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글방
휴심정의 멋진 벗님들이 전하는 나눔의 글 마당입니다.

교도소에서 보낸 여름 휴가

서영남 2015. 08. 11
조회수 14912 추천수 0



교도소행 여름휴가



저의 본업은 교정사목이고 부업은 민들레국수집이라고 하지만 이젠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본업입니다. 왜냐면 가장 작고 여리고 아픈 손가락에 온 신경이 쓰이기 때문입니다.


한여름이면 감옥은 참으로 서러운 곳이 됩니다. 좁디좁은 방에 여덟이나 아홉 명이 갇혀 있으면 옆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답니다. 바깥바람이 들어오는 곳은 촘촘히 창살이 박혀있는 작은 창문뿐입니다.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화장지를 길게 찢어서 창살에 매어 놓는답니다. 창살에 매어 놓은 화장지가 흔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여봅니다. 부채를 부쳐보지만 땀만 흐릅니다. 선풍기 바람도 뜨겁기만 합니다. 저절로 욕이 나옵니다.


함께 갇혀있던 사람들 중에서 다툼이 일어납니다. 말리는 척 하지만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 두 사람이 징벌방으로 가면 오늘 밤만큼은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 기대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esummer.jpg


삼복더위가 다가오면 베로니카와 함께 교도소 여행을 준비합니다. 저의 아내인 베로니카가 운영하는 옷가게가 있는 지하상가는 매년 여름에 일주일 간의 휴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12년째 베로니카아 함께 여름이면 여름휴가를 떠납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썰렁한 곳으로 피서를 갑니다. 감옥에 있는 우리 형제들을 찾아 여름휴가를 보냅니다.


올해는 7월 31일부터 베로니카와 함께 교도소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메르스로 인해 모든 교도소의 집회가 중단되었다가 이제야 풀렸습니다. 경북북부 1교도소에서 자매상담을 시작으로 여름휴가를 시작했습니다. 감옥에 있는 형제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것은 이제는 칫솔뿐입니다. 전에는 여러 가지가 반입이 허용되어 선물꾸러미를 꾸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겨우 칫솔 정도 선물해 줄 수 있습니다.


7월 31일 아침 6시에 인천을 출발했습니다. 영동 고속국도는 휴가를 떠나는 차량들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겨우 여주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오후 1시에 진보에 도착해서 얼음과자와 빵 그리고 복숭아를 샀습니다. 자매상담에 나오는 형제들과 나눌 음식입니다. 오후 2시에 경북북부 1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메르스 영향으로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에 인적사항을 적고 체온을 측정한 다음에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회복귀과 상담실에서 형제들과 오랜만의 자매상담을 시작했습니다. 메르스로 집회가 중단된 후 첫 만남입니다. 몇 명의 형제들은 다른 교도소로 이감을 갔습니다. 새로 모임에 나온 형제들도 있습니다. 모두 열일곱 형제가 나왔습니다. 시작기도를 한 다음에 곧바로 얼음과자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런 다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북북부 1교도소의 형제들은 대부분이 십년, 이십년, 무기 등의 형을 받은 장기수들이 대부분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얼굴이 굳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몇 번의 만남을 가지면 형제들의 얼굴을 부드러워집니다. 웃기 시작합니다. 이웃과도 나누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저 따뜻하게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우리 형제들은 놀랍게 변합니다. 다음 달에는 추석이 다가오니까 맛있는 떡을 많이 해 오겠다고 했더니 어린 아이들처럼

좋아합니다. 아쉬운 한 시간 반의 모임을 마치고 민원실에 들어가서 영치금을 넣어드렸습니다.


그런 다음에 경북 북부 직업훈련 교도소에 갔습니다. 27년째 징역을 살고 있는 늙은 무기수 형제를 면회했습니다. 나이가 쉰아홉입니다. 머리도 벗겨지고 흰머리가 많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직업훈련 교도소에서 컴퓨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봉제 기술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빵 기술도 배워서 자격증을 땄습니다. 언젠가 출소하면 일해서 먹고 살아야한다면서 지금도 컴퓨터를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만 해도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이라도 모범적으로 수형생활을 하면 이십여 년 정도 살면 가석방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십오 년을 살아도 이십칠팔 년을 살아도 가석방 혜택을 받을 꿈도 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징역 35년을 선고받은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앞으로 무기수들은 얼마나 더 살아야 가석방이 혜택을 얻을 수 있을까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교도소에 갇혀있는 무기수가 약 천사백 명 정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재판정에서 최후진술을 하면서 울먹입니다. “수감된 지 110일이 됐는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버틸 수 없는 한계가 온 것 같다”며 재판부에 보석 신청을 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겨우 110일을 갇혀있으면서 버틸 수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27년(9,800일)을 교도소에 갇혀 살고 있는 우리 늙은 무기수 형제의 심정은 어떨까 마음이 아픕니다.


8월 1일(토)에는 경북 북부 3교도소를 방문했습니다. 바오로 형제는 12년 징역을 살고 지금은 감호를 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문맹이었습니다. 베로니카의 도움으로 이제는 편지도 쓸 줄 압니다. 별명이 ‘아까돌아’입니다. 조금 전에 싸웠는데 또 싸운다고 얻은 별명입니다. 베로니카와 모니카를 만나려고 그토록 참고 참고 참으면서 징벌방을 가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그만 싸웠던 모양입니다. 민원실에서 면회 신청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규칙을 어겨서 징벌방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면회도 안 됩니다. 구매물도 반입이 안 됩니다. 영치금만 넣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영치금 조금 넣어드리고 민원실에 마련되어 있는 편지지에 편지를 써서 서신함에 넣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습니다.


포항교도소로 가는 길은 경치가 참 좋습니다. 황장재를 넘어서 영덕과 강구항을 지나면서 바닷길을 거쳐 포항교도소를 찾았습니다.

포항교도소에서는 무기수인 제노비오를 만났습니다. 이십대에 교도소에 갇혀서 어느새 이십년이나 흘렀습니다. 야수 같던 눈은 부처님 눈처럼 부드러워졌습니다. 모든 욕심을 내려놓은 모습입니다. 포항에서는 용접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이 직업훈련이 끝나면 본 교도소인 목포교도소로 돌아가야 하는데 좀 더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청주나 대전교도소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없는지 물어봅니다. 고마운 분들 덕분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데 이제는 열심히 일해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고맙게도 교도관이 면회 시간을 보통보다 두 배를 더 주셨습니다.


8월 3일에는 순천교도소의 무기수인 요한 형제를 찾았습니다. 요한 형제는 사형수였다가 무기수로 감형되어 순천으로 왔습니다. 면회를 신청했는데 안타깝게도 전일공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오후 3시가 지나야 면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쉽지만 영치금과 구매물을 넣고 편지를 써서 서신함에 넣고 광주교도소로 향했습니다.


감옥에 있는 형제들은 자기가 저지른 죄에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죄의식으로 마음이 짓눌립니다. 양심의 가책에 괴롭습니다. 자신을 외면해 버리고 싶고 죽고 싶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 받았다는 체험을 하면 우리 형제들은 극적으로 변합니다. 참다운 회심은 죄를 반성하는 것을 넘어서 사랑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2년째 교도소 여행을 하면서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최고수와 장기수 형제를 만날 때마다 형제들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처음에는 야수 같던 눈빛이었습니다. 섬뜩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눈빛이 부드러워집니다. 요즘은 형제들 눈을 보면 아기들 눈을 보는 것 같습니다. 자기만 알던 사람이 남 걱정을 합니다. 참 희한합니다.


광주교도소에서는 보니파시오 형제를 만났습니다. 무기수입니다. 청송에서만 14년을 갇혀 있다가 몇 달 전에 광주로 이감되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형제들은 다른 교도소로 이감 가는 것을 아주 힘들어 합니다. 그런데 면회실에서 만난 보니파시오 형제는 편안한 얼굴입니다. 꼴베 형님 덕분에 광주교도소에서 어렵지 않게 잘 적응했다고 합니다. 꼴베 형님의 후배들이 광주교도소에 많이 있어서 쉽게 공장에도 일하러 다닐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남동생이 자주 면회를 온다고도 합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출소하게 되면 자기도 꼴베 형님처럼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면서 살고 싶다고 합니다. 겨우 10분의 면회 시간이 아쉽게 끝났습니다.


8월 4일에 오전에는 청주교도소의 베드로 형제를 만났습니다. 20년 형을 받고 17년째 갇혀 살고 있습니다. 서예를 아주 잘 합니다. 전일공장에서 하루 일을 하고 저녁에는 글 쓰는 재미에 산다고 합니다. 이제는 두 번만 더 면회하면 민들레국수집 곁에서 살 수 있으니 세상에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면회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군산교도소로 향했습니다. 오후 2시에 장소외 접견을 신청했기 때문입니다. 장소외 접견은 접견실이 아닌 별도의 장소에서 교도관의 입회하에 직접 얼굴을 마주 대하고 면회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면회 시간도 30분 정도입니다. 바오로 형제는 18 년형을 받았습니다. 처음 청송에서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전주교도소로 옮겼고, 얼마 전에는 이곳 군산교도소로 이감을 왔습니다. 이제 12년을 살았습니다. 그 동안 베로니카의 도움으로 국어국문학과 독학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이제는 경영학 과정을 더 하고 싶다고 합니다. 베로니카께서 옥바라지를 잘 해 줄테니

까 걱정말라고 합니다. 베로니카는 우리 형제들이 공부할 때 필요한 책과 비용을 아낌없이 도와주곤 합니다. 이제 나이가 쉰이 넘었습니다. 흰머리는 늘어났지만 눈빛은 더 맑아졌습니다. 교도소 안에서 만든 수첩을 보여줍니다. 우리 가족 사진을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보곤 한답니다.


8월 5일 오전에는 천안교도소를 찾아갔습니다. 프란치스코 형제는 청송에서 징역 10년 형을 살고 6년째 감호를 살다가 지난달에 천안교도소로 와서 감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보호감호법은 폐지되었습니다만 보호감호법에 의해 감호처분을 받은 사람은 7년 미만의 감호를 살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형제는 처음에는 무척 억울해 하고 힘들어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얼굴이 편안해졌습니다.


오후에는 공주교도소를 찾아갔습니다. 최고수였다가 팔 년 전에 무기수가 된 안드레아 형제가 있는 곳입니다. 십 몇 년 전에 사형수였던 안드레아 형제가 자기는 고아라서 자기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답니다. 가족이 없으면 화장을 해 버리기에 그것이 두 번 죽는 것 같아서 싫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어서 무덤에라도 묻히려면 묘지라도 마련해 놓으려고 고마운 분들이 넣어 주는 영치금을 모았는데 아무래도 부질없는 짓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50만원을 내어 놓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써 달라고 했습니다.


8년 전에 안드레아는 사형수에서 무기로 감형을 받고 이곳 공주교도소로 옮겨 왔습니다. 이곳에 와서야 공부를 해서 고입, 대입 검정고시를 했고, 베로니카의 도움으로 얼마 전에 독학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법자 신세인 자기가 베로니카 누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공부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면서 고맙다고 합니다. 요즘은 전일 공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8월 6일 오전에는 대구 교도소에 있는 최고수 형제를 찾아갔습니다. 25세 때 사형선고를 받고 서울구치소에 있다가 몇 년 전에 대구교도소로 이감되었습니다. 사형수인데도 공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줘서 인쇄공장에서 일해서 참 좋다고 합니다. 지난해에는 국어국문학과 독학사 과정도 마쳤다고 합니다. 면회 종료 1분전 소리가 납니다. 내년에 다시 만날 기약을 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습니다. 교도소를 나오면서 베로니카께서 덕분에 여름휴가를 알차게 행복하게 보냈다면서 고맙다고 합니다.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 글은 <민들레국수집 mindlele.com>에 실린 것입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서영남
전직 가톨릭 수사로, 인천에서 노숙자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국수를 나누 는 민들레국수집 운영하고 있다. 1976년 가톨릭 한국순교복자수도회에 입회해 1995년부터 전국의 교도소로 장기수들을 찾아다니다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파견돼 출소자의 집인 ‘평화의 집’에서 출소자들과 함께 살았다.
이메일 : syepeter@hanmail.net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서영남 | 2017. 03. 13

    모든 것이 은총입니다. 모든 것이요.  어떤 사도가 이 무상성을 산다는 표지는 무엇일까요?  많이 있지만 두 가지만 강조하겠습니다. 첫째, 가난입니다.복음 선포는 가난의 길로 가야만 합니다.  이 가난을 증언하는 거예요.  ...

  • 수감자 노숙자의 따뜻한 국물 한술수감자 노숙자의 따뜻한 국물 한술

    서영남 | 2017. 02. 19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 특히 가난한 이들, 노숙하는 이들,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 소외된 이들이  민들레국수집에서 환대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어제는 청송을 다녀왔습니다. 청송의 형제들이 베베모가 다시는 청송에 오지...

  • 설날에 더 슬픈 사람들설날에 더 슬픈 사람들

    서영남 | 2017. 01. 30

    우리 손님들이 너무너무 힘이 듭니다.

  • 흙수저조차도 챙겨 나오지 못한 청춘들흙수저조차도 챙겨 나오지 못한 청춘들

    서영남 | 2016. 09. 23

    88년생 청년과 84년생 청년 둘을 데리고 건강보험공단에 갔습니다.  84년생 청년은 24살 때부터 노숙을 시작했습니다. 일거리가 있을 때는 겨우 살다가 돈 떨어지면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 차례나 어린 청년이 노숙하는 것이 안쓰러...

  • 가난밖엔 가진 것 없는 그들이 ‘하느님 대사’가난밖엔 가진 것 없는 그들이 ‘하느님...

    서영남 | 2016. 02. 15

    시기와 질투. 공지영 작가의 글에서 얻어왔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그 근본 개념이 조금은 다른데, 시기는 쉽게 말해 내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에 대한 미움이고, 질투는 쉽게 말해 나보다 잘난 저 사람에게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