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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일우 선사

조현 2005. 12. 07
조회수 17756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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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우 선사의 유일한 상좌 정원 스님이 25년째 은거 중인 천안 태화산 평심사에서 스승을 회고하고 있다.


세상 모르게 설파한 불법… 무게가 삼천근


<깨달음의 자리> 마지막 편 점을 찍으러 충남 천안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승가에서 ‘엉덩이에 뿔난 소’처럼 괴팍스런 스님을 불러 괴각이라고 한다. 이 시대에 보기 드문 괴각 정원 스님(53)을 만나러, 그것도 불청객으로 가는 때문이다.


정원은 충남 천안 광덕면 매당리 태화산에 25년째 홀로 은거하며, 선종의 결정판인 <벽암록>과 불법의 ‘현묘한 도리’를 밝힌 글을 모은 <현구집>, <태화당 수세록> 등 방대한 양의 글을 썼다. 그가 쓴 책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입소문만이 선객들 사이에 나도는 은둔의 수행자다.


그 정원은 일우 선사(1918~1989)에게 출가한 유일한 상좌다. 일우는 선승들조차 아는 이가 거의 없다. 방장이나 조실은 커녕 주지 살이 한 번 한 적이 없고, 절 한 칸, 책 한 권, 법문 한 자 남긴 게 없다. 오직 그를 만났던 이들에게 소리 없이 불법의 인을 심어놓았을 뿐이다. 고교 시절 일우를 만나 발심하게 된 씨앗들이 바로 일년 내내 산문을 철폐하고 정진하는 조계종 특별종립선원 봉암사 선원장 정광 스님(63), 20여 년째 지리산 고지 상무주암에서 홀로 정진 중인 현기 스님(63), 그리고 정원 스님 등이다.


절 한칸·책 한권 안남긴 채… 조용히 입으로만 불법 설파
석달간 한숨 안자고 책 독파… 열반 땐 “할말 없다” 입 ‘꾹’


상무주암의 현기 스님은 일우에 대해 묻자 “그 분을 어떻게 알았느냐”며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평생 남 모르게 살다 가신 분이니, 그렇게 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더 이상 말문을 열지 않았다. 천하제일의 학식이었다고 할만함에도 열반 때 열반송을 묻는 이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입을 다문 일우였으니, 그럴 만도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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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도 그와 인연이 있는 선승을 통해 연락을 취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소식만을 전해주었다. 그렇지만 뜻이 있으니 길을 갈 밖에. 태화산의 한 골짜기로 접어들어 끝까지 오르니, 세속과는 다른 별천지다. 두레박처럼 둘러싼 산 가운데 아담한 대웅전과 서재와 잔디언덕과 연못이 한 폭의 그림이다. 평심사다.


“난 우리 스님(일우)하곤 달라. 말 귀도 못 알아듣는 놈들한테 말은 해서 뭐해” 그의 첫마디였다. 그를 종종 찾던 한 여신자가 “남편 사업이 부도나게 생겼는데, 어쩌면 좋으냐”는 물음에 “망할 것은 빨리 망해야지!”라고 했다는 정원에게 어찌 세간의 대접을 원할 것인가.


그의 불 같은 성정은 스승을 닮은 것이라고 한다. 정원이 일우를 만난 것은 18살 때였다. 불법을 알게 된 그가 도를 찾으러 노심초사하자 먼 친척이 일우를 찾아가 볼 것을 권했다. 일우는 부산 구포에서 다 쓰러져가는 초가의 방 한 칸에 머물고 있었다.


경남 진영에서 태어난 일우는 속리산 법주사 지산 스님에게 출가해 옛 고승들의 선어록을 파고 들었다. 일우는 않아만 있는 것(좌선)을 병신 짓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그는 석 달 간 아예 한 숨도 자지 않고 책을 볼만큼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정진력과 집중력을 지녔다.


일찍이 공부에 힘을 얻은 일우는 그 뒤부터는 산승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세속인도 아니었다. 그는 젊은 비구니와 살림을 차려 그처럼 세간의 초가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돈을 줘도 쓸 줄 모를 만큼 불법 외엔 세속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에 비구니에서 환속한 보살이 그 집에서 하숙을 쳐서 살림을 도맡았다. 일우는 세속에 나오기 전 절에 살면서도 출가 승려가 시줏밥을 얻어먹기 위해선 해야 할 기본적인 염불조차 못해 탁발 나가 밥도 얻어먹지 못했다고 한다.


머리도, 수염도, 손톱도 깍지않아, 답답한 보살과 제자들이 깎곤 했다. 그는 세수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씻지 않으면 때가 끼어 답답해서 어찌 사느냐”고 물으면 일우는 “먼지는 붙었다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답할 뿐이었다.


있던 제자도 도망갈 법한 그런 일우에 대해 정원은 한 번도 (스승으로서) 의심해 본적이 없고, 그를 보고서야 이 세상에도 ‘현묘한 도가 실재함’을 직감했다고 하니, 숙연이 아닐 수 없다.


일우의 목소리는 호랑이가 포효하듯 우렁차 100미터 밖에서도 뚜렷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일부 선승들만이 그를 알아보고, 통도사, 송광사 등 대찰로 그를 초청해 법을 들었고, 그의 초가를 찾아 법을 물었다. 당시 그와 당대에 알려진 고승들의 법문을 번갈아 들은 선승들은 양쪽을 유치원생과 대학원생 차이 정도로 비교하곤 했다.


그는 누군가 불법을 들으러 오면 하루고 이틀이고, 아예 잠도 자지 않고 법을 설했다. 그러면서도 불법을 벗어난 사담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원이 사는 이 곳에 일우가 열반 전 한 번 온 적이 있었다. 비둘기호를 타고 10시간 동안 온 일우는 밤 새 한 잠도 안 자고 정원에게 법을 설한 뒤 아침에 공양(식사)을 들고 다시 역을 향해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한 번 말문이 터지니 오줌 쌀 틈조차 주지 않는다. 그가 쥐어준 무려 4천여 쪽에 이르는 저서 석 질을 짊어지고, 다음에 또 만날 기약까지 하고 산문을 나서니 산문을 오를 때 ‘무거웠던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인가. 천근 같던 마음들도 일우의 몸에 붙은 한갓 먼지였던가.

천안/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은둔>(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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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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