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찾아서
나를 찾아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나를 극복하기도 하고, 더 큰 나로 나아가는 마당입니다. 명상과 고전, 영화에 대한 조현의 독특한 시각을 통해 관념의 성벽을 뛰어넘어 비상하려고 합니다.

[라다크·잔스카르 순례기] 파 묻어버린다는 스님의 협박은 자비였다

조현 2010. 08. 12
조회수 13048 추천수 0
<3> 5360m 창라를 넘어서
눈길 옆 바위 늑대같은 짐승 울음 장송곡처럼
고개 올라서니 되레 고산증 덜 해 ‘하늘 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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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무리였다. 등에서 열이 나서 일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 고산지대 순례를 떠나는 것은 미친 짓인지 몰랐다. 하지만 청전 스님의 독려에 따라 기어이 무리한 일정을 결행했다. 20여년 동안 매년 한 달 가량씩 라다크 오지를 순례하며 오지인들을 도왔던 청전 스님은 “이제 나이가 들어 순례를 계속하기 어렵다”면서 그만두기 전에 티베트 불교의 보고인 라다크와 잔스카르를 꼭 내게 보여주겠다면서 이번 순례에 초청했다.
 
 
순례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부터 몸이 말썽
 
하지만 제대로 된 순례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몸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6월 말 레 공항에 도착해 게스트하우스에 묵은 첫날부터 두통과 함께 구토가 시작됐다. 고산증세였다. 레의 해발은 3500m. 자동차로 가면 조금씩 높아지는 해발에 적응하기 때문에 고산 증세가 덜하지만 비행기로 고산에 곧바로 내리면 이런 고산병을 감수해야 한다. 더구나 몸 상태가 엉망인 가운데 순례를 감행했으니, 몸의 항거는 마땅한 것이기도 했다.
 
앞으로 레를 벗어나 떠나서 감행해야 할 순례길에 비하면 레는 천상일 터였다. 레는 라다크의 가장 큰 도시이기 때문에 아프면 약을 사먹을 수도 있고, 공항이 있으니 급하면 비행기를 타고 떠나면 된다.
 
외부에도 많이 알려진 레엔 티베트의 향기를 맡으려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이번에 순례한 오지들과는 달리 레는 라다크에선 가장 붐비는 곳이었다. 서구인들만이 아니라 요즘은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최근 유례없는 폭우(<히말라야에 최악의 물폭탄> 글 참조) 때도 100여 명의 한국 관광객들이 레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레조차도 우리나라로 치자면 군의 읍 정도 규모에 불과하다. 더구나 여름 4~5개월을 제외하면 가을부터 혹한으로 인해 길이 얼어붙어 레로 통하는 길이 봉쇄되기 때문에 항공편 외에는 대부분의 교통편마저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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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개월이 혹한, 대부분 길 끊겨

 
문명이 발달하면서 오지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지구상 그 어느 곳도 예외가 없지만, 이런 자연 여건 때문에 연중 외국인들이 찾기 어려운 곳이다. 공항이 있는 레는 길이 끊긴 동안에도 외부와 항공을 통해 교통이 가능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은 길이 끊기는 게 라다크의 상황이어서 노선버스가 있는 판공초 호수 같은 일부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외지인들이 자유스럽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또 대부분의 지역이 중국(티베트), 파키스탄과 접경 지역이어서 매번 입경 허가를 취득해야 한다.
 
내가 묵은 곳은 레 시내에서 골목으로 많이 들어간 한적한 곳에 위치한 쉘던 홀리데이 홈 게스트하우스였다. 나무를 찾아보기 쉽지 않을 만큼 사막화한 레에서 그나마 나무로 둘러싸인 집이었고, 100여 평 되는 앞마당 텃밭엔 상추와 쑥갓과 케일 등의 야채가 심어져 있어서 산소량이 한결 많은 듯한 느낌이 드는 그런 집이었다. 더구나 인심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끼니 때가 되면 텃밭의 야채를 뜯어 먹도록 했다. 매번 텃밭에서 야채를 뜯어먹는 것이 미안해 한번은 시장에서 야채를 사왔더니 안주인은 방까지 쫓아 올라와 “왜 그랬느냐”면서 “다음부터는 절대 사지 말고, 텃밭에서 얼마든지 가져다 먹어라”고 했다.
 
게스트하우스의 야채가 입맛을 돋궈주긴 했지만 고산증세가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마냥 게스트하우스에 눌러앉을 수만 없었다. 첫번째 순례길은 샤추쿨 사원이었다. 샤추쿨 사원에 가기 위해선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은 고개라는 창라를 넘어야 했다. 창라는 해발 5320m.
 

의약품 기다리는 오지 사람들 눈이 빠질 텐데…
 
순례 때마다 한국에서 보시 받은 의약품을 가득 싣고 가서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병에 따라 의약품을 나눠주는 청전 스님의 순례 일정은 이미 사원에 통보되어 있었다. 아파도 약 하나 먹을 수 없는 오지의 사원과 마을 사람들은 매년 청전 스님이 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래서 이미 인편을 통해 샤추쿨 사원에 가기로 한 날에 가지 않는다면 그곳 사람들이 고개가 빠질 것은 뻔한 일이었다.
 
구토와 두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보면서 청전 스님은 다른 일행을 향해 “조 기자는 포크레인으로 묻어버리고 가자”고 했다. 이곳까지 누구를 믿고 왔는데, 저토록 무자비한 말을 하다니! ‘원초적 언어’에 충실한 우리 사이에 못할 말은 없었지만, 아픈 사람을 두고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이 얼마나 자비스런 말인지 아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샤추쿨 사원이나 데키 사원을 다녀오는 순례길은 5천미터급의 고산을 넘는다지만 지프로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찻길이 있는 곳에선 몸이 아파도 지프가 실어다 줄 수 있다지만 찻길도 없고 오직 자신의 발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오지의 순례길에서 순례객이 자신의 몸을 챙기지 않으면 누구도 어떻게 해줄 도리가 없다. 그러니 자신의 몸 상태가 안되면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게 마땅했다. 숟가락마저 던져버리고 가고 싶을 만큼 지친 오지 순례길이다. 그러나 스스로 그런 상황을 터득하도록 무자비한 말로 마음을 다잡게 한 것은 어찌 보면 큰 자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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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유머 시리즈도 잠시뿐, 숨이 턱턱

 
청전 스님이 뭐라든 혼자 게스트하우스에 남아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3500m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몸뚱이를 이끌고 5300m 고지를 넘는다는 것은 미친 짓인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레에 도착한 지 3일만에 지프에 몸을 실었다. 몸의 고통을 잊게 하기 위해 청전 스님의 유머 시리즈가 터져 나왔다. 청전 스님의 유머에 잠시나마 ‘희박한 산소’에 대한 걱정을 잊기도 했지만, 고도가 조금씩 높아지면서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적응이 안된 상태에서 고도를 갑자기 높이면 폐기종으로 사망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왕 넘기로 한 고개라면 속히 넘었으면 좋으련만. 라다크의 고갯길은 그야말로 동물의 내장을 연상시킬 만큼 꼬부랑길의 연속이다. 위태위태하게 놓여진 산길을 길은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길인 것만 같다. 이토록 조급한 마음을 알아챈 듯 길가엔 ITBP(India-Tibet boundry police·인도-티베트 국경 경찰)가 써놓은 표지판이 큼직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Be Mr late than late Mr”(고인이 되기보다는 늦게 가는 사람이 되어라)
 
서둘러서 황천객이 되기보다는 늦게 가더라도 살아남는 게 최선이라는 경고 표지판이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눈길 옆 바위에서 늑대인지 개인지 모를 짐승이 마치 장송곡을 부르듯 울부짖고 있었다. 레를 출발한 지 한나절. 드디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다는 창라 고개에 도착했다. 한발 떼는 게 조심스러울 만큼 숨이 가빴지만 그래도 기뻤다. 그렇게 순례의 한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청전 스님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역시 나는 하늘에서 왔는가봐. 3500m보다 5000m에서 숨 쉬기가 한결 나으니!”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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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신이 버린 땅에서 만난 잃어버린 얼굴
   2.신비의 동굴호수
 3.5360m 창라를 넘어
 4.샤추쿨의 축제
 5.행복한 공동체 리종사원

  6.리종 린포체
  7.히말라야 최고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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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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