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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으로 생명 지피는 ‘풀무’로 자유로운 영혼 활활

이길우 2016. 01. 20
조회수 8332 추천수 0
  ‘무교회 신앙’ 박완 풀무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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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 이은 무교회주의자
 경북대 미생물학과 교수로 
 주말 강의하다 아예 도맡아
 
 1958년 설립된 대안학교 대명사
 유기농업 처음으로 씨 뿌려
 더불어 사는 평민이 교육목표
 
 초대교회 정신과 신앙으로
 기도하고 성경 읽는 그 자리와 
 봉사하는 생활의 마당이 곧 교회
 
 인문학, 식물생리학 등 강좌 열고
 지역 주민과 연계한 마을대학 준비 중


겨울방학이라 학생들이 없어 텅 빈 학교이다. 당직하는 교사들과 교무실을 지킨다. 평소 남학생들이 숙식하는 한옥으로 지은 기숙사의 뜨락에도 앉아본다. 주인을 기다리는 슬리퍼와 운동화가 외롭게 보인다. 겨울 한복판의 햇살이 따뜻하다. 푸른 하늘을 쳐다본다. 눈부시다. 한가롭고 여유 있는 시간들이다.
 그는 이 학교 이사장이다. 충남 홍성에 있는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의 14명 교사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직책은 이사장이지만 ‘선생’으로 불린다. 박완(66) 이사장은 경북대 미생물학과 교수였다. 2001년부터 이 학교에 2년제 대학과정인 전공부가 생기며 주말마다 와서 강의하다가 4년 전부터 이사장을 맡고, 수업도 직접 담당한다.

  대형교회 세습으로 사회적 문제

  그가 맡은 수업은 1, 2학년의 성서수업과 전공부의 생명공학이다. 대안고등학교의 대명사였던 풀무학교에 그가 온 인연은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그는 무교회주의자이다. 그것도 3대에 걸친 무교회주의자이고, 풀무학교는 무교회주의자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의 할아버지(박윤동)는 일제강점기 이 땅에 무교회주의를 심은 김교신(1901~1945)과 교류를 나눴다. 당시 일본에서 사업을 하시던 할아버지는 김교신이 펴낸 <성서조선>의 열혈 독자였다. 할아버지는 한국에 오면 김교신 선생의 집에서 머무르며 신앙을 토론했다. 아버지(박노훈) 역시 무교회주의자였다. 대를 이어 <성서조선>을 구독했다. 집안에 <성서조선>의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거의 대부분을 보관했다. 당시 이 잡지의 구독자는 전국에 300여명. 아버지는 5남매를 키우기 위해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신앙생활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니 할아버지 때부터 뿌리내린 집안의 무교회주의 신앙이 손자로 하여금 풀무학교의 선생이 되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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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무학교는 남강 이승훈의 조카 손자였던 이찬갑 선생이 1958년 설립했다. 이승훈이 설립한 오산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기도 했던 씨알 함석헌 선생의 친구이자 동급생인 이찬갑 선생은 월남 후 홍성에서 주옥로 선생(1919~2001)과 함께 풀무학교를 세웠다. 이찬갑 선생은 김교신의 글을 교재로 쓸 만큼 무교회주의를 신봉했다.
 박 이사장은 “무교회주의는 교회를 없앤다는 뜻이 아니고 교회당 밖에서 순수한 신앙생활을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경직돼 생생한 생명력을 잃은 교회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예수 생전의 갈릴리 호반의 어부들이 가졌던 초대 교회 기독교의 순수한 복음신앙과 그들의 신앙 양식으로 돌아가 루터의 종교개혁 이념을 실현하자는 신앙운동이라는 것이다.
 내년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선언한 지 500주년이 되는 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던 체제화된 가톨릭교회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루터의 정신이 개신교에서 사라지거나 흐려졌다고 비판을 받고 있는 시대이다. 보수화된 대형교회가 대를 이어 세습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천국 열쇠는 교회 아닌 신자 각자가

  무교회주의에 대해 박 이사장에게 질문을 했다.
 -그럼 무교회주의자들은 교회를 부정하는 것인가요?
 “공간을 점유한, 눈으로 보이는 회당을 진정한 교회로 인정하지 않아요.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그 자리가, 봉사하는 생활의 마당이 곧 교회입니다.”
 -목사 등 사제직도 부정하나요?
 “성직제도에서 비롯된 갖가지 교회의 권능을 인정하지 않아요. 정치적 조직같이 관료화된 계층구조와 그에 따른 갖가지 비본질적인 구속과 규제가 참된 신앙생활을 방해해요. 성직자를 통해 물로 받은 세례만이 참세례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에게서 각자가 직접 받는 유형, 무형의 세례가 진정한 세례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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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반교권적인가요?
 “교회적 신앙생활은 일정한 조건을 수락하고, 교회의 지배권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조직의 유지에 지나친 나머지 생동력을 잃게 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이런 조직생리에 대한 반교권적인 선언에서 비롯됐고, 무교회 운동도 이런 종교개혁 운동의 하나입니다.” 
 -교회가 지닌 성서의 해석권도 인정하지 않나요?
 “천국의 열쇠는 교회의 대표자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갖고 있고, 성서 구절의 참뜻은 신학자가 아닌 신자 각자가 하나님에게 받은 믿음의 분수와 은총의 분수대로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성서의 구절 뜻풀이로 생기는 교회의 분열과 중세식의 ‘종교재판’ 따위는 무의미하다고 여깁니다.”
 -그럼 우리 민족의 가장 중요한 신앙적 과제는 무엇인가요?
 “신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고유하고 독특한 세계사적 사명이 무엇인가를 자각해 정립하는 것입니다.”
  무교회주의는 이단시됐고, 무교회주의자가 아직도 전국적으로 500여명 정도인 이유를 짐작할 것 같다.

선생도 학생도 1인1표로 다수결

 풀무학교의 교육목표는 ‘더불어 사는 평민’, ‘위대한 평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깨어 있는 평민이 중요하며, 더불어 살 줄 아는 사람이 정말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풀무학교의 교사는 평등한 관계다. 이사장과 교장도 직함만 가지고 있고, 실제로 권리나 의무가 다른 선생들과 별 차이 없다. 교사회의에서 모든 것을 공유한다. 설립자인 이찬갑, 주옥로 선생은 “우리는 무두무미(無頭無尾), 즉, 머리도 꼬리도 없다”며 교장도 사환도 없이 예수님이 주인이라는 정신으로 서로 협력하기로 한 전통을 세웠다. 학생도 교사와 똑같은 권리를 갖는다. 교사도 한 표, 학생도 한 표를 행사한다. 학교의 대부분의 결정은 다수결로 결정한다. 박 이사장은 “사회의 불의에 맞설 수 있는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인격체를 만들고, 기존의 가치관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학생들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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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생이 고등부 85명, 전공부 14명인 풀무학교 학생들은 학년별로 농업을 배운다. 1학년은 채소 재배를, 2학년은 원예를, 3학년은 벼농사와 축산을 주로 배운다. 전공부 학생들은 임대한 땅에서 직접 농사를 하며 학교에서 배운 유기농법을 현실에 접목시킨다.
 풀무학교가 자리잡은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는 호미, 낫, 괭이 등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간이 있었다. 대장간에서 불을 피우기 위해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가 있다. 그래서 이곳을 예로부터 풀무골이라고 불렀다. 설립자가 학교를 세우면서 이름을 풀무학교라고 지은 이유이다. 젊은이들이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 인격을 형성하고 참인간교육 바람을 일으키려는 교육 이상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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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서 48장 10절에는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고 했다. 노자는 “하늘과 땅 그 사이가 하나의 풀무가 아니냐. 움직일수록 더 힘이 솟는다”고 풀무를 거론했다.

혁명적 변화, 자연계 일반으로 확대

  풀무학교를 이끄는 무교회주의자들은 처음으로 유기농업을 이 땅에 심었다. 지극히 이상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무교회주의자들은,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야 할 영역을 인간사회뿐 아니라 자연계 일반으로까지 확대했다. 김교신 선생은 성서 창세기에서 “생명은 생명으로써만 산출한다”는 원리를 끄집어냈고, 이를 통해 ‘오직 생명으로 생명을 키운다’는 유기농법의 기초 이론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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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9월 고다니 준이치 일본 ‘애농회’ 회장은 풀무학교를 방문해 “기형적인 생물체를 출현시키는 일본 농업의 전철을 밟지 말라”며 “생명을 살리는 길인 유기농업을 키우라”고 호소했다. 풀무학교에서는 오직 유기농업만을 가르친다. 또 지역 주민과의 연계를 위해 요일별로 철학과 인문학, 한시와 한문, 식물생리학 등을 주민들에게 가르치는 강좌를 열고 있고 ‘마을대학’도 준비 중이다.
 “우리는 신도 수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박 이사장의 미소가 그윽하다.
  홍성/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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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우
아직도 깊은 산속 어딘가에 도인이 있다고 믿고 언젠가는 그런 스승을 모시고 살고 싶어한다. 이소룡에 반해 무예의 매력에 빠져 각종 전통 무술과 무예를 익히고 있고, 전국의 무술 고수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과 몸짓을 배우며 기록해왔다. 몸 수련을 통해 건강을 찾고 지키며 정신과 몸이 함께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한다. 한겨레신문 창간에 동참했고, 베이징 초대 특파원과 스포츠부장, 온라인 부국장을 거쳐 현재는 종교 담당 선임기자로 현장을 뛰고 있다.
이메일 :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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