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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 슈바이처의 붓다

휴심정 2017. 01. 26
조회수 5554 추천수 1

알버트 슈바이처

병고 시달리는 아프리카 위해 평생을 헌신한 밀림의 성자

                           알랭 베르디에  |  yayavara@yahoo.com



슈바이처1.jpg

▲ 랑바레네 병원에서 수많은 수면병 환자를 돌보던 슈바이처 박사.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진실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셨고 인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인류에게 필요한 윤리들을 제시해 주셨다. 부처님께서는 전 세계 역사를 통 털어 가장 위대한 천재였음이 분명하다.”      - 알버트 슈바이처 -



철학과 신학으로 박사학위

신학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불교와 인도철학 접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에 크게 매료


아프리카 자원의사 광고에

교수직 버리고 의대 입학


아프리카에 병원 세우고

생애 대부분 진료에 매진


매일 전쟁 같은 일상에도

연주와 명상 통해 힐링 


불살생 가르침 특별히 강조

뭇 생명 향한 큰 자비 역설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1875년 프랑스의 동부 독일 접경 지역인 알자스(Alsace)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슈바이처는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9세에 이미 오르간을 연주했다. 슈바이처는 쟝 세바스찬 바흐(Jean Sebastian Bach) 음악의 권위자가 됐다.


슈바이처는 1893년 알자스주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대학에 입학해 철학과 신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6년 후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취득 후 슈바이처는 스트라스부르시에 위치한 성 토마스(Saint Thomas) 신학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교수로 일하는 동안 슈바이처는 예수의 일생과 성 바울을 주제로 책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슈바이처의 지적 호기심은 인도철학과 불교철학에 심취하게 했고, 결국 동양철학에 관한 수많은 서적들을 읽어가며 불교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짧게 배웠던 불교는 슈바이처의 호기심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그런 이유로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사무실에 앉아 불교서적들을 탐독했다. 그리고 점차 불교의 가르침에 큰 영향을 받기 시작한 슈바이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됐다.


“내가 어떤 문제들에 직면할 때마다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까지 자비와 친절을 베풀라는 부처님의 가르침들을 기억하게 된다. 내가 아는 한 이보다 더 나은 충고와 해결책은 존재할 수 없다. 부처님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바른 길을 과학적으로 제시하신 최초의 인물이다. 삶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길은 부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부처님께 다가가는 방법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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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버트 슈바이처의 만년 모습



어느 날 신문을 읽고 있던 슈바이처는 파리의 기독교 협회에서 낸 광고를 보게 됐다. 아프리카에서 자원봉사를 할 의사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슈바이처는 불현듯 세상 곳곳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의사가 되어 봉사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리고는 과감하게 교수직을 버리고 다시 의대에 입학했다. 오로지 의사가 돼 아프리카에서 봉사하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1912년 마침내 슈바이처는 의학박사 학위를 따냈다. 그리고 같은 해 학창 시절 친구였던 헬레네 브레슬라우(Helene Bresslau)와 결혼했다. 그들은 부모님과 동료, 친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령인 아프리카(현재는 가봉 공화국)로 가 오고웨라는 강변 근처에 랑바레네(Lambare´ne´)라는 병원을 설립했다. 그곳에서 슈바이처는 매일 천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봤다. 당시 그 곳에 가장 흔한 병은 수면병이었다. 수면병은 중간숙주인 체체파리의 일종인 흡혈성의 침파리에 쏘임으로써 일어난다. 불규칙한 발열·발진, 림프절 종창 등이 일어나고 만약 중추신경까지 침투하면 심한 두통이나 신경증세가 일어나서 몸이 마르고, 말기에는 아무 때나 잠에 드는 기면(嗜眠) 상태가 돼 사망한다. 변변한 치료약이 없던 그곳에서 슈바이처는 끊임없이 환자들을 치료했다. 특히 나병환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돌보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병환자는 두려워 누구도 돌보려 하지 않았기에 버려지기 일쑤였다. 병원에서의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면서도 슈바이처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틈틈이 정글 깊숙이 들어가 오래된 피아노로 바흐의 곡을 연주하며 긴장을 풀었다. 또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불교서적을 읽으며 마음을 새롭게 했다. 당시 슈바이처의 관심사는 명상이었다. 


“때때로 우리 내면의 불빛이 꺼지면 다른 이가 가진 작은 불꽃에 의해 다시 켜지게 된다. 우리 모두는 우리 내면에 잠재적인 불빛이 존재한다는 증거일 것이다. 내가 간혹 약해지더라도 다른 사람의 작은 도움은 우리를 다시 강하게 한다.” 


슈바이처는 명상을 통해 깨달은 바를 친구에게 이렇게 전했다. 명상을 통해 슈바이처는 지친 육신과 피곤한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더욱 강렬하게 보살행에 매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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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가봉에 있는 랑바레네 병원



그러나 병원운영에 들어가는 재원은 항상 만만치 않았다.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서 치료에 전념하다가도 틈틈이 유럽으로 건너가 바흐 작품을 연주하며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병원 운영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1927년 아프리카 곳곳에 세균성 이질이 퍼지며 환자수가 급격하게 늘자 슈바이처는 세 번째 병원을 세웠다. 아프리카는 그의 수행 장소였으며 평생을 일관되게 유지해온 헌신과 자비의 원동력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일부 종교인들의 극단적인 폭력, 더러운 정치판, 속 좁은 국수주의, 탐욕, 물질 만능주의로 신음하고 있다. 편견과 도그마, 증오와 욕심, 다른 생명에 대한 잔인함으로 세상은 더욱 각박해져 가고 있다. 슈바이처의 삶은 이런 환경에 진저리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는지 일깨우고 있다. 슈바이처는 특히 불교의 불살생과 비폭력주의에 매료됐다. 슈바이처의 책 ‘인도의 사상과 철학의 발전’에는 불교에 대한 그의 견해가 잘 드러나 있다. “세상의 작은 생명까지도 연민을 가지고 사랑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이 세상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없다.” 


그는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의 한 끼 식사를 위해 죽음을 맞는 동물들에 대해 큰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동물들은 우리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기쁨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며 두려움도 느낀다. 생명에 대한 숭배는 휴머니즘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 적용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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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동안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에 남아 미국 정부로부터 재정적 도움을 받아가며 의료봉사를 계속했다. 그러나 1948년 건강이 악화돼 유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년 뒤인 194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사람들은 슈바이처를 현 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로 손꼽았다. 그리고 몇 년 뒤 슈바이처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됐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노벨평화상 수상보다 상금이 더 중요했다. 상금을 받는 순간 슈바이처는 아프리카 나병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불빛 마을(the Village of Light)’를 세웠다. 슈바이처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부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슈바이처는 1965년 90세를 일기로 평생에 걸쳐 봉사했던 아프리카 랑바레네 마을에서 눈을 감았다. 슈바이처의 육신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무덤 옆에 묻혔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박애주의자였던 슈바이처를 기억하기 위해 위그 드 쿠르종(Huges de Courson), 삐에르 아켄뎅게(Pierre Akendengue´)와 같은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들은 바흐의 음악과 아프리카 대륙의 토속악기를 조합해 ‘아프리카의 바흐(Bach to Africa)’라는 훌륭한 음반을 만들었다. 아프리카 특유의 선율이 함께 하는 바흐의 음악들을 듣노라면 아프리카의 슬픔과 슈바이처의 헌신이 함께 오버랩 된다.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절묘하게 조합된 아프리카의 혼과 바흐의 웅장한 음악은 가슴 밑바닥 우리의 불성을 일깨우는 감동에 사로잡힌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의미를 삶을 통해 온 몸으로 웅변한 박애주의자 슈바이처의 삶은 불자들이 나아가야  할 참된 삶의 방향을 일깨우고 있다.


알랭 베르디에 저널리스트 yayavara@yahoo.com


이 글은 법보신문(http://www.beopbo.com/)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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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도그마의 감옥을 박차고 나와 깨달음과 행복을 위한 고무 찬양이 난발하는 곳, 그래서 더욱 알아지고 깊어지고 열리고 사랑하게 되고 행복해지는 곳, 단 1분도 쉬지 못하는 마음이 쉬는 곳, 잠시 뒤면 소란이 다시 몰려올지라도 1분만이라도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휴심정 休心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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