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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란 문제해결이다

박기호 신부 2013. 06. 20
조회수 9925 추천수 0
구원이란 ‘문제해결’ 이다 

예수께 향유를 바른 여인 이야기(루가 7,36~8,3).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축소2예수와여자.jpg

한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담은 옥합을 들고 와 예수님을 친전하면서 울고 있습니다. 예수님 발에 입을 맞추고 기름을 바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도 아랑곳없고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자 한없는 서러움이 복받쳐 오른 듯합니다. 무슨 사연인가 있겠지요. 우리도 그렇게 울고 싶은 때가 종종 있지 않아요?
 
우리 어머니는 열여덟에 결혼하셨고 열아홉에 누님을 낳으셨습니다. 어려서도 일하면서 성장했겠지만 그래도 부모와 살던 때에 비교하면 말없이 어렵고 육체적으로 힘들게 일하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시집살이를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고추당초 맵다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라고 비유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시집살이 하는 여인들이 모처럼 친정어머니를 만나는 순간 어머니 품에 안겨 한없이 울기만 합니다. 우리 고모들도 모두 그랬습니다. 

오늘 복음의 여인이 예수님 발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울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그 여자가 어떤 죄인인지도 알건데...” 주변 사람들이 속으로 빈정대고 있듯이 그녀는 읍내에서 파다하게 알려진 여인이었습니다. 좋은 소문은 아닐테고, 아마도 관습이나 생활 윤리측면에서 유다 율법의 죄목에 해당하는 문제를 반복적으로 안고 살아가는 생활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가 손가락질 받는 여인임을 예수님도 아셨습니다. 그러나.
 
“여인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구원! 나에게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의 상태는 어떠할까요? 죽은 다음에 천당을 가는 저승의 구원 말고 현세에서 무엇이 구원인가 말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구원’인데 피부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체험적 이해를 위해서는 논리와 용어의 도치(倒置)가 필요합니다. 서술을 귀납적으로 바꾸는 거죠. ‘구원이란 이런저런 것이다!’ 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이런 상태를 구원이라 할 수 있다!’ 하고 뒤집어 보는 것입니다. 가령, ‘구원이란 문제 해결과 같다.’ 라고 생각해 보는 거죠. 

‘여기 사람 살려요! 빨리 경찰에 신고해 주세요!’ 납치되어 겁탈 당하고, 살해의 위기에 있는 여자에게 문제 해결이란 무엇입니까? 구출되어 부모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것을 종교적 표현으로 구원이라 합니다. 감옥에 갇힌 자는 석방되는 것, 말기암 환자가 치유되어 건강 회복하는 것, 별거 중이던 위기의 부부가 화해하는 것, 말썽부리던 자녀가 착한 생활로 돌아오는 것, 해고 노동자가 복직되는 것, 분단 조국이 통일되는 것, 전쟁과 대결이 종식되는 것. 이런 것은 개인적 사회적 고통의 뿌리였고 그런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이 곧 구원의 구체적 내용물이 되는 겁니다. 

“우리 회사가 도산될 수 밖에 없었는데 기적적으로 해결되었다. 박회장님이 결정적으로 도와주셨었어! 구세주를 만난거지!” 할 때의 문제를 해결하게 도와주신 분이 곧 구원자란 의미입니다. 이건 내 짐작으로가 아니라 구원이란 희랍어가 지닌 의미들에서 그렇다고 전문가들이 말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는 ‘네 믿음으로 네 문제를 해결했구나!’로 바뀌겠지요. 

복음의 여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지 알 수 있는 정보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확실한 것은 돈이 많은 여자였습니다. 예수님께 선물로 들고 와서 발에 부은 향유값이 300데나리온, 요즘 물가로 2천 여만 원입니다. 당시에는 향유가 현금화가 쉬운 상품이어서, 옥합에 넣어 두는 것이 저축의 수단도 되었습니다. 2천만 원 짜리 명품을 사서 기꺼이 선물할 만한 여장부! 그에게 무엇이 문제였을까? 

행복하기 위해서 재물을 모으되 재물이 행복한 삶 자체는 아닌 것.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잡년 취급을 당하며 소외의 삶을 살아가던 그는 예수님의 집회인 산상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빈자의 벗으로, 불치병자의 치유자로, 악령의 추방하는 엑소시스트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사랑도 차별 없고 인정의 소외도 없는 박애와 자비의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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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에서 찾을 수 없었던 알맹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자신에게 선포된 순간 그 분의 사랑이 강물처럼 밀려들었고 그 강물이 회개의 눈물로 흘러넘쳤습니다. 흐르는 것은 사실 눈물이 아니고 삶의 공허와 우울증과 생애의 한이었습니다. 

자신의 문제가 바로 목숨과 재물의 원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서 하루살이처럼 살아 온 삶이었으며 자기 유익만 챙기고, 주변을 경계하며 벽을 쌓고 적대감을 안고 막장의 전투처럼 살아온 인생이 문제였음을 각성했습니다. 비로소 그는 예수님에게서 자신을 찾았고 마땅히 주님의 발아래 있어야 할 존재로 돌아갔습니다. 

“생에 대한 새로운 믿음이, 자아의 상실 속에 살아온 네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이제 평안히 가거라!” 

내 생이 공허하고 삶들이 무의미하고 신이 나지 않는 날의 연속이라면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침묵 속에서 그 분의 사랑이 내게 흘러오게 하십시오. 내게 무엇이 문제인지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해결의 키를 찾게 해주십니다. 삶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고 실천의 생활로 전향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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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오시나 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 님 발자국 소리 밤비 내리는 소리... 옛날에 이런 노래가 있었는데.... 비가 주룩주룩 온다. (2013. 6.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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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메일 : sanimal@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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