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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있는 병, 희망없는 병

오강남 2015. 03. 12
조회수 11756 추천수 0



아는 것이 병

-두 가지 무지(無知)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고 한다. 왜 아는 것이 병일까? 글을 아는 것은 아주 모르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데 왜 그럴까? 병이라니 일단 몸을 놓고 생각해보자. 몸에 아무런 이상도 없는데 이런 이상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거기에 신경을 써서 병이 생길 수도 있다. 또 몸에 좀 이상이 있을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의학 상식으로 섣부른 자가 진단을 하고 스스로 고쳐보겠다고 덤비면 큰일이다. 이럴 때 차라리 전혀 아는 것이 없으면 의사에게 가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몸이나 병의 문제만이 아니다. 인간사의 많은 경우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설익은 지식으로 마치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하는 착각이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한다. 이것은 사실 아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무지의 표현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했지만 나의 무지를 인정하는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이렇게 내가 뭔가 안다고 착각하는 무지는 결코 약일 수 없다.


socgreek.jpg

*소크라테스 동상. 사진 조현 기자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기나 그 당시 아테네 사람들이나 모두 무지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자기와 아테네 사람들과의 차이는 자기는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테네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무지에도 두 종류가 있다는 뜻이다. 하나는 무지하기는 하지만 자기의 무지를 알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지하면서도 그 무지를 모르는 것이다.


무지하면서도 무지를 아는 것은 희망이 있는 무지다. 자기의 무지를 자각하기 때문에 그 무지를 없애려고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참된 앎을 찾아 정진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이렇게 자기의 무지를 아는 것은 병이 아니다. 언제나 ‘마음이 가난한 자’의 태도를 가지고 새로운 빛에 스스로를 열어놓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의 무지함을 알고 이를 인정하는 무지는 사실 진리의 심오함과 인간이 지닌 생래적인 인식 능력의 한계성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에게나 찾을 수 있는 태도로서 중세 철학자 쿠자의 니콜라스(쿠자누스)는 이를 두고 ‘박학한 무지’(docta ignorantia)라고 하였다. 아인슈타인이 “내가 더 알면 알수록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고 한 것이나, 셰익스피어가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고 한 것, <도덕경>에서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知不知上)”이라고 한 것 등은 모두 이런 경지에 오른 사람이 하는 말이다.


한편, 무지하면서도 자기의 무지함을 모르는 것은 사실 ‘곱빼기 무지’로서 그야말로 희망이 없는 무지다. 극히 비생산적일 뿐 아니라 우리의 종교적 삶에 가장 치명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자기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부요하다, 나는 모자랄 것이 없다고 큰 소리를 친다. 진리의 다른 면, 혹은 더 깊은 면에 대해 자기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를 모두 틀린 것이라고 정죄한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도 않고 깊이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나 빛이 있어도 이를 거절한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성령을 거스르는 일’로서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에 속하는 것이다.


선(禪)에 대해 알 것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느 선사(禪師)를 찾아와 선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하였다. 그가 자기가 아는 것을 모두 털어놓으며 떠들고 있는 동안. 선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찻잔에 차를 따랐다. 차가 찻잔에 가득 차고, 드디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선사는 차를 계속 따랐다. 찾아온 손님이 차가 넘친다고 소리치자 선사는 드디어 말했다. “그대가 비어있지 않은데 내가 어찌 선에 대해 더 이상 말할 수 있겠는가?”


만약 지금 내가 “내 종교는 완전무결하다. 내 종교에서 말하는 것은 모두 진리다. 나는 모든 진리를 다 가지고 있다. 나는 모르는 것이 없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모두 진리에서 떠난 사람이다.” 하는 등의 생각을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있다면, 나는 나도 모르게 위에서 말하는 두 가지 무지 중 둘째 쪽 무지에 속해 있는 셈이다. 무서운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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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종교의 기존 도그마를 그대로 전수하는 1차원적 학자에서 벗어나 종교의 진수로 가기 위해 도그마를 깨는 것을 주저하지않는 종교학자다. 서울대 종교학과와 대학원, 캐나다 맥매스터대에서 공부했으며, 캐나다 리자이나대 비교종교학 명예교수이자 서울대 객원교수다. 저서로 <종교,심층을 보다>,<예수는 없다>, <종교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이메일 : hanispecia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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