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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 실린 칼럼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하네요.
 
 
 
 
 
 
[세상 읽기] 우리 이대로 괜찮은가요 / 김여진
 
등록 : 20110818 19:01 | 수정 : 201108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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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여진 연기자
그녀의 얘기를 쓰려고 합니다. 무척 망설였습니다. 나의 이야기이고, 함께하는 동료이자 선후배의 이야기입니다. 몇 번을 도망가자, 침묵하고 넘어가자, 속으로 다짐했던 주제입니다. 네, 한예슬씨, 아니 그녀로 인해 불거진 우리의 얘기입니다.
 
 

자세한 건 잘 모릅니다. 당사자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현장 분위기가 어땠는지 들은 얘기도 없습니다. 방송사의 입장 발표와 스태프들의 성명을 봤을 때 느낀 인상은 그냥 보통의 미니시리즈 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주 5일 촬영이라면 그 5일은 그냥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는 거죠.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70분짜리 드라마 두편, 꽤 긴 영화 한편 분량을, 서너달씩 찍는 그 분량을 닷새 만에 찍는 거니까요. 주연배우는 거의 모든 신에 등장하니 5일 중 4~5일을 밤새우며 찍는다고 할 수 있고 조연배우들은 좀 낫습니다. 대신 현장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 길죠. 가장 힘든 건 감독님과 스태프들입니다. 그 모든 촬영을 다 해야 하니까요. 그야말로 초인적인 버티기입니다. 꼭, 누구 하나 다치거나 사고를 당하곤 합니다. 작가는요, 사람의 머리라는 게 기계도 아니고 책상 앞에 아무리 앉아 있다 한들 일주일에 대본 두 개씩이 쉽게 나올까요? 시간에 쫓기고, 매주 성적표처럼 받아드는 시청률에 목이 조이면서, 사람들을 울리고 웃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게 결코 녹록한 일은 아닐 겁니다.

 

 

여기서 그녀 한예슬씨, “열악한 제작환경”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촬영 거부를 택했습니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제일 먼저는 방송 펑크에 대한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상처도 염려되었습니다. 그 현장에서, 주연배우와 그 외 다른 배우·스태프들이 그 힘든 노동을 하고 받는 대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큽니다. 가장 오래 일하고 가장 적게 대가를 받는 사람들, 그래서 배우들은 어떤 불만이 생겨도 그 현장을 떠난다는 걸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현장의 스태프들은 간혹 바뀌기도 합니다. 너무 힘이 들어, 불화를 이유로 그만두는 경우가 분명 있지만, 이런 경우 별 티도 나지 않게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지요. 게다가 스태프들은 전부 비정규직이며 계약직입니다. 노조를 만들고 부당함에 저항하기란 쉽지 않은 조건입니다. 전 그래서 한예슬씨의 행동이 가지고 온 파장에 대해서 조금은 안도하는 기분이 듭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톱스타이며, 드라마 현장의 가장 큰 권력자인 ‘여주인공’이 그와 같은 강수를 둔 것이요. 스태프였다면, 감독이나 작가였다면, 조연배우였다면, 지금처럼 얘기될 기회조차 없었을 겁니다.

 

 

“시청자와의 약속” “프로 배우로서의 자세” “받는 돈이 얼만데…” 그 모든 비난을 몰랐을 리 없는 그녀입니다. 돌아와 현장 스태프와 동료 연기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그래도 자신이 한 행동에 어느 정도는 옳음이 있다고 믿는다고, 그 흔한 눈물 한방울 보태지 않고 얘기하는 그녀를 보며 조금은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울며불며 잘못했다고, 자신이 어리석었다고만 말했다면, 저는 같은 연기자로서 함께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야 했을 겁니다.

 

 

사흘씩 잠을 못 자 구석에서 소리도 못 내고 울던 아역 연기자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자신의 꿈이기 때문에,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 밤에는 잘 권리를 그 어린 나이에서부터 당연히 포기하는 그 마음은 대견해도, 엄연한 아동학대를 미화할 순 없는 겁니다. 누구를 탓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 부디 얘기해 봅시다. 우리 이대로 정말 괜찮은가요? 한 사람을 비난하고 사과받고 욕하는 것으로 끝내도 될 만큼, 우리 모두, 괜찮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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