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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본능, 두려운 본능

최철호 2018. 0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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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고양이2-.jpg


강원도 산골에서 살다보니 많은 생명들과 함께 사는 즐거움이 있다. 새벽, 아침, 낮, 밤, 때에 따라 다양한 새 소리가 울린다. 딱따구리, 뻐꾸기, 부엉이, 물소리, 바람소리 어우러지면 평화의 기운이 감돈다. 메주콩, 고무마순 다 먹어 치우는 얄미운 고라니는 약해 보이지만 소리는 꽤 위협적이다. 처음 들을 때는 뭔가 엄청난 놈이 있나했다. 토종벌 키울 때는, 날아다니는 수많은 벌들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자연 속 생명들을 알아 갈수록 겸손하게 마음 비우고 살아야함을 깨닫게 된다. 집 지을 때는 생각지 못했는데, 새, 박쥐, 벌, 다람쥐들이 제 집처럼 여긴다. 


 진돗개 화랑이는 한 살도 되기 전 임신해 새끼를 낳았다. 영하 29도까지 내려간 추운 겨울, 밤늦도록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혼자 탯줄을 자르고, 새끼들 배설물을 핥아 먹으며 야생 동물로부터 보호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놀랐다. 사람들은 이미 스스로 아이 낳고 기르는 능력을 잃어 가는데, 화랑이는 생명을 낳고 살리는 본능을 잘 보존하고 있었다. 아내 도움으로 임신 출산 과정에 도사린 폭력문화를 알게 되었고, 출산을 부모와 아기가 함께 만드는 평화로운 사건으로 회복시켜야 함을 배운 적이 있다. 그 때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꼈는데, 화랑이 출산을 보며 그 감흥이 다시 살아났다. 


 화랑이가 산책 간 사이 새끼 한 마리를 잠시 다른 곳에 두었다. 기분 좋게 산책 다녀 온 화랑이는 집과 마당을 두리번거리며 당황해 했다. 불안한 기색으로 여섯 새끼들을 집 안에 물어넣고, 우리 눈을 쳐다보고 낑낑거리며 새끼를 찾았다.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지만, 이 모습 또한 놀라웠다. 어떻게 알았을까? 어떤 수 관념이 있는 걸까? 이런 질문 자체가 사람이라는 존재가 지닌 편견이겠지!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데, 개나 사람이나 똑같다. 비가 많이 오면 우울한 눈빛, 집 지키느라 고생한 날에는 생색내는 눈빛, 산책이라는 말이 나오면 선동하는 눈빛이 된다. 

홍천1-.JPG » 강원도 홍천 밝은누리공동체

    

 화랑이와 마을에 있는 삼일학림에 산책 갔다가 일이 생겼다. 학림에서 키우는 고양이집을 지나다 서로 화들짝 놀랐다. 고양이가 키우게 된 후, 화랑이를 데리고 학림에 산책간 적이 없어서 나도 깜박했다. 모두 생명평화 순례를 떠났고 나도 내일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두고 가면, 화랑이한테 닭들도 성하지 못할 텐데!  도망갔던 고양이가 돌아 왔는데, ‘살금살금’이 뭔지 제대로 봤다. 화랑이와 고양이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본능이니까 존중하지만, 순간 미워지고 내 마음은 평화가 깨졌다. 


 뒷간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오니, 화랑이가 사랑채 앞 나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나무 위로 도망간 고양이 주위를 맴돌고 있는거다. 고양이를 잡고 싶은 본능에 충실하다 나에게 잡혔다. 나와 고양이는 평화를 회복했지만, 화랑이는 잠시 자유를 잃었다. 평화는 고정된 어떤 상태가 아니라 과정인 듯하다. 서로 다른 생명이 때에 맞게 곱게 어우러지는 과정이 평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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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호
1991년 생명평화를 증언하는 삶을 살고자 ´밝은누리´ 공동체를 세웠다· 서울 인수동과 강원도 홍천에 마을공동체를 세워 농촌과 도시가 서로 살리는 삶을 산다· 남과 북이 더불어 사는 동북아 생명평화공동체를 앞당겨 살며 기도한다· 청소년 청년 젊은 목사들을 교육하고 함께 동지로 세워져 가는 일을 즐기며 힘쓴다.
이메일 : suyu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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