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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그치기보다 기다리기

서영남 2013. 07. 04
조회수 16702 추천수 1
기다리기보다 다그치기가 훨씬 쉽습니다.  
 
이슬왕자님이 스스로 알콜 의존증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을 할 때 이번에는 꼭 여섯 달은 지내다가 퇴원하기로 약속을 했었습니다.  필요한 물품을 보내주고 용돈도 넣어줬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민들레국수집 앞에서 만났습니다.  한달 엿새만에 나왔다고 합니다.  제가 넣어 준 용돈이 나올 때 남아 있어서 부평역까지는 택시를 탔고, 전철과 버스를 타고 겨우 동생집으로 갔는데 반겨주기는커녕 문도 열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방을 하나 얻어달라고합니다.  주소를 옮겨야 한답니다.  그래야 기초생활 수급 나오는 것을 자기가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훈 씨 집에서 함께 산다면 주소를 옮겨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술은 먹고 싶고 간섭은 받고 싶지 않고 노숙은 못 하겠고...  아주 복잡할 것입니다. 슬그머니 양파를 까고 있습니다.
 
민들레국수양파편집.jpg

민들레진료소를 열면서 정말 도움이 필요한 분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했습니다.  당장 도움이 필요한 분을 보고 모른척 하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세상에 착한 도움을 주는 분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손님들도 아주 간단한 치료나 약에도 잘 치유가 되었습니다.  희안합니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암수술과 심장수술.  고관절 수술 등등  구청에서 긴급의료 지원을 해 주셔서 살아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결핵에 걸린 노숙 손님은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 난감했습니다.    결핵약만 먹고는 치료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결핵을 치료하다 말면 내성이 생겨서 더 걷잡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베로니카와 함께 심사숙고를 했습니다.  결핵에 걸린 손님을 발견하면 여인숙 방을 얻어서 지내게 하고 용돈도 드리고 또 식사를 국수집에서 잘 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결핵약을 먹을 수 있도록 보살피자고 했습니다.  여섯 달만 밥 잘 먹고 약 잘 먹으면 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해서 결핵에 걸린 우리 손님들을 보살폈습니다.  어느새 일곱 명이나 완치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 명이 결핵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18일이었습니다.  대구를 다녀왔습니다.  베로니카께서 국수집에서 손님들 대접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심각한 몰골의 손님이 오셨답니다.  봉두난발에 오물이 온통 묻어있는 그런 분이 왔답니다.  식사하게 하고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찜질방에서 쉬게 했다는 것입니다.  베로니카는 정말 천사입니다.
 
다음날 제가 만났습니다. 명구 씨라고 합니다.  나이는 마흔 일곱인데 노숙을 오래 했습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합니다.  도와드려야 하는데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새 민들레 식구를 세 분이나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고민을 하다가 페이스 북에 사연을 올렸습니다.  좀 도와주십사 청했습니다.  곧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필요한 금액이 얼만지 물어봅니다.  삼십만 원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마운 분께서 곧바로 입금을 해 주셨습니다.
 
먼저 여인숙 방을 얻었습니다.  말소된 주민등록을 살리고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방을 구한 다음에 사진을 찍고 주민센터에 가서 과태료를 내고 주민등록을 하고 주민등록증을 재발급 받았습니다.   
 
다음날이 마침 민들레진료소가 열리는 날이었고, 결핵협회 엑스레이 차량이 오는 날이었습니다.  명구 씨도 엑스레이를 찍고 또 의사선생님께 진찰을 받았습니다.  곧바로 아주 심각한 결핵인 것 같다면서 보건소에 모시고 가서 정밀 진찰을 받아보라고 합니다.  보건소에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다음날 보건소에서 명구 씨를 급히 찾습니다.  보건소 직원들이 마스크를 하는 등 완전무장을 했습니다. 인천의료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며칠 후 내성이 생긴 결핵이라며서 격리 치료를 해야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천의료원에 입원했습니다.  세면도구와 속옷을 챙겨보냈습니다.  면회도 금지라고 합니다.  의사선생님이 고맙다고 합니다.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집을 한 채 세 내었습니다.  그런데 수리를 많이 해야합니다.  요한 보스코 형제가 서울에서 내려와서 전기를 봐 주었습니다.  용량에 맞게 쓸 수 있도록 잘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집에서 살 새 민들레 식구 세 명이 수리하는 것을 거들기로 했습니다.  장판을 걷어내고 벽지를 걷어내고 더운 날 고생을 많히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살 집이어서 기분 좋다고 합니다.  
 
희망의 러브 하우스 양회장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비 새는 곳 방수처리, 도배와 벽지, 단열, 창호 하나 교체하고 주방에 타일 붙이고 실내 페인트 칠하고...  이제 모레쯤이면 우리 세 식구가 들어가서 살 수 있습니다.
 
지난 29일에는 민들레국수집에 국무총리께서 방문하셔서 금일봉도 주시고 또 국수도 드시고 가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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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남
전직 가톨릭 수사로, 인천에서 노숙자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국수를 나누 는 민들레국수집 운영하고 있다. 1976년 가톨릭 한국순교복자수도회에 입회해 1995년부터 전국의 교도소로 장기수들을 찾아다니다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에 파견돼 출소자의 집인 ‘평화의 집’에서 출소자들과 함께 살았다.
이메일 : syepet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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