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찾아서
나를 찾아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나를 극복하기도 하고, 더 큰 나로 나아가는 마당입니다. 명상과 고전, 영화에 대한 조현의 독특한 시각을 통해 관념의 성벽을 뛰어넘어 비상하려고 합니다.

빅토르위고의 유언장

조현 2013. 01. 03
조회수 24027 추천수 0


“신과 영혼, 책임감. 이 세 가지 사상만 있으면 충분하다. 적어도 내겐 충분했다. 그것이 진정한 종교이다. 나는 그 속에서 살아왔고 그 속에서 죽을 것이다. 진리와 광명, 정의, 양심, 그것이 바로 신이다. 가난한 사람들 앞으로 4만 프랑의 돈을 남긴다. 극빈자들의 관 만드는 재료를 사는 데 쓰이길 바란다. 내 육신의 눈은 감길 것이나 영혼의 눈은 언제까지나 열려 있을 것이다. 교회의 기도를 거부한다. 바라는 것은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단 한 사람의 기도이다.”




 빅토르위고(1802~1885)=프랑스의 작가, 시인. <레미제라블>, <노트르담의 꼽추> 등 수많은 문학작품을 남겼으며 자유, 정의, 인권,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투쟁한 인물로 걸출한 정치인이자 혁명가로 꼽힌다.


 1802년 프랑스 동부 브장송에서 나폴레옹 휘하 장군의 아들로 태어났다. 1817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콩쿠르에서, 1819년에느 투르즈의 콩쿠르에서 시부문 수상자가 되었고 그해 그의 형 아베르와 함께 낭만주의 운동에 공헌한 잡지를 창간했다. 


처음에는 가톨릭적이며 왕당파적 입장에서 쓴 시로써 재능을 나타냈다. 희곡 〈크롬웰〉(1827)의 서문에서 낭만주의 선언을 내걸고 고전주의 연극 이론에 도전하여 동인 '세나클' 일파를 이끌고 두각을 나타냈다. 그들은 1830년 〈에르나니〉 상연 때의 신구 양파의 다툼 이후 극단의 주도권을 쥐었다.


 1843년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은 그는 비탄에 빠져 그로부터 약 10년간 작품활동을 중단하고 정치에 관심을 쏟았다. 그러나 1851년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항거하다 브뤼셀로 피신한 뒤 도버해협 도서지방에서 오랜 망명생활을 했다. 그는 바람둥이였으나 <레미제라블>, <바다의 노동자>, <웃는 사나이>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망명 기간에 집필해 유럽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870년 보불전쟁이 발발, 나폴레옹 3세가 몰락하고 공화제가 성립되자 파리로 돌아왔으며 이후 빈민구제, 언론자유, 사형제폐지, 의무교육 등의 인권, 민주주의 옹호 운동을 폈다. 그는 당시 이미 유럽 통합을 부르짖었으며 오늘날 저작권에 관한 가장 중요한 협약으로 꼽히는 베른 조약을 만드는 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자유의 화신'이자 '공화국의 대부'로 칭송받았다. 그의 80세 생일은 임시 공휴일로 지정될 정도였다. 1885년 81세의 나이로 임종했을 때에는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졌으며 2백만명이 운구행렬에 함께 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