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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하다 떠난 그의 마지막 눈빛

이정배 목사 2014. 01. 16
조회수 13684 추천수 0

[휴심정] 나를 울린 이 사람

헌신하다 떠난 그의 마지막 눈빛

 

 

영화편지리메이크.png

*병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남편과 슬퍼하는 아내. 영화 <편지>의 리메이크 태국영화 <더 레터> 중에서

 

 

그는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사람이다. 3년 가까이 암으로 투병하다 지난해 9월 훌쩍 하늘나라로 떠난 것이다. 여전히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와 자신을 꼭 닮은 사랑하는 딸을 남겨둔 채로 말이다.

 

내가 정정오씨 부부를 알게 된 것은 평신도 교회인 겨자씨교회에서 첫 설교를 한 7년 전 어느 주일을 바로 지나서였다. 옳은 신앙을 지녔으나 함께하고 싶은 교회를 찾지 못해 숱한 세월 방황하다 마음을 정해 그곳에 안착한 참 신실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는 유능한 과학자였다. 유수한 대기업에서 근무하며 동료들과 장영실상을 수상할 정도로 브라운관 혁명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업무에 지쳐 낙오하는 동료나 부하직원을 한번도 내친 적 없었으며 그들이 남긴 궂은일까지 홀로 감당하다 쓰러졌다는 회고담이 이어졌다. 그가 간 뒤에 그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일까. 장례식장은 평소 그의 말없는 헌신을 기리며 흐느끼는 동료들의 고백으로 슬픔의 곡조가 가득했다.

교회에서도 그랬다. 그의 기도는 항시 시골 중학생처럼 단순하고 소박했다. 누가 묻는 말 이외에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본 적도 없었다. 그에게 맡겨진 소임은 설교자가 단에 설 때 말씀을 잊지 않고 녹음하는 일이었다. 췌장암으로 그렇게 고통받으면서도 병원에 실려 갈 때까지 그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고통으로 아내와 가족들이 괴로워할 것을 생각하며 그 아픔을 소리 죽여 참아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살 것을 끝까지 믿었고, 그런 그를 하늘이 소생시킬 것을 나 또한 그리 확신했다.

 

사실 그의 암 발병은 그의 아내가 위암 선고를 받고 치료하던 중 일어난 설상가상의 일이었다. 신학자로 살아온 나에겐 신정론(神正論·신이 선하다면 왜 악이 존재하는지)의 물음이 이론이 아닌 절실한 현실이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아내는 건강해졌고 딸아이 역시 원하던 대학에 입학하였으니 하늘이 다른 한쪽 문을 열어준 것 같아 참 고마웠다. 하지만 힘겨워하는 아내를 염려했고 끝까지 살기를 바랐던 그에게 목사로서 마지막을 받아들이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했고, 순간 그와 마주친 물먹은 눈빛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원망과 체념, 안도와 감사, 그 모든 것을 담은 그의 눈빛이 주는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다. 하나 그 중압감을 피하지 않고 내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둘 것이다.

그의 마지막을 인도한 목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하늘이 이렇듯 선한 사람을 곁에 두셨던 것을 사는 동안 감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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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배 목사
감신대 교수이자 대안교회인 겨자씨교회 설교 목사이기도 하다. 변선환 교수와 다석 유영모 선생, 김흥호 선생, 유동식 선생, 장인인 이신 박사 등을 통해 한국적 생명과 영, 신학에 눈을 떴다. 대화문화아카데미 종교간대화위원회위원장, 조직신학회장,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회장을 지냈다. <한국개신교 전위 토착신학 연구>, <켄 윌버와 신학>, <이정배의 생명과 종교 이야기> 등 저서가 있다.
이메일 : ljbae@m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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