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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았던 것처럼 죽는다

서영남 2014. 09. 18
조회수 14617 추천수 0


민들레짜장편집.jpg


우리 손님들이 주일마다 서울 강남의 동천홍서 맛있게 볶아져서 오는 짜장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매 주일마다 동천홍 사장님께서 직접 차에 싣고 민들레국수집에 선물해 주십니다. 어느새 십년이 다 되어갑니다!


VIP 손님들은 짜장면보다는 짜장밥을 좋아하셨습니다. 노숙하시는 분들의 밥 사랑은 아주 큽니다. 떡국보다도 만두국보다도 국수보다더 밥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2013년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해 문을 연 어르신 민들레국수집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짜장면을 정말 좋아하시고 또 기다리십니다.


어르신 민들레국수집에 오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다른 경로식당에는 문전박대를 당하는 분들입니다. 거주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규정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로식당 무료급식을 이용할 수 없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입니다.  어르신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왜 오셨는지 묻지도 따르지도 않습니다. 그냥 국수를 드립니다.


VIP 손님을 위한 민들레국수집 어르신들이 몰려오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식사를 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너무도 천천히 식사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손님들이 전에 서럽게 당했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노인들에게 함부로 대하기도 합니다. 어르신들이 어르신들조차 않게 배고파서 찾아오는 노숙인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13년 청암사 봉사상 상금 일부로 어르신 민들레국수집을 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왜 우리에겐 국수를 주고 노숙자들에게만 밥을 주느냐고 항의를 하셔서 한 분 한 분에게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젊은 놈들에게 공짜로 밥을 주니까 일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이십니다. 왜 우리에게 잘 해야지 그깟 놈들에게 밥을 주느냐고 하기도 합니다. 제대로 존경받을만하게 늙으신 분이 참으로 드뭅니다. 안타깝습니다. 어떨 때는 고소를 하겠다고 합니다. 왜 정부에서 받은 돈으로 우리에게 잘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정부에서 주는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하면 세상에 자기 돈으로 이런 미친 짓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아주 당연히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살았던 것처럼 죽습니다. 오래 전에 아는 분의 모친 장례식에 문상갔습니다. 천둥치고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놀라운 일은 상여를 맨 사람들이 그런 날씨에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있습니다.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하늘도 슬퍼한다는 것입니다. 잘 살고 잘 죽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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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
전직 가톨릭 수사로, 인천에서 노숙자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국수를 나누 는 민들레국수집 운영하고 있다. 1976년 가톨릭 한국순교복자수도회에 입회해 1995년부터 전국의 교도소로 장기수들을 찾아다니다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파견돼 출소자의 집인 ‘평화의 집’에서 출소자들과 함께 살았다.
이메일 : syepet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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