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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47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9-2.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須陀洹名爲入流, 而無所入. 不入色聲香味觸法. 是名須陀洹.”

9-2.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까? 수다원을 이름하여 ‘들어간 자’라 하지만, 그는 들어감이 없습니다. 그는 형체에도, 소리에도, 내음새에도, 맛에도, 만져지는 것에도, 마음의 대상에도 들어간 적이 없기 때문에만 수다원이라 이름할 수 있습니다.”

[강해] 수다원이 수다원일 수 있는 것은 평화로운 수도의 생활에 들어갔기 때문에가 아니다. 어느 곳에도 들어감이 없기 때문에 수다원인 것이다. 이 分에서 깨고자 하는 것은 모든 수도인들의 자의식이다. 수행의 모든 단계에서 생겨나는 자의식을 모두 깨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 세존이 언제 가면 안 되는 수다원으로 들어가겠다고 하기라도 했다고 수보리가 ‘아니되옵니다’라며 주상의 행위를 극구 말리는 충성스런 신하 투의 말로 이 분절을 해석하는가. 더구나 入流를 ‘들어간 자’라하며 이 자가 ‘색성향미촉법으로 들어간 적이 없기 때문에만 수다원이라 이름할 수 있다’는 해괴한 해석은 참말 해괴하기만 하다. 분명, ‘아니되옵니다’와 ‘아니옵니다’는 전혀 다른 말이다. 수보리는 수다원이 실재의 실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금강경은 누차 말하지만 세존이 색성향미촉법으로서의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인 삼천대천세계가 진리의 진실이라는 이 금강의 까닭을 설명하는 말이다.

수다원이란 말의 뜻이 뭐든지간에 이 수다원이라는 이름으로서의 관념적 부동의 생각은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는 것(無所)으로써 다만 이 이름의 뜻으로 작동하는 시·공간적 실제를 표상한 말이다. 이 수다원이라는 인간의 관념은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는 생각으로써, 인간성으로 작동하는 육근의 相對인 색성향미촉법이란다면, 이 중에서 어떤 하나의 相일지라도 이 수다원이라는 실재의 실체로 들어가거나 나온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 색성향미촉법이 이 수다원으로써, 이 수다원이라는 관념적 부동태며 실제 시·공간적 작동성으로 작동하는 이 보리살타의 如來를 표상한 이름임을 수보리는 세존에게서 듣고 안대로 말하는 것이다.

수보리가 말했다. “아닙니다. 세존. 왜냐면 수다원은 흘러들어가는 작동을 이름한 것이므로 흘러들어간 실재의 실체랄 것은 없습니다. 색성향미촉법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실재의 실체랄 것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 작동하여 흘러들어가는 이 입류작동으로서의 지혜인 보리살타(是)를 이름하여 수다원이라고 하는 거죠.”

필자의 해석이 지나친 견강부회의 말이라고 한다면 본절의 문장에 ‘실재의 실체’라던가 ‘보리살타’란 말 따위가 실제로 없기 때문에 딱히 반박할 말은 없다. 다만 구태여 불교의 이 금강경이 있는 까닭이 이 수다원뿐만 아니라 어떤 말이란 대도 오직 이것이 부처며 금강임을 바르게 보라는 손가락질이므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올의 이 분절에 대한 애매한 해석이며 엉뚱한 설명의 [강해]도 이런 뜻의 말이란다면 비록 진리의 진실을 애매하고 엉뚱하게 한 말이란 대도 진리의 진실이므로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도올이 ‘이 分에서 깨고자 하는 것은 모든 수도인들의 자의식이다. 수행의 모든 단계에서 생겨나는 자의식을 모두 깨버려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해 구태여 불교의 이 금강경이 선 까닭을 공부하는 수행인으로써의 수도인이랄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으로 말하는 건, 석가여래가 이 사향사과를 말하는 진정한 뜻을 모른 말이다. 석가여랜 설령 자신이 말한 뜻을 알려고 공부하는 이들이 따로 떼거지로 있다손 치더라도 이런 이 수도인들의 공부성과 정도를 이 사향사과로 말한 것이 아니다. 오직 인간의 육근에 비쳐지는 이 색성향미촉법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온통 自意識으로써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으로 드러난 선정지혜의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이 부처며 금강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태여 ‘깨버려야 할 자의식’이라며 ‘안 깨버려야 할 자의식’과 논쟁할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깨버리고 자시고 하라고 논쟁하는 도올보살의 말은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담은 이 보리살타의 여래를 말한 말이 아니다. 아무리 석가여래가 인간의 윤리를 말하고 이 人間中의 뭔 수도인들의 윤리를 말했단 대도, 이는 보리살타로써의 여래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의 세계,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이 삼세가 진리의 진실임을 이 윤리로 통찰한 한 통찰로써의 진리의 진실인 것이다. 이 금강경은 도올이 생각하여 말한 이 ‘깨버려야 한다’는 이런 모든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인 이 생각이며 말의 법이 곧 보리살타의 여래인 이 금강임을 바르게 보라는 통찰의 경이다.

도올이 뭔 ‘수도인들이 수행의 모든 단계에서 일어나는 자의식을 깨버려야 한다’고 말해 어떤 특정의 것을 공부하는 이들이 갖춰야 할 의식, 관념, 생각 따위의 윤리로 이 분절을 엉뚱하게 말한단 대도, 이 말의 진짜까닭을 끝에 붙였다면 도올은 이 금강의 반야바라밀인 여래로서의 보리살타를 말한 보살님일 테지만, 이 이는 이를 엉뚱하게 말한 보살님이다.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9-3. “須菩提! 於意云何? 斯多含能作是念, 我得斯多含果不?”

9-3. “수보리야! 네 뜻이 어떠하뇨? 사다함이 ‘나는 사다함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해서야 되겠느냐? 아니되겠느냐?”

9-4.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斯多含名一往來, 而實無往來, 是名斯多含.”

9-4.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사다함을 이름하여 ‘한번 왔다 갔다할 자’라 하지만, 그는 실제로 왔다갔다 함이 없기 때문에 바로 사다함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강해] ·····. 사다함? 하늘과 땅을 이제 단 한번만 왔다갔다 할 자라구? 우리 이제 대승들은 그러한 신화적 상상력의 단계에 머물러 우리 존재를 규정짓는 바보짓을 하지 말자! 사다함이 사다함일 수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왔다갔다함이 없기 때문이다.

--- 수다원은 색성향미촉법 어디에도 수도자로써의 내가 들어간 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또 여기 사다함이란 자는 ‘한번 왔다 갔다할 자라 하지만, 그는 실제로 왔다갔다 함이 없기 때문에 바로 사다함이라 이름하는 것’이라는 도올의 이 생각의 말은 이 四向四果를 선정지혜 곧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이 관념적 부동태로써의 선정인 四果이며 실제 시·공간적 작동의 지혜인 四向으로써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라고 생각한 말이 아니다. 또 뭔 대승들로써의 따로人들이랄 것이 있단다고 ‘우리 이제 대승들은 그러한 신화적 상상력의 단계에 머물러 우리 존재를 규정짓는 바보짓을 하지 말자!’고 말해 사람성품으로써 마땅한 이 사향사과의 삶을 ‘신화적 상상력’이라고 생각하여 말하는 건 그렇다 치자. 그러나 이런 생각의 말을 하는 자신이 곧 이런 ‘신화적 상상력’의 보리살타임을 모르고 이 ‘신화적 상상력’의 보리살타 단계를 벗어나 이런 수다원이며 사다함 따위의 자의식을 깨버려 이런 의식작동으로 오고 감이 없는 해괴한 사람성품이 되자고 해괴하게 규정짓는 바보보살 짓을 한단 말인가. 대체 이런저런 이 삶의 내가 진리의 진실이 아니면 뭐가 진리의 진실이란 말인가? 혹 석가여랜 연기의 실상을 깨달은 이지 진리의 진실을 깨달은 이는 아니란 말인가?

9-3. 세존이 또 묻는다. “수보리야, 뜻으로 말한다면 사다함이라고 이미 지은 이 관념의 생각은 무엇이냐? 이를 생각한 내가 사다함이라는 실재의 실체랄 果라는 걸 얻었다는 것이냐?”

9-4. 수보리가 말했다. “아닙니다, 세존. 왜냐면 사다함은 一往來로써의 보리살타인 지혜작동을 이름한 것이므로 실재의 실체로써의 往來라는 實이랄 것이 없는 왕래작동을 이름한 것이 이 사다함인 것이지요.”

사다함이란 말이 一往來란다면 이는 오직 이 하나인 보리살타로써의 왕래작동인 지혜의 반야바라밀을 말한 것이다. ---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9-5. “須菩提! 於意云何? 阿那含能作是念, 我得阿那含果不?

9-5. “수보리야! 네 뜻이 어떠하뇨? 아나함이 ‘나는 아나함의 경지를 얻었노라’하는 이런 생각을 해서 되겠느냐? 아니 되겠느냐?”

9-6.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阿那含名爲不來, 而實无來. 是故名阿那含.”

9-6.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아나함을 이름하여 ‘이제 다시 아니올 자’라 하지만, 실제로 온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만 아나함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강해] 우리 해인사本에 “實无來”로 되어 있는 부분이 明本에는 “實無不來”로 되어 있고, 세조본도 明本을 따랐다. 우리나라 시중 통용본도 한결같이 “無不來”로 되어 있다.

언뜻 보기에는 아나함이 不來의 뜻임으로 그것의 부정은 “無不來”가 되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문에서 “無不來”라고 하면 그것은 이중부정이 되어, “오지 않음이 없다,” 즉 “언제고 온다”가 된다. 근본적으로 “不來”라는 개념의 부정이라는 맥락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羅什은 “無來” 즉 온다고 하는 것 그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다시 아니올 자”라고 하는 개념을 파기시켜 버린 것이다. 이러한 깊은 뜻을 모르고 그것을 “無不來”로 고치는 것은 옛사람 등, 특히 교정을 좋아하는 小學家들의 천박함에 지나지 않는다. 六祖의 주석에도 “故名不來, 而實無來”라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六祖가 본 금강경 판본에는 “無來”로 되어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 해인사 판본의 우수성이 이런데서 입증되는 것이다. 大正本은 바로 우리 고려본을 따랐다. 따라서 나까무라도 이 부분을 “無來”로 바르게 번역했는데, 이기영은 또 이 부분만 “無不來”로 원문도 고치고 번역도 그에 따라 했으니 도무지 그 일관성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도 이 대목에서 깜박하셨거나 아무 생각없이 통용본을 베끼신 것 같다.

--- 세존이 묻는다. 9-5. “수보리야, 뜻으로 말하면 이미 아나함이라고 지은 이 생각은, 내가 실재의 실체랄 아나함이라는 果를 얻었다는 것이냐, 아니냐?”

9-6. 수보리가 말한다. “아닙니다, 세존. 왜냐면 ‘오지 않는다’라는 이 작동의 이름이 아나함이므로 실재의 실체로써의 아나함이라는 實로 내게 오는 것이랄 게 없는 겁니다. 이런 까닭의 ‘오지 않는’ 지혜작동을 이름하여 아나함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이 금강경이 만들어 질 당시의 사향사과에 대한 인식이 여기 도올과 같지는 않지만 돌올한 부도로 서서 뭇사람들의 공경을 대단 받고 있었나 보다. 그저 하나의 果向이 진리의 진실임을 밝히면 되지 네 가지 다 일일이 거론해 이를 밝히는 걸 보면 이 논리가 에지간히 권력화 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 여기 도올이 이미 죽은 이들을 함부로 말하는 건 살아있는 자로써의 권력농단이기 십상이다. 죽은 이들이 무덤에서 깨어 일어나 ‘몰라도 엔간히 모른 얘기를 하라’고 면박할 일이 없으니 저들의 말을 함부로 농단하는 보살님이다. 도올은 당근 보살님임이 맞다. 도올의 이 말이 설령 저들을 농단한 말이란 대도, 이 농단은 저들을 넘어 육조를 넘어 구마라집을 넘어 달마를 넘어 석가여래를 넘어 중중무진의 시·공간을 넘는 이 농단작동의 지혜인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인 진리의 진실이다.

이 금강경이 일어설 당시의 사람들이 이 사향사과의 관념적 부동태로써의 선정에 사로잡혀 이를 실재의 실체로 알았단 대도, 이게 아니라 석가여래를 따라 이것이 실제 시·공간적 상대로써의 인식이며 허상의 관념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반야로써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임을 알았단 대도, 또 여기 도올처럼 이 ‘사향(수다원 등)의 발심(向)을 가진 자가 사과(수다원 등, 결과로써의 경지)를 획득했다할 때, 우리는 그 획득함을, 획득했다하는 자부감대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9-1 후미)라고 애매한 의문으로 알아 말한단 대도, 이 사람들의 이 생각이며 말은 오직 이 생각이며 말의 지혜로 작동하는 보리살타로써 진리의 진실이다.

이쯤이면 눈치 챌 것이다. 이 아나함이란 말의 이 생각이 ‘不來’란 대도 ‘無不來’란 대도, 오직 이것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보리살타이지, 이 부동의 관념이 실재하는 실체랄 것이 없는 것임은 금방 알 수 있는 것임을.

이 금강경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문자 그대로는 구태여 불교의 이 금강경이 선 까닭으로써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물론 그게 궁금한 이들이 그걸 궁금해 하는 일이야 본인의 절대자유의지로서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니 하라 마라할 일은 아니지만, 이 금강경의 원형이 확실해야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이 금강인 석가여래의 깨달음으로 생긴 생각이긴 하지만 이와는 아득한 연기의 실상이다. 아나함이라는 말의 뜻이 ‘不來’란 대도 ‘無不來’란 대도, 오직 이 금강인 연기의 실상임을 바르게 보시라. 그리고 ‘無不來’라는 한문문장을 도올이 말하는 대로 꼭 “오지 않음이 없다”로 풀어서 “언제고 온다”라는 뜻으로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이 말은 ‘오지 않을 것이랄 게 없다’로 풀어 “언제고 온다”가 아니라 ‘모든 무엇으로도 온다’로 이해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이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의 지혜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므로 이 모든 성품의 삶이 어떤 성품의 삶으로도 작동해 오지 않을 것이랄 게 없는 완전 자유며 평화며 자비며 사랑임을 설명한 말로 바르게 보아야 한다.

아나함이란 말의 뜻이 무엇이건 간에, 중국인들이 푼대로 ‘不來’나 ‘無來’란 대도, 이를 도올의 주장대로 ‘온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실재하는 실체로 아는 건, 대체 아나함 따위 사향사과라고 생각한 이 말은 뭐하러 생겨난 생각이란 말인가? 이 사향사과는 거듭 말하지만 이것이 사람 삶으로써 무엇을 생각하여 말한 거라면, 이는 오직 이 생각의 삶을 사는 이 작동의 지혜인 보리살타의 여래를 이름한 선정이다.

이 금강경이 일관되게 거론하는 건 오직 한 이치로 모든 일을 꿰뚫은 통찰로써의 이 一貫의 금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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