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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것들

휴심정 2015. 10. 06
조회수 8535 추천수 0


내가 모르는 것들



엄마는 요새 허리가 굽어졌다.

보폭도 좁아서 종종거리며 걷는다. 엄마와 보름달을 보러 공원에 가면서, 허리를 조금만 펴보시라고 애원 섞은 잔소리를 했다. 엄마는 길을 걷다 쇼윈도 같은 데에 자기 모습이 비치면 깜짝 놀라 허리를 펴보려 애를 쓴다고 했다. 허리를 잠시 폈다 다시 구부리며, “이제 이게 더 편하다” 하셨다.


함께 보름달을 한참 바라보며 서 있다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엄마가 내게 물었다. 소원을 비밀로 하고 싶은 나는 “엄만 몰라도 돼요”라고 말했고, 엄마가 빈 소원은 어떤 것인지를 여쭸다. “너는 알 수 없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가 저 멀리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말도 덧붙이지 못한 채, 여든의 엄마와 엄마 얼굴에 드리워진 달빛만을 바라보았다.


요즘 날씨가 딱 좋다는 내 말에, 새벽 여섯 시는 벌써 으슬으슬 추워졌다는 걸 알고 있느냐던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춥고 캄캄하다고. 새벽 여섯 시에 날마다 출근을 하는 친구의 얼굴도 ‘너는 알 수 없는 것’을 말해주는 표정이었다. 공감할 수 있다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는 어떤 얼굴. 나만 알고 있는 세계를 바랐고, 나만 알고 있는 세계를 가장 깊이 이해한 자가 되려고 애를 쓰며 살고 있지만, 나만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고 나만 모르는 것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단 걸 알아채며 살아간다.


내가 모르는 것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 나와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가위의 보름달을 바친다.


김소연 시인 /'김소연의 볼록렌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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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도그마의 감옥을 박차고 나와 깨달음과 행복을 위한 고무 찬양이 난발하는 곳, 그래서 더욱 알아지고 깊어지고 열리고 사랑하게 되고 행복해지는 곳, 단 1분도 쉬지 못하는 마음이 쉬는 곳, 잠시 뒤면 소란이 다시 몰려올지라도 1분만이라도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휴심정 休心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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