는 높은 언덕지대에 정갈한 칼라의 소박한 건축물들이 옹기종기 있는데 톨스토이가 생전에 사랑했고 작품들의 배경으로 삼았던 바로 그 농부들의 마을입니다. 그 농부들 대부분은  톨스토이 농장에서 함께 일하면서 가족처럼 살았던 이들이며, 톨스토이가 청년시절 농민운동을 시작하고 좌절을 거듭했던, 말하자면 농민교육의 대상자들이 살던 바로 그 마을이라고 합니다. 


톨스토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전생애를 살았던 ‘나스냐 빨라냐’의 톨스토이 농장은 마차를 타고도 한 시간은 돌아다녀야 할 만큼 ‘거대한’ 규모 입니다.  울창한 참나무와 삼나무, 자작나무 숲 사이로 난 길 주변으로 톨스토이의 큰 저택과 공동체로 사용했던 건물, 마구간, 농기구실 등이 그대로 있으며 지금은 미술관, 승마장, 공작실 등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여러 건축물들은 200년이 족히 넘는 목조주택이며 저택같은 시멘트 건축은 전통적인 유럽풍의 설계 그대로이고 두부 자르듯이 작은 활용 공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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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무덤

 


자작나무 숲길 끝에는 톨스토이의 묘지가 있습니다. '비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숲속에 햇빛이 들수 없는 두 평 정도의 잔디 위에 아기 무덤처럼 덩그렇게 톨스토이 무덤이 있습니다.

안내나 설명 표지 하나도 없어서 사람들이 참배하고 사진을 찍고 있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되돌아올 뻔 했습니다. 비목도 십자가도 꽃도 없는 말 그대로 흔적없이 묻힌 톨스토이의 무덤은 바로 톨스토이와 더불어 톨스토이즘 추종자들의 삶도 동시에 보여주는 듯 합니다.


훈화집 [니콜라오와의 대화]를 묘 앞에 놓고 큰절을 드렸습니다. 인도의 빠우나르공동체에서 비노바 바베의 묘지를 참배할 때와 같은 감동이 파동쳐왔습니다. 기도했습니다.

[저는 한국의 산위의 마을에서 온 박기호 신부입니다. 당신이 품고 실천하면서 살았던 예수 제자의 꿈과 삶, 그 가운데 이루지 못했던 꿈, 그리고 이루어진 듯 했지만 결국은 미완의 운동으로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져버린 공동체 이상의 꿈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저희 산위의 마을이 당신의 꿈이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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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묘지는 톨스토이가 실존 인물이며 그의 삶이 전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뿐 세상의 욕망은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은 무소유의 모습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숲과 저택과 사람들이 사는 곳은 있는데 농장이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숲으로 우거진 곳이 옛날 농장 땅이었을까...?

길을 잘못 들어 숲의 끝에 다다른 순간, 세상에! 입이 벌어졌습니다. 톨스토이 소유의 농장은 지평선이 휘어질 만큼 한없이 큰 평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라는 단편소설이 떠올랐습니다. 땅 한평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는 시대에 방대한 평야의 농장을 가진 이런 부자가 마침내 무소유의 삶을 선언하고 살았다고...?

 

모스크바 시내에는 톨스토이의 모스크바 저택이 있고 기념관으로 생전의 식탁 옷과 책상 만연필까지 모든 생활도구들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모스크바 중심가의 그 저택도 한참을 산책할 만큼  숲이 붙어 있습니다.

제 입에서는 ‘진짜 부자였구나!’ 하는 말이 연거푸 나왔습니다. 사회적 지위로서 대단한 백작이요, 문학에서 대문호이며 대단한 부자이고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당대에 톨스토이는 거대한 부자 축에는 끼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제정 러시아는 부호들만의 나라였다는 말이 됩니다.

 

가난한 이가 사회운동을 하고 혁명에 참여하고 자기 것을 내어놓는 일은 흔합니다. 그러나 부자가 가진 것을 무소유로 여기고 민중들을 위해 내어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찍이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고 말했겠습니까? 본래 가진 자는 자기 것을 지키고 마저 채우려 애쓰지요.  결코 가난한 이와 나누며 살지 않음을 역사가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자의 곳간 열쇠는 너무 커서 바늘귀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대출서류도 바늘귀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왕의 옥쇄도 저택도, 모든 재물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모든 소유를 내려 놓아버린 무소유의 사람이었습니다.

 

영혼과 정신, 사상과 믿음만 남은 바람 같은 삶이었기에 걸릴 것이 없었습니다. 바람이 바늘귀를 통과 못할까요? 

그는 진정한 무소유의 사람이었기에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예언직을 거침없이 수행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정치권력자들로부터도 혁명주의자들로부터도 왕따 당하고, 아내와 자식들까지 반대하고, 러시아 정교회는 이단자로 그를 파문했습니다.

그래도 그의 자유를 아무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진리의 길을 걸르면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톨스토이가.

 

부자의 아들로 태어나서 학문과 문학성과 신앙생활과 주어진 모든 혜택을 철저히 자기 것으로 삼은 후, 모든 것을 철저하게 하느님의 것으로 되돌려 드리고 떠나간 하느님의 사람, 예수의 제자 레프 니콜라에비치 톨스토이! 모든 것을 내어 놓았기에 모든 것을 잃지 않고 영원히 소유하게 된 참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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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그 분이 가진 대부분의 것들을 저는 전혀 가질 수 없고 인간으로서 도저히 따를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 목숨과 믿음과 하느님 나라 건설의 열

정은 그의 삶과 온전히 공유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톨스토이의 영성을 닮으려 애쓰겠습니다.

그분을 예수님의 참제자이며 참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인의 모델로 삼고 추종하겠습니다. 그분의 정신과 사상으로 남은 삶을 산위의 마을을 통하여 헌신하기를 청원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를! (2013. 9.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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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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