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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슴없는 고백이 자유롭게 한다

박기호 신부 2016. 08. 11
조회수 8127 추천수 0
03858026_P_0.JPG » 영화 <간증>의 한 장면.

톨스토이는 처음 일하게 된 비서와 대화를 나누면서 젊은 시절 문란했던 여성편력을 서슴없이 말하기도 합니다. 신앙 간증을 하는 교우들의 고백을 듣노라면 과거 부도덕한 생활이나 이기적 판단 행동을 서슴없이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서전을 쓰면서도 입지전적 내용만으로 기록하기도 합니다, 친일파나 박정희 같은 독재자들과 그 후손들은 끝까지 과오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고 기념하는데 중점을 둡니다. 병고를 극복한 이야기가 감동을 줄 것 같아서 교육생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뜻으로 간증을 권고하는데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는 이도 있습니다. 자신은 이런 약간의 장애를 가졌다고 이해를 구하는 이도 있는가 하면 그런 시각으로 보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이도 있습니다.
 
 성경도 부정적 이야기 솔직하게 기록
 자신의 죄나 결함, 부끄러운 모습을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힘은 내적 자유에서 나옵니다. 그런가 하면 먼저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용기로 내적 자유를 얻기도 합니다. 그것이 고해성사입니다. 의식 성찰과 고해성사로 자기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면 자신의 과거 부정적 모습에 대해서 관대해지고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누가 그것을 알아주면 더 좋아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에 서슴없게 됩니다.
 베드로는 사도단을 대표하는 이름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최측근 3인방입니다.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인 복음서는 순교를 불사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해야만 했던 시기, 예수를 직접 수행했던 목격 증인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자 2대 제자들이 공동체를 이끌던 때 그 전승을 기억하고 공동체들의 증거에 통일성을 견지하고자 기록으로 남긴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서마다 약간씩 다르죠.

  qqq1.jpg » 아이들은 돌아왔지만 이들이 기댈 곳은 거의 없다. 사진은 올해초 일부 중.고등학교에서 도입한 ‘고해성사형’ 상담실 모습. 이종근 기자

 복음서는 제자 대표로서 예수의 후계자라는 최고 권위를 부여한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사탄아 물러가라!’라는 핀잔도 들었고 생사를 같이 하겠다고 큰소리 치고는 “나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오! 그런 사람 모르오!”하고 부정했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삼인방인 야고보는 그 어머니까지 동원해서“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예수님의 우의정 좌의정 내지는 국무총리와 비서실장 자리를 청탁했던 부끄러운 일화를 담고 있습니다.
 
 ‘자기 눈의 들보’ 못 보면 불통의 고통만
 완성을 향한 수행은 아주 작은 것까지도 살피면서 개조해 나가고 재범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의식 성찰의 생활을 요구합니다. 타인의 부족함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살피고 기억하면서 자기는 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가 자신의 문제점을 말하게 되면 내가 몰랐던 나에 대해 알게 된 것을 감사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렇지 않다!’며 정당성을 먼저 찾고 애써 설명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괜히 말했구나’ 싶어서 조심하고 경계하게 되겠지요. 그 다음부터는 대화와 소통이 사라지면서 고독이 찾아오게 됩니다. 공동체 고독의 대표적 현상입니다. 자신은 떳떳하고 옳은 것이라고 여김에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은 공동생활의 외로움, 마음을 나누는 친구 없음! 마을의 목요성시간 마다 우리는 베드로의 배반과 통회의 순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의 제자로다! - 아니요 난 아니요. 그런 사람 모르오!”
 “아, 닭이 운다! 나의 주님!”
 일 주일에 한번만이라도 충실한 공동체 의식성찰로 나의 진실한 모습을 대면하고, ‘부끄럽지만 이것이 저의 모습입니다. 도와주십시오 노력하겠습니다’하면서 통회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수행은 크게 진보할 수 있습니다.
 이슬비에 옷 젖듯이, 겨자씨가 자라서 새가 깃들이는 나무가 되듯이.
 집은 좁아도 함께 살 수 있지만, 속이 좁은 사람하고는 살기가 쉽지 않다!
  
 ※ <산위의마을입니다>에 실린 박기호 신부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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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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