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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이 만난 사람들을 함께 만나보세요. 또 '인간은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란 인류정신사의 가장 큰 주제를 오해 테마로 한 인터뷰와 이에 대한 목사와 신부, 스님, 주역의 대가와 심리학자 등 10명이 모여 토론한 대담을 선보입니다.

암박사가 종교박사가 된 까닭은

조현 2019. 11. 18
조회수 4102 추천수 0



박재갑-.JPG » 서울대의대 암연구소의 삼성암병동 1층 암박물관에서 설명하고 있는 박재갑 교수. 박교수가 설립한 이곳엔 암의 실물표본과 치료법들이 일반인들도 보고 배울수 있도록 전시해두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병원 암연구소 삼성암연구동에서는 매달 한 번 오전 6시30분부터 두시간씩 가벼운 조찬을 겸한 ‘종교포럼’이 열린다. 가톨릭,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이슬람 등의 내노라하는 성직·수행자와 교수들이 강의하고 60여명의 참석자들과 질의·응답을 주고받는다.

 포럼이 암연구소에서 열리는 것도, 이 포럼의 주창자가 대장암분야의 권위자 서울대 의대 박재갑(71) 명예교수라는 것도 뜬금없다. 영혼을 다루는 종교와 육신의 병 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둘을 연결시킨 것이다. 종교발전포럼 10년을 맞은 18일 서울대학병원 삼성암병동에서 박 교수를 만났다. 


 그는 종교발전포럼을 연 이유를 ‘무식해서’라고 했다. ‘서울대교수씩이나 된 자가 너무 인문학적 교양이 없어 부끄러워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에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학위를 마쳤고, 종교발전포럼까지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평범한 교수가 아니다. 의대교수로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해본 인물이다. 서울대 의대 암연구소장을 시작으로 국립암센터와 국립중앙의료원 양 기관의 초대원장을 지냈다. 1995년엔 암정복10개년계획을 제안해 국가암검진사업 실시를 견인하고, 2004년엔 김대중 대통령을 설득해 검진을 5대암으로 확대해 우리나라가 암예방 및 치료의 일등국가가 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뿐이 아니다. 암세포주 하나가 없어서 실질적인 연구가 전혀 이뤄지지못했던 암연구분야의 척박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기부를 받아내 지은 삼성암연구동에 한국세포주은행을 설립했다. 이 은행은 국내 모든 대학병원과 제약회사에 암세포주를 외국보다 현저히 저렴한 가격에 공급해 암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해 지난해 정부에 의해 ‘10대 국가전략생명연구자원’으로 꼽히기도 했다.


세포주배양-.JPG » 암세포주 하나가 없어서 실제 암치료 실험을 할수 없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박재갑교수의 주도로 설립된 암세포주은행. 종합병원과 제약사 등에서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인체와 같은 온도내에서 배양중인 암세포주들을 보여주는 박교수



강연-.jpg » 여름 7~8월만 빼고 매달 한차례씩 아침에 열리는 종교발전포럼 강연


토론-.jpg » 종교발전포럼 강연뒤엔 반드시 강연자와 회원들간에 질의 응답 토론이 이어진다.


 그는 이곳에서 왕처럼 군림할 법한데도 교수·연구원 300여명과 다름없이 칸막이 없는 공간에서 지낼만큼 소탈하다. 연구실 한켠엔 그가 그린 서양화와 민화, 서예글씨들, 그가 새긴 도장들과 직접 빚은 도자기 등이 있다. 그런데 그것들이 하나같이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 있다. 어떻게 그 많은 것들에 집중해 이런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저 의아할 뿐이다. 그런데 그는 정작 자신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처음 의대 시험을 봤다가 떨어졌어요. 그랬더니 형이 그러더라고요. ‘너 잘 됐다. 경기고 나온 놈들은 쥐뿔도 아닌 새끼들이 잘난척만 하니, 인생공부를 해야한다’고요.”


 형의 말에 반발하기보다는 평생 화두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의 열린 자세가 남다르다.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부친은 조상 제사에 정상을 다하는 유교인이어서 형이 성경책을 읽는 것을 보고는 ‘이런 불온한 책을 읽느냐’며 성경을 아궁이에 불살랐단다. 그러나 미션스쿨을 나온 어머니는 아버지가 늙어 힘이 떨어지자 교회를 나갔다. 


도자기-.JPG » 세 종교의 황금율을 새겨, 자신이 만든 도자기를 보여주는 박교수. 뒤엔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들과 자개, 전각 등이 놓여있다.


그림들-.JPG » 박교수가 직접 그린 민화와 그림들


 그는 중매결혼을 해보니 아내가 가톨릭신자였다. 지금은 성당까지 차로 바래다주곤하지만 처음엔 새색시가 영성체를 받는다고 ‘외갓남자’인 사제 앞에서 입을 쩍쩍 벌리는게 영 마뜩찮았다고 한다. 온갖 종교가 집안에 혼재한 것을 보고 그 종교들이 뭐가 다른지 직접 탐구해보기 시작한 게 결국 종교발전포럼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포럼을 하며 어떤 종교에도 편벽되지 않고 공평하게 기회를 주었기에 10년 동안 150여명 회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고도 했다. 그가 만들어 책상 위에 놓은 하얀 도자기엔 세 종교의 황금률이 새겨져 있다. 불교의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라’(자리이타·自利利他)’, <논어>의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마태복음>의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이다.


 “공부를 해보니, 모든 종교의 핵심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남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거에요. 거기서 남은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들과 식물과 물, 공기까지 포함돼 있어요. 그것들을 건강치 않게 하고 나만 행복해질 수는 없어요. 이런 황금률을 실천하는 종교들은 다 훌륭한 점이 있어요. 이런 것을 알고 나니, 우선 내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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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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