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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중에서도 말 못하는 가난

서영남 2014. 11. 02
조회수 10853 추천수 0

1104민들레국수집-.jpg

필리핀 민들레국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가난한 사람의 친구가 되고 가난한 그들에게서 배우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도와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다니면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아쉴리와 알버트는 초등학생입니다.  똘똘합니다.  민들레국수집 장학생입니다.  옷매무새가 단정합니다.  얼굴에 그늘이 없습니다.  엄마 아빠의 따뜻한 손길이 보입니다.  


얼마 전에 행복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아쉴리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는 깔끔했습니다.  문에도 예쁜 장식을 했습니다.  들어가보니 깜짝 놀랐습니다.  아주 좁은 집입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사다리가 있고 이층에는 지붕이 없이 그냥 뻥 뚤려 있습니다.

 

비가 오면 합판으로 막아 놓고 좁은 아래층에서 여섯 식구가 잡니다.

부부가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집을 지었는데 그만 일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마지막 지붕을 올릴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아들 넷을 잘 키웠습니다.


아빠가 계신 것을 알기에 지붕을 올릴 재료만 사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쉴리가 집에 쌀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아빠가 지방으로 일하러 갔는데 돈을 보내오지 않아서 집에 쌀이 떨어졌답니다.  급히 아쉴리에게 쌀 5kg을 담아서 보냈습니다.  목수와 보조 두 사람을 아쉴리 집 지붕을 올려주라고 보냈습니다.  이틀만에 지붕을 올려주었습니다.  아쉴리 가족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합니다.  아빠 오실 때까지 밥을 해 먹으라고 쌀 10kg을 선물했습니다.


리노아네 집도 지붕이 없었습니다.  천막으로 대강 가렸으면서도 집 없는 친척에게 좁은 옆을 내어주었습니다.  지난 9월에 수녀님께서 리노아 집에 재료를 사 드렸습니다.  지붕만 올린 것이 아니라 한 층을 더올려서 이층집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재료가 모자랐습니다.  이층이 반쯤 짓다만 상태가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집없는 어려운 친척들 두 가구가 더 들어와서 살고 있습니다.  리노아네 집에 모두 열네 명의 대식구가 삽니다.  그래서 필요한 재료를 사 드렸습니다.  화장실 만들고 옆의 벽을 블럭으로 쌓고 모자란 지붕을 올리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브라함 글로리아 아주머니 집에 들렀습니다. 아브라함 글로리아 아주머니는 겨우 40살입니다.  그런데 너무 고생했습니다.  어느날 글로리아 아주머니가 아기를 데리고 엄마들 틈에서 밥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왔다고 합니다.  혹시 아기가 몇인지 물었더니 넷이라고 합니다.  다섯 살짜리 꼬마가 있는데 말을 흐립니다.  그래서 그 꼬마를 민들레국수집 어린이집에 보내라고 했더니 좋아합니다.  아브라함 롬멜입니다.  글로리아 아주머니는 롬멜 덕분에 점심에 떳떳하게 아기를 데리고 와서 엄마들과 함께 밥을 드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이라고 보여줍니다.  지붕을 천막으로 겨우 가렸습니다.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냥 흙바닥에 얼기설기 움막을 지었습니다.  집에 돈 벌어올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굶기를 밥 먹듯 한답니다.  비가 올 때가 제일 어렵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3만-4만 페소는 들 것 같습니다.  다음 달에나 조금 도와 드려야지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사정을 들은 아우구스띠노 형제님께서 글로리아 아주머니 집을 조금 돕겠다고 합니다.  아마 다음 주부터 글로리아 아주머니 집 수리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 영광 (글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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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
전직 가톨릭 수사로, 인천에서 노숙자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국수를 나누 는 민들레국수집 운영하고 있다. 1976년 가톨릭 한국순교복자수도회에 입회해 1995년부터 전국의 교도소로 장기수들을 찾아다니다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파견돼 출소자의 집인 ‘평화의 집’에서 출소자들과 함께 살았다.
이메일 : syepet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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