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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금강경 오해 49

일반 조회수 1156 추천수 0 2018.02.18 13:13:31

도올의 금강경 오해 49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9-9. 世尊! 佛說我得無諍三昧人中, 最爲第一, 是第一離欲阿羅漢. 我不作是念, 我是離欲阿羅漢.

9-9.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제가 무쟁삼매의 사람중에서 가장 으뜸됨을 얻었다고 말씀하시니, 이는 욕심을 떠난 제일의 아라한이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욕심을 떠난 아라한이다라는 이같은 생각을 짓지 않습니다.

[강해] “無諍三昧人中最爲第一”의 원문은 “arana-viharinam agryah”이며 그 뜻을 직역하면, “다툼이 없는 상태에 머무는 사람”이다. “다툼이 없다”는 것은 나 이외의 인간들로부터의 온갖 모욕과 박해와 비난, 그리고 外道로부터의 비판에 대해 더불어 싸우지 않는다는 의미도 되지만, 내면적으로는 모든 감정이나 오염에 물들지 않는 마음의 평화(dwelling in peace, 콘체 역)와 순결(purity)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것은 수보리가 속세로부터 은퇴하여 깊은 숲속에서 홀로 살면서 마음의 평정과 평화를 즐겼던 사람이라는 뜻도 된다. 바로 이런 뜻이 최후의 일절에 나오는 “樂阿蘭那行者”의 의미와 결부되어 있다.

--- 無諍三昧人中最爲第一란 말을 도올이 해석한 대로 “다툼이 없는 상태에 머무는 사람중에서 으뜸됨”이라고 해석하는 게 문법적 해석으로 올바른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역시 이 금강경을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윤리서로만 보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유의 말이다. 도올은 四相으로 보자면 중생·수자는 그만두고 我·人相에 사로잡혀 집착하는 사람이다.

무쟁삼매란 말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석가여래의 깨달음이라는 이 올바른 뜻을 格義한 말이다. 즉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로써 총체적 인연·인과의 지혜로 작동하므로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완전 자유며 평화며 자비며 사랑으로 작동하는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인 부처이니 뭔 다툼이랄 것이 있을 것인가. 없다. 다시 말하면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은 보리살타로써 진리의 진실인 부처이므로 이 진리의 진실인 부처네 아니네로 다툴 것이 없는 완전 이 무쟁에 빠져 작동하는 보리살타의 부처라는 뜻을 이른 말의 格이 無諍三昧라는 말이다.

이 삼천대천으로서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삼세의 세계를 통관하는 이 진리의 법을 단지 인간의 윤리의 법으로만 이해하는 건 완전 소승적 견해이다.

저 신라 원효의 和諍은 이 무쟁의 반어적 표현이다. 즉 뭔 다툼이 없는 무쟁삼매의 경계가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의 열반적정이라고 오해하여 이 다툼을 없애야만 한다고 아는 이들이 있어, 이게 아니라 활발발하게 작동하는 和로써의 이 다툼의 지혜가 곧 보리살타의 여래임을 말한 것이다. 즉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은 총체적 인연·인과로 활발발하게 다툼작동을 하는 이 화쟁의 지혜로 사는 삶의 보리살타이므로, 어떤 성품의 삶도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어 이 실재의 실체로 다툴 것이 완전 없는 이 무쟁의 삼매, 곧 보리살타의 부처임을 말한 것이다.

절집의 법당을 장엄하는 불상이며 불화의 부처에게 後光이 있는 까닭은 이것이다. 후광이 뭔 깨달은 자에게서 나오는 빛이나 法悅 따위라고 아는 건 오해다. 후광은 속칭 뒷배, 빽이다. 부처는 이 보리살타라는 빽이 있어서 이에 의해서 탄생하는 것임을 표상한 그림이다. 어린애는 엄마가 빽이다. 이 금강경에 흔히 등장하는 實이란 말도 이를 표상한 말이다. 실의 열매는 씨앗의 새끼와 이 씨앗을 둘러싼 엄마의 과육으로 형성된 것이다. 씨앗은 과육에 둘러쌓여 보호를 받다가 이 보호를 영양분으로 먹고 자란다. 씨앗은 부처며 과육은 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인 후광, 뒷배다.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은 이 이치로 작동하는 삶임을 표상한 말이 보리살타의 반야바라밀이며, 이를 표상한 그림이 불상이며 불화이다. 그럼, 후광이 없는 불상이며 불화는 뭐냐고? 그 후광은 그 불상과 불화를 에워싸고 있는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 곧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삼세다.

늘상 그렇지만 북한정권이 핵무장을 한 특히 요즘 한반도 정세가 심상찮게 전개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무쟁삼매를 단순히 인간의 삶의 윤리로만 알아, 오늘날 한반도 핵전쟁위기가 남북의 문제가 아니라 북·미의 문제로 호도하며 이 원효의 화쟁정신으로 이 난국의 다툼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목청을 돋운다. 마치 이 화쟁법이 인간의 윤리적 평화의 삶을 해결할 수 있는 법인 것으로 말하는 건, 이는 진리의 진실인 화쟁론을 흉내 내 따르는 것일 뿐이지, 이 화쟁논을 올바르게 이해한 말은 아니다.

원효가, 석가여래가, 예수가 진리의 진실을 깨달아 말한 이들이라면 이들이 말한 이 화쟁론을 디리대면 금방 이런 인간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진리의 진실인데, 당장 해결되어야 하지 않는가? 안 된다. 그럼, 무쟁이든 화쟁이든 보리살타든 진리의 진실이든 이게 인간의 삶과는 아무 관계가 없단 말이냐구? 없다! 다만 인간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생각하게 하는 이것을 이름하여 무쟁·화쟁이니 부처·보살이니, 진리·진실이니 하는 하나의 이치, 논리를 그들은 생각하여 말한 것일 뿐이다. 사람들이 전쟁을 하든 평화롭게 살든 이건 사람성품의 절대자유의지로써의 보리살타인 이 진리에 의한 진실의 삶이므로 이는 오직, 완전 자유며 평화며 자비며 사랑으로써의 사람의 삶일 뿐이다. 저기 어디 따로 있는 보살님이, 부처님이, 하나님이 주재하는 일이라고 남탓하지 마시라. 오직 내탓이므로 살맛나는 이 삶이다. 이 금강경은 이를 말하는 금강이다. 스치는 한 점 바람결도 자신의 이 절대자유의지의 삶이거니, 이렇지 않다면 대체 사람 삶이 넘 쪽팔리지 않겠는가? 헐!

그러므로 이 말을 도올처럼 해석하고 이해하는 건 구태여 ‘무쟁삼매’란 말이 대승임에도 불구하고 소승이라고 말하는, 누구 말마따나 喚鐘作瓮, 종이라고 소리쳐 종을 만들라 했는데 항아리를 만드는 꼴이랄 수밖에 없다.

본절의 범어원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도올처럼 해석하고 이해하는 건 이 금강경의 금강을 말한 말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소위 僞經이란 수많은 경전들 앞에 붙은 佛說이란 말을 ‘석가여래가 말했다’라고만 이해하여 해석하는 건 노상 맞는 해석은 아니다. 가령 ‘佛說父母恩重經’이란다면, 부모님 은혜가 무거움을 석가여래가 직접 말한 거라고, 석가여래를 내세워 짝퉁의 유교권력에 빌붙어 살려고 아부한 말로만 이해하는 건, 부처가 부처라는 개념의 법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보리살타임을 모른 허접이다. ‘佛說父母恩重經’이란 말은 ‘부처가 부모와 같은 恩惠의 지혜로 거듭 작동하는 보리살타임을 설명한 경’, 즉 부처라는 말에 실린 석가여래의 깨달음을 설명한 경이란 것이다. 곧 우리가 알고 있는 무상의 부처가 실재의 실체랄 것이 아니라 실제 시·공간적 지혜로 작동하는 中道임을 말하는 것이다. 부처나 보살은 다만 사람의 관념적 부동태인 선정으로써 이 선정으로 작동하는 지혜, 곧 반야바라밀임을, 이 연기의 실상임을, 진리의 진실임을 모든 경전은 설명하는 이 금강으로써의 부처며 선으로 서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이 佛說我得無諍三昧人中最爲第一이란 문장은 佛說我得無諍三昧, 人中最爲第一이라고 띄어 이해해야 맞다. ‘부처는 나를 무쟁삼매의 보리살타의 나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사람성품의 삶은 이 무쟁작동 중의 지혜삼매인 보리살타의 부처이므로 최고의 으뜸입니다.’라고 풀어 뒷말을 이해해야 저 석가여래의 깨달음에 가까운 이해의 말이 된다.

수보리는 이렇게 이미 앞에서 세존이 말한 진리의 진실에 대한 설명을 상기시키며 이 아라한이라는 이름의 진실이 진리의 법임을 말하는 것이다.

世尊 佛說我得無諍三昧 人中最爲第一, 是第一離欲阿羅漢, 我不作是念, 我是離欲阿羅漢. ‘세존께서 부처는 내가 무쟁삼매인 보리살타의 여래로 얻어진 나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사람 삶은 이 무쟁작동 중의 지혜삼매인 보리살타의 부처이므로 최고의 으뜸입니다. 이 사람이라면 이 제일을 욕심내는 삶의 아라한입니다. 그러나 이 아라한의 나는 이 아라한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이 생각입니다. 나는 이 아라한이라는 생각을 욕심내는 삶의 아라한입니다.’

여기서의 我를 수보리 자신만을 지칭한 거라고 보는 건 속 좁은 소견이다. 저 天上天下唯我獨尊의 我와 같은 아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여기의 이 나라는 독립적 개체를 지칭한 말이 아니라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중중무진의 시·공간, 곧 삼세로써의 모든 성품인 이 삼천대천세계를 일컬은 말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人中은 단지 ‘사람들 가운데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성품의 삶’이라고 보아야 한다. 中은 心으로써 총체적 작동중의 무쟁삼매인 이 보리살타를 격의한 말이다. 즉 사람은 中·心인 이 사람 삶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보리살타인 부처이므로 무상최고의 제일이란 것이다. 또 離欲은 뭔 ‘욕심을 떠나다’란 단순한 뜻이 아니라 욕심이라는 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작동의 삶을 표상한 말이다. 離란 말은 하도 많은 뜻이라 그냥 이런저런 작동의 삶을 표상한 말이다. 욕심이라는 인간의 한 속성을 말해 이 아라한이라는 뭔 의미를 욕심내는 이 지혜작동의 삶을 일컬은 말이다.

아라한이 천체물리학박사란다면 어떤 사람이 천체가 제일로 절실히 궁금하여 열나게 연구해서 알기를 희망하는 건 사람 삶으로써 마땅한 무쟁삼매의 보리살타로써 진리의 진실이다. 또 뭔 욕심을 없앤 맘의 평화랄 게 어디 있어, 이런 평화의 맘을 가진 자가 뭔 순결한 인간일 것이란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생각의 순결한 평화를 즐겨야한다고 욕심내는 건 인간성품으로써 마땅한 삶이다.

천체물리도, 평화도, 순결도,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은 온통 진리의 진실이므로 이 진리의 진실인 인간이 이 진리의 진실을 흉내 내는 이 삶은 마땅히 진리의 진실이다.

도올은 이 사람의 일만을 바라보지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저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나를 바르게 알아보지를 못하고 인간의 평화며 순결을 위하여 뭔 다툼 따위가 없어야 한다는 인간의 윤리로만 이 분절을 생각하여 말하는 건, 구태여 이 금강경이 선 까닭을 오해한 말일 밖에 없다.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9-10. 世尊! 我若作是念我得阿羅漢道, 世尊則不說須菩提是樂阿蘭那行者. 以須菩提實無所行, 而名須菩提是樂阿蘭那行.”

9-10.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라는 생각을 했다면, 세존께서는 수보리야말로 아란나의 행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수보리는 실제로 행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곧 수보리야말로 아란나의 행을 즐긴다고 이르신 것입니다.”

[강해] 여기 “阿蘭那의 行을 즐기는 자”(arana-viharin)라는 표현은 앞의 “無諍三昧를 얻은 사람”과 같은 표현이다. “無諍三昧人”이라는 것은 의역이고 “樂阿蘭那行者”는 음역이다. ·····. “阿蘭那의 行을 즐기는 자”라는 것은 정적한 곳에서 일체의 경계를 끊어버리는 무쟁삼매를 수행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그러한 실천을 하고 있는 수보리는 곧 “함이 없다”(無所行)는 말로 자신을 비우고 있는 것이다.

--- 본분절이 수보리가 아라한이 되어 다른 사람들로부터 온갖 박해와 비난을 받아도 이성적 대응은커녕 감정적 느낌조차도 없어 다투지 않는, 이런 해괴한 돌덩이사람이 되는 수행이 있어 수보리가 이 수행을 하는 거라고 말하는가. 더구나 이런 걸 공부하면 뭔 마음이 평화롭고 순결한 사람이 될 거라고, 설령 된단들 자기만 이런 아라한이 되어 이런 마음의 평화와 순결을 정적한 곳에 가서 혼자 즐기는 뭔 아란나행을 하는 거라고 수보리가 말하는 거란 말인가? 이게 도올이 말한 대로 금강의 대승인 무아의 실천을 말하는 이 금강경에서 말할 수 있는 말인가? 대체 아라한이 되어 아란나의 무쟁삼매를 즐기는 삶이 겨우 ‘정적한 곳에서 일체의 경계를 끊어버리는 무쟁삼매를 수행하는’ 삶이란 말인가? 그렇게 ‘일체의 경계를 끊어버리는 무쟁삼매’공부를 열나게 하면서도, ‘나 이거 공부하는 것 아녀. 나 아무 것도 안 해’하는 게 뭔 나를 비우는 것이라는 건가? 비워지긴 뭐가 비워지는가? 이미 공부하는 이것으로 꽉 찼고 거기다 또, 이렇게 하는 공부도 안 한다고 우기는 이 억지까지도 보태졌는데, 대체 뭐가 비워진다는 것인가? 뭔가를 한다면 한다는 이것으로, 안 한다면 안 한다는 이것으로, 노상 뭔가로 채워지는 작동으로써의 이 맘의 삶이지 않은가. 공부는 그렇지만 수행은 이게 아니라고? 그렇다면 수행은 뭔 행을 닦는다는 거라니, 修行, 뭘 행해 놓고 이걸 또 닦아내는 거란 말인가? 옳다. 이게 여래의 삶이다. 정적의 곳이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일어난 한 생각일지라도, 한 티끌일지라도, 설령 저 큰 우주랄지라도, 중중무진의 시·공간인 이 삼세가 총체적 인연·인과의 지혜작동인 이 무쟁삼매의 보리살타로 요란하게 작동하는 이 작동이 멈추어 정적으로 선 이 무상정등각으로써의 한 생각이며 한 티끌이며 저 큰 우주이므로, 이런 이 모든 존재와 현상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은 이 정적성품의 삶으로 시끄럽게 중중무진 수행작동하는 이 지혜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다. 이 무쟁삼매로서의 진리의 진실이라는 이 법을 흉내 내는 이 아란나의 삶을 즐기는 이가 아라한이란다면, 이건 아라한이라는 관념적 부동태로써의 부처가 이 아란나의 삶을 즐기는 작동의 지혜인 보리살타로써 연기의 실상임을 말하는 것이니 구태여 불교가, 이 금강경이 선 까닭을 밝힌 증명이다.

수보리는 자기의 삶을 거론하여 석가여래가 설명한 보리살타의 여래인 이 진리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9-10. 世尊! 我若作是念我得阿羅漢道, 世尊則不說須菩提是樂阿蘭那行者. 以須菩提實無所行, 而名須菩提是樂阿蘭那行.” 세상이 존경하는 이여. 我는 지혜로 이 아라한이라는 이 생각을 만들어서, 我 스스로 아라한이라는 삶의 도를 얻어 사는 겁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법은 수보리가 이 아라한의 삶인 도로써의 이 아란나행이라는 걸 즐기는 것임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수보리는 수보리로써 실재의 실체랄 것이 없는 수보리로써의 행으로 작동하는 삶인바, 이 아라한의 도인 아란나행을 즐기는 이 實無所行의 수보리를 수보리라고 이름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도 오래된 말법이라 선뜻 이해하기가 애매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아라한이라는 삶으로써의 법도든, 이 법도로써의 뭔 아란나행이라는 걸 즐기는 삶이든, 이런 것들을 생각하여 이 생각을 실천하는 삶의 법도를 사는 수보리든,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我는 온통 다 實無所行으로써 실재의 실체로써 행하는 것이랄 것이 없는 총체적 작동의 중도·여래·열반의 보리살타인 연기의 실상이며 진리의 진실임을 세존께서 설명한 거라고 수보리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먼저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아를 말하고, 이 아로써의 수보리 자신의 삶을 거론하여 석가여래의 법, 佛法, 곧 구태여 불교가, 선이 선 까닭인 보리살타의 여래라는 논리를 밝혀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아라한이 뭔 뜻인지는 모르지만, 아란나행이 뭔 즐길 꺼린지는 모르지만 우짰든지 이 아라한의 삶인 아란나행은 천상천하유我독존의 我인 이 모든 존재와 현상으로써의 세계인 이 모든 성품의 삶이 희망하거나 희망했거나 또 희망할 수 있는 관념적 부동태의 선정인 시·공간 등, 이 상대적 인식이며 관념적 허상으로 작동하는 지혜의 보리살타로써 이 연기에 의한 실상인 진리의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도올은 이 진짜논리를 사유하여 진술하지 않으니, 분명 이 이는 이 금강경의 금강을 잘못 알고 말하여 이를 증명하는 보리살타의 지혜·반야바라밀인 부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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